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용 교수(전기정보공학과)

전기(Electricity)와 자기(Magnetism)는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전기기기’의 형태로 다양한 산업에 활용되고 있다. 전기기기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크기에 많은 양의 전류를 흘리고 높은 자기장을 발생시킬수록 기기의 에너지 밀도가 증가해, 성능이 향상되거나 목표 성능 대비 기기의 무게와 부피가 감소한다. 특정 온도 이하에서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현상’을 이용하는 초전도 전기기기는 기존 구리도체 혹은 영구자석 기반의 상전도 기기 대비 100배 이상의 전류 통전과 10배 이상의 자기장 발생이 가능하면서도 발열이 없어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준의 고성능, 고효율 및 초소형화가 가능하다.

사실 초전도의 발견은 100년이 넘었지만 최근까지 그 응용은 극히 일부에 국한됐다. 결정적인 기술적 난제, 초전도 특성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사라짐’(Quench) 사고 시 초전도 기기가 과열돼 타버리는 문제 때문이었다. 2011년 필자가 MIT에서 처음 제안한 무(無)절연 (No-Insulation, NI)초전도 기술은 전기기기에서 필수적이라 여겨왔던 절연을 의도적으로 제거해 ‘사라짐’ 사고 시 전류가 사고지점을 자동으로 우회하게 하는 기술이다. 이는 사고가 발생해도 초전도 기기가 “타지 않고” 안정적으로 작동될 수 있게 해 초전도 기기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최근 필자의 서울대 초전도 응용 연구실은 미국 국립 고자기장 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통해 무절연 초전도 기술을 적용, 직류 자기장 45.5T(T: 자기장의 단위로, 1T는 지구 자기장의 2만 배)를 발생시켜 19년 만에 경신한 세계 최고 기록을 「Nature」 본지에 주저자로 게재했다. 이는 원래 최대 44.8T를 발생시켰던 30톤 초대형 자석의 무게를 1/100 이하로 줄이는 초소형화가 가능함을 입증한 것으로 당시 「Nature」의 인터넷 홈페이지 메인에 소개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2019년 말 영국물리학회 주관 〈Physics World〉의 ‘Top 10 Breakthroughs for 2019’에도 선정됐다. 이처럼 무절연 초전도 기술은 초전도 기기 제조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NI’는 2017년부터 미국 전기전자학회의 기술 분류에 새롭게 추가됐고, 2019년 유럽 입자물리연구소 주관 국제 가속기 학회의 부제로도 선정됐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국제학회에서 독립된 기술 세션으로 신설됐다.

현재 무절연 초전도 전기기기는 의료, 바이오, 신소재, 에너지, 전력, 수송, 국방 등 광범위한 산업 분야로 빠르게 파급되고 있다. 해외 연구 사례로는 MIT 및 미국 CFS사가 개발 중인 차세대 초소형 핵융합 장치가 대표적으로, 이는 최근 빌 게이츠로부터 ‘Top 10 Breakthrough Technologies of 2019’에 선정됐다. 이외에도 미국 국립고자기장연구소, 프랑스 그레노블 고자기장연구소, 중국 과학원의 신물질 연구 장비,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중성자산란 연구 장비, 일본 Toshiba의 초고자기장 MRI, MIT 및 일본 RIKEN의 신약개발용 NMR 장비, 유럽 입자물리연구소 및 일본 스미토모 중공업의 암치료용 가속기, NASA의 항공기용 전기추진 등의 사례가 있다. 이처럼 필자의 초전도 응용 연구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초전도 기술의 상용화를 선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주)서남이 2017년 필자와 공동연구를 통해 개발한 18T 무절연 고온 초전도 자석을 기초과학연구원(IBS)에 납품했다. 이는 고자기장 고온 초전도 자석의 세계 최초 상업적 판매로 알려져 있다. 나아가 현재까지 IBS는 이 자석을 연속 운전 중인데, 이는 고온 초전도 자석의 세계 최초 장기 실증 운전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외에도 IBS의 RAON 가속기, 포항가속기 연구소의 방사광 가속기, 국가 핵융합 연구소의 초소형 핵융합 장치, 삼성미래기술의 초고자기장 MRI,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NMR 장비, 현대자동차의 차세대 전기추진,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하이퍼루프 자기 부상 등에 무절연 초전도 기술이 적용되고 있으며 필자의 연구팀이 기여하고 있다.

이렇게 초전도 전기기기는 무절연 고온 초전도 기술을 발판으로 광범위한 산업 분야로 빠르게 파급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초전도 기술은 반도체(한국), 자동차(일본), 바이오(미국) 등과 같이 국가 선도 기술로 정해지지 못한 신규 분야이기에, 국내의 연구 인프라를 효과적으로 결집해 낸다면 향후 10년 이내에 초전도 기술을 우리나라의 새로운 대표 기술 브랜드로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서울대 초전도 응용 연구실은 이런 꿈을 목표로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선도하며 국내외 다양한 산·학연 기관들과 교류하고 있다. 모든 새로운 분야가 기술의 여명기에서 그렇듯 많은 분의 관심과 응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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