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미술 생태계를 만들려면
지속가능한 미술 생태계를 만들려면
  • 김대은 기자
  • 승인 2020.06.07 0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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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미술계를 강타했다. 각종 미술관, 갤러리, 아트페어가 문을 닫거나 전시를 연기·취소하며 미술 생태계가 얼어붙었다.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미술 행사인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내후년으로 미뤄졌으며, 한국에서도 수도권 국공립미술관이 재개관 3주 만인 지난달 30일 다시 휴업했다. 한국화랑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발생한 피해액은 한 갤러리당 월 3,500만 원가량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미술계의 어려움은 비단 코로나19 시대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미술 작품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작가들이 겪는 어려움은 이전부터 꾸준히 지적됐다. 이에 『대학신문』은 미술품 거래의 문제와 작가들이 겪는 어려움을 살펴보고, 이를 위한 해결 방안을 고민해 봤다.

미술 작가, 어려움에 처하다

국내 미술계가 유독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오프라인 위주의 미술품 거래 문화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갤러리·미술관 전시·아트페어가 취소돼 작가가 작품을 판매할 창구가 사라졌다. 익명을 요구한 A 작가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전시가 줄줄이 취소돼 작품 판매가 어려워졌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오프라인 위주의 거래 문화는 미술품 거래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다. 미술품 거래가 음성화돼 위법적인 행태들로부터 작가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거래자 신상이나 거래 가격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가격 결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현금 거래를 통한 탈세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계승균 교수(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는 “한국에서 미술품을 거래할 때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적으로 현금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미술 작품의 가격 및 소유자, 거래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갤러리 전시, 공모를 통한 작품 거래는 작가에게 금전적인 부담을 지우기도 한다. 작품 판매 과정에서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A 작가는 “공모전이나 전시에 출품 신청만 하는데도 출품료를 요구하는 곳이 많다”라며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신인 작가 B 씨 또한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려면 작업실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운송비, 재료비 등 많은 돈이 들어간다”라며 “이를 모두 자비로 충당하기란 어려운 일”이라 지적했다. 어렵게 작품이 판매되고 나서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작가와 고객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갤러리가 30~50%의 수수료를 가져가는 것이다. 이는 작업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신진 작가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A 작가는 “신인 작가의 경우 작품 가격이 그다지 높지도 않은데 갤러리에 50%씩 수수료를 낼 때면 허탈한 마음이 든다”라고 털어놨다. 

작가의 창작으로 생긴 부가가치가 온전히 작가에게 돌아가지 않는 것도 문제다. 미술 작품의 경우 작가의 명망이 높아짐에 따라 과거에 판매된 작품 가격이 크게 오르기도 하지만, 그에 따른 이익은 현재의 작품 소유자에게 모두 돌아가는 탓이다. 소설가나 음악가가 작품을 한번 내놓으면 인세나 저작권료로 계속해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미술품 중고 거래의 특수성은 ‘억’ 소리 나게 높은 가격의 작품을 제작한 작가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해

이런 미술계의 어려움을 ‘시장 활성화’를 통해 타개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음성적으로 이뤄져 온 미술품 거래를 양지로 끌어 올리고 대중화해 미술품 거래를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에코락갤러리’는 이런 방식의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미술품 거래 중개 업체다. 에코락갤러리 장현근 대표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구매자에게 최대 60개월의 무이자 할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라며 “그 덕에 처음으로 미술품을 구매하는 사람과 20~30대 젊은 수집가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간 오프라인 위주로 이뤄졌던 미술품 거래 시장에도 온라인 거래가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서울옥션’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매사·갤러리는 온라인 거래 전용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실제로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온라인 경매 낙찰총액은 작년 51억 원에서 올해 57억 원으로 11.5% 증가했다.

미술 생태계 회복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사진은 에코락 갤러리의 전경.
미술 생태계 회복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사진은 에코락 갤러리의 전경.

미술품 거래 시장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투명한 시장 형성’을 위한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일례로 에코락갤러리 홈페이지에는 소속 작가의 프로필과 작품 가격 등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장현근 대표는 “증권, 주택 거래 시장에서는 모든 거래 경로와 상품 가격을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열람할 수 있다”라며 “미술 시장에도 이런 방식을 도입해 거래 데이터를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미술품의 유통 및 경매 내역을 투명하게 관리하도록 하는 ‘미술품의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안’이 여러 차례 발의되기도 했다. 더불어 개인의 미술품 구입에 대한 소득 공제도 시장의 투명성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책이나 공연 티켓을 구입할 때 소득 공제가 되는 것처럼 미술품에 대해서도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현근 대표는 “개인의 미술품 구입에 소득 공제를 도입하면 영수증을 발급하는 등 시장이 양성화돼 궁극적으로 작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인 작가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인 작가의 미술계 진입을 돕고, 계약 과정에서 부당한 일을 겪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A 작가는 “불리한 계약을 강요당하거나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전시에 필요한 운송비 및 팸플릿 제작비를 지원받지 못할 때가 많다”라며 신인 작가를 위한 제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C 작가도 “신인 작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공모전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저작권료에 대응하는 '추급권' 도입해야

추급권이란 미술품이 재판매되면 원작자가 수익의 일정 비율을 분배받을 권리를 말한다. 미술품은 책, 음악 등 다른 예술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 다른 예술품은 복제물을 대량생산해 이로부터 저작권료를 얻을 수 있으나 미술품의 경우 원본에 비해 복제물의 가치가 매우 떨어진다. 그렇기에 원본이 팔리고 나면 작가가 그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거의 없다. 따라서 작품의 재판매가 이뤄지면 거래 가격의 일부를 원작자에게 되돌려주는 추급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2007년 한-EU 자유무역협정 과정에서 EU 측이 추급권 인정을 요구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추급권 도입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로 프랑스가 1920년 추급권을 도입한 이후로 이탈리아, 독일 등이 이를 뒤따르면서 현재는 전 세계 82개국이 추급권을 인정하고 있다. 아직 추급권이 한국에 정식으로 도입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 갤러리에서는 자발적으로 추급권 계약을 통해 작가에게 일정 몫을 지급하고 있다. 에코락갤러리 장현근 대표는 “법적인 효력은 없지만 많은 수집가가 추급권 계약에 자발적으로 동의해 실제로 추급권이 행사된 사례가 있다”라며 “법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많은 갤러리가 이에 동참한다면 미술계를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자발적인 참여를 도모하는 수준에서 그친다면 미술품 거래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없기에 궁극적으로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계승균 교수는 “사기업과의 계약을 통해 계약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소유권의 이전·행사를 제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자발적으로 추급권 계약서를 작성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법적인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결국 입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미술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미술품이 만들어지고 판매되는 전 과정에 걸쳐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에 더해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 또한 지속가능한 미술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대중이 미술을 좀 더 가깝게 여기고 미술계에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도적 측면과 인식적 측면이 함께 변화할 때 비로소 미술 생태계는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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