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번영하고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신에 가까운 인류는 지금 사회를 ‘현대’라고 부른다. 이성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만 확실성과 불확실성이 불편하게 공존하는 시간. 그 어떤 시대를 다스린 신보다 전지전능하지만 동시에 가장 나약하며 무자비한 신의 시대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 신의 이름은 인간이다. - 지난 5월 일기 중

 

슈퍼히어로는 결코 신화적 성격을 띤 장르가 아니다. 대부분의 신화에서 인간은 신의 하위 등급에 위치하는 존재로서 고유한 자율성과 능력을 모두 신으로부터 부여받는 제한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슈퍼히어로 서사에서 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의 ‘초인’ 개념은 ‘신이 없는 시대에 신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강력한 인간의 이상적 모습’을 짚었다. 최초의 현대적 슈퍼히어로의 이름이 니체의 초인(Übermensch, Superman)과 똑같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슈퍼히어로에 열광할까? 어쩌면 인간이라는 이름의 신이 다스리는 현대 사회에 여전히 영웅이 부재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영웅이 없기에 스크린과 종이 속에서라도 영웅을 보고 싶은 게 아닐까. 기사에 적었듯, 한 시대에 주목받는 영웅의 모습을 자세히 분석하면 그에 열광하는 시대와 사회의 모습이 관찰될 테니 말이다.

언젠가 이성과 탐욕에 눈이 먼 인류의 자기 파멸적 운명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장 주위를 둘러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유와 인류 발전이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이윤 창출과 자본주의 원리가 우선된다. 그렇기에 나는 기계와 인공지능, 과학과 이성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현대 문명 세계 이면에는 야만으로 퇴보해 버린 계몽의 자기 파멸적 운명이 존재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차마 신이라 불리지 못하는 힘없는 인간은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인권 유린과 생명이 위협당하는 안전의 사각지대 등에 놓이게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잃어 버린 것이 무엇이냐고. 

어쩌면 슈퍼히어로가 내가 던진 질문의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슈퍼히어로는 해당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인간상과 시대의 결핍이 투영돼 나타난 복합적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추구한 정의와 권선징악, 협력,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한 영웅의 정체성. 슈퍼히어로의 이런 특징들이 우리가 찾고자 했고 마침내 그들에게 투영한 가치가 아닐까. 언젠가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슈퍼히어로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시대는 어떤 종류의 인간상을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여길까? 더불어 다양한 부조리에 맞서 어떤 식으로 싸워나가는 태도를 옳다고 간주할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슈퍼히어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특별히 한 명의 ‘슈퍼히어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기사를 준비하기 시작한 지난 겨울부터 지금까지 과분할 정도로 큰 도움을 주셨던 나의 슈퍼히어로. 이번 특집 기사에 수많은 슈퍼히어로가 등장했지만 지금 여기 내게 슈퍼히어로는 그분뿐이다. 교수님께서 마지막 강의 때 해 주신 말씀으로 내 기사의 슈퍼히어로들과 교수님께 인사를 보내며, 『대학신문』에 싣는 내 마지막 특집 기사와 취재수첩을 마무리하겠다.

I will probably never see my heroes again in the same manner but they will always stay in my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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