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 ‘디지털 기반 시대의 문화 다양성 협약의 이행’ 전문가 토론회

문화체육관광부는 매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도별 문화재단과 함께 ‘문화 다양성 주간’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2020 문화다양성 주간’에서는 문화 다양성 홍보 캠페인, 각종 강연회와 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 22일 한국유네스코위원회가 주관하는 ‘디지털 기반 시대의 문화 다양성 협약의 이행’이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개최됐다. 회의에는 이동연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이광석 교수(서울과기대 IT정책전문대학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김혜인 연구원을 비롯해 약 20명의 국내 전문가가 참여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김철민 정책관은 “플랫폼 기술이 일상화된 시대에 문화 다양성이 맞은 위기와 가능성, 지속 가능한 발전을 논하는 자리”라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비대면 사회로 급격하게 전환되는 현시점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 토론회”라고 의의를 밝혔다. 

◇디지털 플랫폼이 일상으로=문화 창작물과 소비자를 온라인으로 연결해주는 디지털 플랫폼이 일상에 자리 잡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디지털 플랫폼은 유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오프라인 중심의 공연 예술계와 엔터테인먼트 산업계는 전년 대비 큰 적자를 내고 있는 반면, 미디어 콘텐츠 플랫폼 기업의 매출은 증가했다. 일례로 음반·음원 매출은 47% 증가했고, 대표적인 OTT 기업인 넷플릭스는 2020년 1분기 가입자가 1600만 명 늘었다. 

미디어 플랫폼은 점차 몸집을 키우며 ‘플랫폼 제국’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창작자들은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유통하면서 자발적으로 ‘제국’을 위해 노동하고, ‘제국’이 된 플랫폼은 데이터와 알고리즘 등의 기술력을 가지고 콘텐츠를 통제한다.

디지털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시장 질서도 크게 변화했다. 플랫폼을 매개로 유무형의 자본이 광범위하게 거래되면서, 중개 형태의 시장이 활성화된 것이다. 또한 이전에는 시장 논리 밖에 존재했던 사업이 플랫폼 안으로 들어왔다. 이광석 교수는 “‘음식 나눠주기’ ‘잠자리 제공해주기’와 같은 서비스가 플랫폼에 의해 거래되기 시작했다”라며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 흐름이 생겨났음을 강조했다. 

◇문화 다양성은요=문화 다양성은 ‘여러 문화적 정체성이 공존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개념으로, 2001년 유네스코의 ‘문화 다양성 선언’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다양성은 사회의 중심으로 권력을 통합하는 ‘수렴하는 다양성’과 여러 주체에게 자율권을 줌으로써 권력을 분화하는 ‘분산하는 다양성’으로 분류된다. 이동연 교수는 “큰 규모의 중앙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은 수렴하는 다양성이고, 동네 도서관을 곳곳에 세우는 일은 분산하는 다양성이다”라고 예시하며, “문화 정책 수립은 통합과 분화라는 문화의 두 가지 큰 축을 고려해 이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다양성의 방향뿐만 아니라, 다양성 증진을 위해 어떤 주체를 보호해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창작자 중에서도 어떤 주체의 권리를 보호할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작가들의 생태계는 권력 관계로 얽힌 피라미드 구조로 이뤄져 있어, 작가들 간 이해관계가 상충하기 때문이다. 

◇변화한 환경, 위태로운 문화 다양성=플랫폼 기술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소외받는 문화 주체가 등장했다. 문화 다양성이 위협받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누구나 인터넷망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기술적 문제를 꾸준히 개선해 왔지만, 디지털 정보를 읽어내는 능력의 격차로 인한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플랫폼이 사회에 빠르게 자리 잡는 과정에서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김혜인 연구원은 “전통적 방식으로 창작 활동을 하는 이들은 디지털로의 변화에 취약하다”라며 “공공 데이터를 마련하는 등 기술적 차원의 접근이 보장되더라도 데이터에 접근할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이들은 소외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진단했다. 기업은 자체적으로 디지털 리터러시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다. 카카오 최은필 연구원은 “다양성에 대한 기업 내부의 고민이 플랫폼에 구현된다”라면서 “제품 설계 단계에서 소외 계층을 살펴보는 등 기업 차원의 노력이 중요해졌다”라고 말했다.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 노동자의 문제도 불거졌다. 이들은 서로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플랫폼을 협동조합화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런 실천적 대안에 대해 정준희 교수(한양대 언론정보학과)는 “국가가 자발적 결사체를 지원하는 것도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다”라면서도 “그러나 이것이 문화 창작자나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했다.

더불어 디지털 환경은 쉽게 문화적 표현을 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열어줬지만, 사람들은 스스로의 표현을 검열하기 시작했다. 김혜인 연구원은 “사람들은 신상이 쉽게 노출될 수 있으며, 작은 개인적 표현도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라며 “개인이 디지털 공간에서 순식간에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며 표현의 불안감을 갖게 됐다”라고 풀이했다. 

◇플랫폼 시대, 다양성 구현을 위해=토론회 참여자들은 문화 다양성 구현을 위해서 문화 정책과 이론 간 조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문화예술인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겠다고 나선 독일의 조치는 정책의 철학적 가치를 잘 보여준 사례다. 이동연 교수는 “이론과 정책 간 간극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간 우리나라 문화 정책에 철학적 이념이 충분히 반영됐는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라며 “문화 정책자들도 이론의 철학적 가치와 추상적 논의의 내용을 정책에 반영할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유통되는 콘텐츠에 공동체적 저작권을 인정해 주면 보다  다양한 창작 주체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문화 데이터를 공동 자산으로 만드는 ‘공공 소유권’ 개념을 도입하면, 콘텐츠에 집단적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 이광석 교수는 “소수 민족의 문화를 활용해 관광 상품을 만들었을 때, 민족 문화 저작권은 해당 민족이 갖는다”라며 “민족 문화 저작권의 개념을 빌려와 민족이나 국가적 차원에서의 집단적 저작권을 논의해 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때 정부는 콘텐츠 제공자와 사용자를 매개하는 중간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정부가 기업의 재산권에 대한 제한을 풀고 해당 기업 콘텐츠를 공공 데이터화하면,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김혜인 연구원은 “국가 차원에서 공동체적 저작권을 관리하기 어렵다면, 그보다 작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저작권을 보호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플랫폼 산업이 해외로 유통된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콘텐츠만이 수출됐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 플랫폼 시장에선 기업의 문화 자체가 해외로 전해진다. 예컨대 한국의 웹툰 플랫폼이 국외로 수출되면서 아마추어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 문화가 외국에도 정착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 및 증진을 위한 협약’에 가입했던 2005년을 기점으로, 2014년에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문화 정책 ‘2030 문화비전’을 수립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화 주체가 다양한 법과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30 문화비전 정책’ 속 이념에 따라, 사라져 가는 아날로그적 문화유산을 디지털화해 보존한 국립중앙도서관의 사례를 잇는 노력이 곳곳에서 진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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