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삽화 :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10년 전, 2010년 지방선거 당시 핵심 이슈 중 하나는 무상급식이었고 이를 기점 삼아 선별적 복지 대 보편적 복지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사회복지학과 학부생이었던 나는 그동안 수업과 전공서를 통해서만 접하던 보편적·선별적 복지라는 말이 언론을 타고 일반 대중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신기해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복지 후진국이라 생각했던 한국 사회에서 이런 논의가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10년 전 이야기를 꺼내냐면 최근 그 당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를 보면서다.

며칠 전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라는 발언을 통해 두 달 전 긴급재난지원금 도입을 놓고 벌어지던 논쟁 이후 살짝 잠잠해졌던 기본소득에 관한 관심에 다시 불을 붙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외의 야당 인사들도 이슈 선점 경쟁에 뒤질세라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을 내놓고 있다. 

기본소득은 언뜻 봐선 진보적인 정책 같아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마냥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한국 보수 진영에선 기본소득을 막장 포퓰리즘 제도 정도로 취급했다. 진보 진영 역시 포퓰리즘으로 공격당하기 딱 좋은 이 제도를 몇몇 사람 빼곤 애물단지 취급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기본소득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의한 재난지원금 논쟁을 계기로 일반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지고 논의의 장에 전면적으로 등장했다. 그동안 기본소득을 지지하던 이들 입장에서 보면 그 애물단지 취급받던 기본소득이 맞냐며 가슴이 뛸 일이다.

무엇보다 이번에 미래통합당에서 이 논의를 촉발했다는 것이 인상 깊다. 물론 김종인 위원장의 의도는 명확하다. 미래통합당이 현재 위기를 겪고 있을지언정 이슈 경쟁에선 밀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라고만 여겨져 왔던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를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진두지휘한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진보 진영의 전유물로 취급되던 분배 이슈인 경제민주화 공약을 선점했을 때와 유사하다. 다만 그가 4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도 기본소득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이 오로지 이슈 선점 효과만을 노리고 생뚱맞게 나온 것은 아닌 듯하다.

갑작스럽게 기본소득 논의가 전개되는 것에 대해 여러 우려가 있지만 논의가 시작된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면 그 재원 마련을 위해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재개편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논의는 기본소득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사회보장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는 이제껏 여러 변형을 거쳤지만 그 골격은 전통적인 산업 구조와 노동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그때와 같다.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노동 분화가 지금보다 더 격화될 미래 사회의 안전망으로서 온전히 기능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기본소득이 전통적인 사회보장정책의 대안이 될 수 있냐는 질문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기본소득의 도입 여부와 관계없이 그것이 촉발할 사회보장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기본소득 자체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반적인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함께 논의할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여동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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