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과'반'인데 국어국문학'과'가 아니라고?

“과는 뭐고, 반은 또 뭐야?”

인문대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받아 봤을 법한 질문이다. 인문대에는 왜 정해진 학과 없이 선발하는 계열별 모집과 정해진 학과로 선발하는 학과별 모집이 공존하는 것일까? 인문계열제(광역제)와 전공예약제는 무엇이며, 이런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대학신문』이 인문대 입학 제도의 자취를 따라가 봤다.

인문대 입학 제도, 설명 좀 해 줘

인문대는 광역제 또는 전공예약제로 입학 가능하다. 광역제로 입학한 학생은 두 학기 이상의 전공 탐색 기간을 보내고 일정 자격 요건을 갖추면 인문대 내 원하는 학과로 진입한다. 전공예약제로 입학한 학생은 입학 때부터 전공이 정해져 있지만, 전과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타 단과대와 다르다.

1998년 교육부는 학생의 학문 선택 기회를 넓히고 학과 서열화를 방지하겠다는 명목으로 대학 신입생을 복수의 학과나 학부제로 모집하게 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제정했다. 서울대는 2002학년도부터 △인문대 △사회대 △사범대 △공대 등의 단과대에서 광역제 모집을 실시했다. 하지만 2005학년도에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중어중문학과에 진입한 학생이 인문대 전공 진입 신청 인원의 약 75%에 달하는 등 인기 학과로의 편중 현상이 나타났다. 인문대는 2004학년도부터 인문계 1(어문 계열)과 인문계 2(역사·철학 계열)로 나눠 신입생을 선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광역제는 △전공 진입을 위한 학점 경쟁 과열화 △짧아진 전공 교육 기간 △비인기학과 위축 △학과 소속감 저하 등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대학신문』 2004년 12월 6일 자, 2007년 6월 3일 자)

2009년 1월, 광역제 선발을 의무화했던 ‘고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각 대학은 다시 자율적으로 신입생을 모집할 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단과대는 학과·학부별 모집 방식으로 회귀했고, 사회대와 인문대만 광역제를 고수했다. 두 단과대는 2013학년도 입시부터 광역제와 전공예약제를 병행하기 시작했고, 2017학년도 입시부터 사회대가 광역제와 전공예약제를 전면 폐지하면서 현재는 인문대만 해당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인문대는 왜 광역제와 전공예약제의 병행을 고수하고 있는 것일까? 인문대 관계자 A씨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교육해 창의성과 수행 역량을 고루 갖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전공 탐색 기간을 보장하는 광역제를 도입했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전공예약제 도입 이유에 대해 “서울대는 국가 차원에서 공공 가치 실현 책무를 지닌다”라며 “각 전공의 최소 인원 보장을 통해 학문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우리나라를 ‘문화 선진국’으로 전진시키는 학술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학생에게 다양한 학문을 접할 기회를 주어 융합적 인재를 기르면서도 학문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현 입학 제도를 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광역제, 뭐가 문제야?

