리뷰 | 국제현대무용제 MODAFE 2020의 〈Center Stage of SEOUL〉

현대무용은 어렵다. 생경하고 기괴해 보이기까지 하는 몸짓들은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현대 무용은 정해진 틀 없이 ‘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아래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탐구하려는 시도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막을 내린 ‘제39회 국제현대무용제 MODAFE 2020’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국내 안무가, 무용가들의 고심 어린 대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지난달 2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국내 최정상 안무가들이 각기 다른 세 작품으로 꾸린 무대 〈Center Stage of SEOUL〉은 순수한 몸의 움직임으로서 무용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바디 콘서트(remix)〉는 다양한 음악을 몸으로 표현한다. (사진 제공: 한필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바디 콘서트(remix)〉는 다양한 음악을 몸으로 표현한다. (사진 제공: 한필름)

시작은 흥겨웠다. 거리 두기 객석제로 인해 절반만 채워진 극장에 불이 켜지자,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 펑크의 ‘Superheroes’의 강렬한 비트와 함께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바디 콘서트(remix)〉가 시작됐다. 객석 사이에서 나타난 무용수들은 모자, 물안경으로 얼굴을 가려 표정을 감춘 채 관객이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절도 있는 동작으로 흥을 돋운 후, 무용수들이 무대로 옮겨 가자 헨델의 ‘울게 하소서’가 흘러나왔다. 느린 오페라 음악에도 이들은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춤이 음악에 종속되지 않고 고유한 법칙에 따라 전개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힙합 음악을 거쳐 마지막으로 비욘세의 ‘Deja Vu’가 나오자 은색 타이츠로 갈아입은 무용수들은 우아한 고전 발레 동작을 파워풀하게 재해석해 음악에 녹아들었다. 25분간의 〈바디 콘서트〉는 일렉트로닉, 클래식, 힙합, 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몸으로 들려주며, 지난 10년간 현대무용 입문서로 불려온 비결을 과시했다.

동서양 놀음의 만남. Company J의 〈놀음-Hang Out〉 (사진 제공: 한필름)
동서양 놀음의 만남. Company J의 〈놀음-Hang Out〉 (사진 제공: 한필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몸으로 음악을 표현했다면, ‘Company J’의 〈놀음-Hang Out〉은 몸으로 ‘잘 노는 법’을 보여준다. 조선 시대 한량의 춤인 동래학춤을 바탕으로 구성된 안무에 서양 귀족의 바로크 음악을 버무려 진정한 놀음을 알려준다. 흰 플리츠 스커트를 늘어뜨린 무용수들이 고고한 학처럼, 그러나 흥겨운 몸짓으로 사뿐히 발을 디디자 이들의 움직임은 바로크 오르간의 규칙적인 리듬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무용수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는 모습, 변하는 동선 속에서도 반복되는 동작은 한량처럼 자유로우면서도 바로크의 형식미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강렬했던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계속 동작이 반복되며 분위기가 늘어졌고, 무엇보다 바로크 음악이 두 번밖에 사용되지 않아 ‘동래학춤과 바로크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Roh Dance Company의 〈파편〉 (사진 제공: 한필름)
Roh Dance Company의 〈파편〉 (사진 제공: 한필름)

무용수의 감정이 부각되지 않았던 앞의 두 작품과는 달리, 마지막 작품인 ‘Roh Dance Company’의 〈파편〉은 무용수들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극적인 전개로 한 편의 영화를 연상케 했다. 네 명의 무용수는 각기 다른 몸짓을 함으로써 같은 시간을 겪어도 각자의 기억은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무대의 원형판이 회전하며 시간의 흐름을 형상화하고, 인물의 기억은 서로 다른 색의 조명으로 나뉘어 표현된다. 조각난 기억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만의 움직임을 선보인다. 처음에 홀로 춤추던 무용수는 두 명씩, 나중에는 네 명 모두 함께 춤추며 흩어졌던 기억의 파편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을 만들어 낸다. 

인간은 정신적 존재이기 전에 유한한 몸을 가진 물질적 존재다. 몸으로 만드는 다양한 움직임들은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인간답고, 더 아름답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춤은 무엇인가? MODAFE의 예술가들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 같다. ‘인간의 생각·감정을 담아낸 움직임, 혹은 순수한 몸짓, 혹은 몸이 가진 가능성 그 자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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