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과거사법 개정안은 과거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인권 침해 사건 등의 진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규명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대학신문』은 지난 3일(수) 20대 국회에서 과거사법 개정을 주도해 온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전 의원을 만나 해당 법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사법은 일제강점기 전후의 항일 독립운동과 해외 동포사, 6·25전쟁 시기 및 권위주의 정권기의 인권 탄압 사건 등을 조사해 진실을 밝히고 국가적 책임을 다하려는 목적으로 2005년에 제정됐다. 강 전 의원은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사건을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정치권에 계속 있었다”라며 “2005년에 진보 세력이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면서 과거사법이 통과될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과거사법에 근거해 2006년 4월에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과거사위원회)는 2010년 6월까지 4년 2개월 동안 인권 침해 사건들에 대한 진상 규명 활동을 진행했다.

2000년대에 과거사법은 여러 한계에 부딪히며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받는다. 이에 과거사법을 개정해 과거사위원회를 재가동함으로써 당시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사건들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강 전 의원은 “아직 조사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국회가 위원회 존속 기간 연장에 합의하지 못했었다”라며 “20대 국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초기에는 20대 국회에서도 개정안 통과가 요원해 보였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들이 지난달 5일부터 7일까지 국회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며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강 전 의원은 “형제복지원 사건은 저번 위원회 활동이 종료될 때까지도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기에 새롭게 출범하는 과거사위원회가 이를 이어받아 조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사법 개정안은 기존 법안과 비교해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기간, 범위, 구성 등에 변화를 줬다. 개정안을 바탕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조사 기간은 3년이며, 필요에 따라 1년 연장이 가능하다. 위원회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강 전 의원은 “기존 안에서는 상임위원직에 대통령이 2명, 대법원장이 1명을 추천하도록 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대통령이 1명, 여당과 야당이 각 1명씩 추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6명의 위원 역시 여야가 각각 3명씩 추천하도록 규정돼 위원회는 여당 인사 5명과 야당 인사 4명으로 채워지게 됐다.

과거사법의 일차적 의의는 국가가 과거사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법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명시해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에 있다. 강 전 의원은 “역사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첫 작업”이라 말하며 “과거를 정확히 알아야 과거와 미래의 대화를 통해 현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주자는 것이 과거사법의 목적”이라며 과거사법은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과거사법 개정안은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주 4·3 특별법’과 같은 개별적인 법안으로 다루기 어려운, 소외된 사건들에 대해 진실 규명의 창구를 제공한다. 이에 강 전 의원은 “과거사 사건들은 규모나 진행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5·18 민주화운동이나 제주 4·3 사건 등은 특별법으로 해결하고,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이 특별법으로 단독 제정하기 어려운 사건은 과거사법의 조사 대상에 포함시켜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강 전 의원은 위원회 조사로 재심을 신청할 근거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진상 규명이 먼저 이뤄져야 재심을 통한 명예 회복도 가능하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백조일손 사건’*을 일례로 들며 당시 과거사위원회가 진상 규명한 내용을 바탕으로 유족이 재심을 신청해 승소하며 국가 차원의 배상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과거사위원회 활동이 재개되면 과거사 피해자와 유가족의 명예가 회복될 길이 열릴 것이라 기대된다.

과거사법 개정안은 아직 나아갈 길이 멀어 보인다. 과거사위원회 조사를 통해 국가에 의한 인권 침해 사실이 밝혀지면 국가 차원에서 배·보상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던 조항이, 야당과의 합의 과정에서 삭제됐기 때문이다. 강 전 의원은 “여당에서 제출한 기존 안에서는 피해자들이 국가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배·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라며 “야당 측에서 국가 차원의 재정 지출에 난색을 표하는 것은 당위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배·보상 여부를 법원의 판단에만 맡기면 피해자들의 개별적인 배·보상 청구로 인해 사법부에 너무 많은 부담이 지워진다”라며 “필요하다면 추가 입법 과정을 거쳐 배·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과거사법 개정을 넘어 새로운 과거사위원회가 어떻게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과거에는 피해자나 유족들이 과거사법을 몰라 진상 조사를 신청하지 않았거나, 위원회의 활동 기간이 짧아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강 전 의원은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국민들이 과거사법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게 됐고 위원회 활동 기간도 필요하다면 연장할 수 있다”라며 이전보다 과거사위원회의 활발한 활동이 가능할 것이라 예상했다. 또한 그는 “피해 당사자나 유족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 과거사위원회에서 사건 조사를 직권 상정하는 방법도 있다”라며 위원회가 조사 범위를 확장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과거사위원회의 위원은 여야 모두의 추천으로 구성되기에 위원회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여당과 야당과의 협치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기존 과거사위원회의 경우 야당이 진상 조사에 비협조적인 인물을 위원으로 추천하면서 위원회 활동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강 전 의원은 “21대 국회에서는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만큼 위원회 활동이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다수는 소수 의견을 배려하고 소수는 다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라며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창일 전 의원은 “역사는 잊히는 듯하지만, 우리 머릿속 어딘가에 항상 남아 있다”라며 “청년들이 역사적 사건을 자기 일로 생각하고 과거에 눈감지 않을 때 좋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어떤 세상을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역사에 대한 인식에 기반하지 않으면 죽은 미래가 된다”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청년들이 과거사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진실한 역사를 마주할 때, 과거사법 개정안은 비로소 미래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형제복지원 사건: 1987년 주민등록증 미소지자를 국가가 형제복지원이라는 시설에 불법 감금하고 노역에 강제 동원했던 인권 침해 사건.

*백조일손 사건: 제주 4·3 사건 말에 ‘적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이유로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사건. 유족들은 공동으로 매입한 부지에 유해를 안장한 뒤 이를 ‘백조일손지지’라고 이름 지음.

 

사진: 이연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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