광역제로 입학한 학생은 대체로 만족하는 모습을 보인다. 2019년에 광역제로 입학해 아직 전공 진입을 하지 않은 B씨는 “대학 입학 후 전공 탐색이 가능하다는 것이 광역제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염두에 뒀던 전공과 잘 맞지 않으면 다른 전공으로 눈을 돌릴 수 있어서 좋다”라고 밝혔다. 광역제로 입학해 전공 진입을 완료한 C씨도 “고민하던 학과들의 수업을 들어 보고 비교하며 가장 잘 맞는 학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광역제에는 △학과/반 불일치로 인한 혼란 △학과 및 전공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부족 △학과 커리큘럼 이수 및 다전공 진입 시기 지연 등의 단점도 존재한다. 인문대에는 16개 학과와 그에 해당하는 16개의 반이 있으며 광역 학생은 임의로 각 반에 배정된다. 배정된 반은 전공 진입 후에도 대체로 유지된다. 예를 들어, 19학번 철학과 ‘사고뭉치반’은 12명의 철학과 학생과 8명의 광역 학생으로 구성된다. 정해진 학과 없이 입학한 광역 학생을 위해 인문대는 학과가 아닌 반 체제 위주로 학생자치와 교류가 이뤄진다. 학과 학생회장 대신 반 학생회장이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등에서 의결권을 가지며, 인문대 신입생이 1학기 때 필수로 수강해야 하는 ‘삶과 인문학’ 강좌도 학과가 아닌 반 단위로 진행된다. 인문대 행정실 김민철 교학팀장은 “‘삶과 인문학’ 강의와 학과별 전공 진입 설명회 외에도, 인문대 학생회에서 네트워킹 사업을 통해 광역 학생과 전공예약 학생의 교류 기회를 제공한다”라며 “학생 간의 소통 기회를 도모하고, 전공 진입에 도움받을 수 있도록 인문대에서 예산을 지원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인문대는 광역 학생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광역 학생의 설움을 지우기엔 역부족이다. B씨는 “진입을 희망하는 학과와 소속된 반의 학과가 다를 경우 진입 희망 학과와의 교류가 어렵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얻기 힘들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인문대 모 반의 학생회장과 학과 대표를 역임했던 D씨는 “학과 카카오톡 채팅방(단톡방)과 반 단톡방이 분리되지 않은 학과·반이 많아 광역 학생이 학과 관련 정보를 얻기 힘든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B씨는 “광역 학생은 입학 시 진입을 희망하는 과의 교수가 아닌, 소속된 반에 해당하는 학과의 지도교수가 배정된다”라며 “그 때문에 진로나 전공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 힘들다”라고 밝혔다. 전공 진입 이후에 광역 학생이 소외되는 경우도있다. C씨는 “과방과 반방이 분리돼 있지 않은 학과가 많다”라며 “전공 진입 후 어떤 방을 사용해야 할지 애매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광역 학생은 소속 반과 진입 학과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속감이 저하되며, 학과와 전공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광역 학생은 전공예약 학생보다 전공을 늦게 선택하기 때문에 학과에서 권장하는 커리큘럼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1학년 때 한 개의 철학과 전공 수업을 수강한 광역 학생이 2학년 때 철학과로 진입하는 경우, 철학과 이수 표준 형태에 따라 1학년 때 철학과 전공을 네 과목 수강한 동급생에 비해 뒤처지는 것이다. 전공 과목뿐만 아니라 답사 등의 학과 행사도 문제다. 국사학과의 경우 학과 내규상 학부 졸업을 위해 답사를 세 번 다녀와야 하지만, 전공 진입을 하지 않은 광역 학생은 답사를 다녀오기가 쉽지 않다. 진입 희망 과에서 답사가 진행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사학과 관계자는 “전공 진입을 하지 않은 광역 학생에게는 답사 소식을 알릴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해외 답사의 경우 국사학과 소속 학생을 우선 선발하고 있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C씨는 “전공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학과 행사나 권장 커리큘럼을 1학년 때부터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인문대 학생에게 필수로 요구되는 다전공도 광역 학생은 뒷전으로 미루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인문대 학생은 08학번부터 △복수전공 △부전공 △연합전공 △단일(심화)전공 등의 다전공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주전공이 없는 광역 학생도 다전공을 신청할 수는 있지만, 주전공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다전공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C씨는 “전공 탐색 기간 동안 주전공에 대해 고민하느라 다전공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C씨 역시 “보통의 경우 주전공을 선택한 뒤 다전공을 선택하므로 전공예약 학생에 비해 졸업 요건 충족이 늦어지기 쉽다”라고 말했다.

전공예약 학생의 설움

전공예약 학생 E씨는 “희망하는 진로와 전공이 뚜렷했던 학생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희망 학과에 바로 입학할 수 있다”라며 전공예약제의 장점을 설명했다. 하지만 전공예약 학생은 어떤 경우에도 전과가 허용되지 않는다. E씨는 “전과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학하고 나서야 알았다”라며 “희망했던 학과로 입학하더라도 막상 대학에서 전공 공부를 하다 보면 흥미를 잃는 경우도 있는데, 전과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부당하게 느껴진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인문대 관계자 A씨는 “전공예약제는 다양한 학문의 학술 가치 실현이라는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 인원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수험생은 전공예약 학생의 전과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시모집 안내서를 통해 확인하고 지원할 것이기 때문에 수험생이 학교와 (전과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약속을 맺은 것”이라며 “귀책사유가 있다면 입학 시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는 학생 측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인문대는 △수시모집 지역균형선발전형(지균전형)과 △수시모집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Ⅰ(기균전형) △정시모집 일반전형(정시)으로 광역 학생을 선발하고, 수시모집 일반전형(수시일반전형)으로 전공예약 학생을 선발한다. 광역제로 입학하고 싶어도 수시일반전형으로 지원해야 한다면 전공예약제를 선택해야 하며, 전공예약제로 입학하고 싶어도 지균전형으로 지원한다면 광역제로 입학해야 하는 상황이다. E씨는 “여건상 수시일반전형으로밖에 지원을 못해 선택의 여지없이 전공예약제로 입학했다”라고 말했다. 반면 B씨는 “기균전형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광역제로 입학한 것”이라며 “지원 전형에 상관없이 광역제와 전공예약제를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인문대 관계자 A씨는 “수시일반전형은 수험생이 원하는 학과·학부에 진학하기 위한 준비를 얼마나 충실하게 했는지를 위주로 평가하기 때문에 전공예약제로 선발하는 것이 적합하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지균전형은 전반적인 고교 생활을 얼마나 충실히 했는지를 기준으로 선발하기에, 전공별로 세분화해 선발하는 전공예약제보다는 광역제로 선발하는 것이 적합하다”라고 설명했다. 정시에 대해서 그는 “수능 고득점 획득과 입학하고자 하는 전공 분야 관련 역량을 갖추는 일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전공예약제보다는 광역제로 선발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기균전형에 대해서는 “모집 정원이 적어 전공예약제로 선발하면 수험생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대 입학 제도에는 분명 그 순기능과 실효성이 존재한다. 광역제와 전공예약제는 학생에게 여러 학문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학문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광역 학생의 소외감과 전공예약제의 폐쇄성은 해결돼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인문학 수학의 가치를 실현하면서도 학생이 만족할 수 있는 입학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각 단점을 보완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삽화: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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