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된 지면에 내 이름을 걸고 무언가 써 내려가는 것이 이리 어려운 일일 줄 몰랐다. 2년이 흘러 이제는 조금 더 염치를 알고, 조금 더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됐을 무렵인 듯도 하다. 그런데 내가 지나 온 궤적이 문득 후회스럽게 느껴지는 까닭에 더 이상 적어 내고픈 말이 없어졌다면, 그건 괜찮은 일일까.

누구나 후회를 남긴다. 나도 당신도 완벽할 수 없다는 말이 넌지시 나를 위로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것을 모르지 않는데도 지금 내가 보잘것없는 한 토막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까닭이 하나 있다. 그 까닭이라는 것은, 나의 글쓰기란 사실 스스로를 빈틈없이 합리화해 이 글을 읽을 당신의 인정을 따 내고자 하는 최초의 계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순수한 의도로 펜을 잡은 적이 있던가? 이타심으로, 지극히 정직한 마음으로 기사를 써 본 적이 있었던가? 그런 마음을 떠올리는 것조차도 실은 내 허영의 일부였던 걸까? 글을 쓰며 외면받는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의식적인 인정 욕구를 발견할 때면 나는 진짜 기자는 못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년간 이곳에서 이타적인 마음으로 글을 쓰는 동료 기자들을 많이 봐 왔다. 그들을 보며 나는 영원히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었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내 이런 모습은 조심성이 많고 신중한 태도로 비춰졌던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나는 또 내가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 퍽 마음이 좋았다. 그렇지만 사실 머뭇거림, 조심, 두려움은 타인을 소거하고 그 자리에 나를 세우려 하는 내 인정 욕구의 폭력성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의 발로였으므로, 누군가 나를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떠올려 줬대도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어야 맞다는 생각이 이제야 문득 드는 듯하다. 

곧 정식으로 편집장 임명장을 받을, 그래서 신문사 내외로 오가는 ‘인정’의 단서들을 관리하게 될 내가, 이 시점에서 이 부끄러운 글을 적어내는 것은 결국 우연이 아닐 테다. 조금이라도 이 마음을 고백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 또 하나의 인정 욕구에 다름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한 번은 내 마음 가장 내밀한 곳에 있는 그 두려움을 글로 털어놓고 싶었다. 이곳에서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을 마주하며 그 두려움과 정식으로 조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고백 이후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얼마 전 편집장 출사표에 이런 말을 적었었다. “책임감이라는 윤리 의식의 설정은, 스스로에게 바라는 모습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다”라는.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중압감에 힘겨워 하는데, 사실 책임감의 소재는 스스로 무언가를 의지적으로 바라는 데 있다. 그래서 나 역시 편집장 직을 수행하며 ‘편집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버틸 것이 아니라 ‘편집장의 일을 잘 수행하고 싶다’라는 의지를 발휘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 의지라는 것도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마음으로 똘똘 뭉친 것이었다. 도대체, 타인은 어디에 있는가. 나 자신이 아니라 순수하게 다른 이를 위해 행동할 마음은 품지 못했던 것일까. 사실 그 의지라는 것의 주인이었던 나의 인정 욕구를 내려놓고서, 책임감에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성찰해야 함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야만 스스로를 두려워하는 지금의 나를 극복할 수 있을 테니. 

그래서 이 마음을 전한다. 두려움이 많은 내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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