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걷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주일
홀로 걷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주일
  • 오지형 기자
  • 승인 2020.06.07 0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여파로 공연예술계는 지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관객, 배우, 기획자 등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현장 예술’ 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연의 개념을 고민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이런 가운데 이전부터 실험적인 연극들을 기획하며 주목받았던 삼일로창고극장이 지난달 14일부터 공연 <Performance for Price: 클린룸>을 선보이며 코로나19 시대 새로운 공연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Performance for Price: 클린룸〉은 1인 창작자들의 작업을 영상 생중계 형식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 공연이다. 공연은 19일(금)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8시부 터 30분 동안 유튜브 라이브로 송출된다. 각 주차에는 연기,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연예술을 선보이는 1인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업을 공개한다. 최근 문화계에서는 기획부터 연출, 연기까지 공연을 도맡아 작업하는 1인 창작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평소 이런 변화의 배경이 궁금했다는 허영균 디렉터는 “코로나19 사태로 창작자들이 만나서 작업할 수 없는 상황에서 1인 창작자의 작업을 살펴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들게 됐다”라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공연을 준비하며 작가는 ‘클린룸’이라는 격리공간에서 온전히 혼자 작업한다. 클린룸은 오직 작가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작업 기간 동안 기획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허 디렉터는 “클린룸은 1인 창작자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치”라며 “오늘날 1인 창작자가 어떤 조건과 환경 아래서 작업을 수행하는지 탐구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을 마련하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기획자와 1시간 이내의 대면 및 비대면 미팅을 각각 한 번씩만 진행하고 메일과 메신저를 통한 회의도 3회로 제한된다. 작가들은 이런 규칙을 통해 불필요한 절차를 최소화하며 자신의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과정은 공연의 주제인 ‘가성비’와도 연관된다.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을 의미하는 단어다. 오늘날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보편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은 가성비는 숫자에 불과했던 가격의 개념이 일상 속으로 깊이 스며들게 했다. 허영균 디렉터는 “시간, 에너지, 돈 등 삶의 모든 것에 기준이 되는 가성비가 공연예술에서는 어떻게 재현될지 탐구하고 싶었다”라고 공연 주제를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또한 그는 작가들이 가성비라는 주제를 새로운 작업이 아닌 기존에 하던 작업의 틀 내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허 디렉터는 작가들에게 “가성비 주제에 대해 고민하되 그 고민이 깊어져 원래 하던 작업을 변형시키지는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덕분에 작가들은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작업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작가들은 공연을 통해 가성비와 공연예술의 관계에 대해 다양한 대답을 내놨다. 허영균 디렉터는 지금까지의 공연을 살펴 본 결과 “예술의 영역에서는 가격표에 붙은 숫자를 넘어 작가의 삶 안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따라 가성비의 기준이 정해졌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3주 차 공연 〈본전 횟집〉에서 음악 작가 석대범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작업을 오랫동안 하는 것이 이득이고, 이를 위해서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평소의 생각을 바탕으로 건강과 가성비를 연결지었다. 그는 공연에서 음악을 틀어 놓은 채 운동을 하는 퍼포먼스로 관객이 가성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공연 〈Performance for Price: 클린룸〉은 공연을 단순히 영상으로 담아 방송했던 기존의 온라인 공연과는 달리 관객의 입장을 고려한 새로운 공연 방식을 고안했다. 허 디렉터는 “생중계에 가장 적합한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라며 “매주 공연을 진행하며 생중계에 맞게 방식을 보완해 나갔다”라고 밝혔다. 그는 일반 공연장에서 나타나는 암전, 배우의 등장, 박수 후 종료라는 순서가 없어 관객이 당황스럽지 않도록 각 단계를 대체하는 영상을 제작해 온라인 영상 공연에서 보여 줬다. 암전을 대신해 예고편을 공연 시작 전에 틀고, 클린룸을 떠나는 배우의 소감을 담은 영상으로 공연의 종료를 알리는 식이다. 이런 노력으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순서를 기다리며 온라인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1주 차 공연 〈위치와 운동〉을 관람한 배서현 씨(경영학과·18)는 “코로나 이후 나타난 여러 공연 실황 중계 영상과는 달리, 클린룸은 생중계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연이라서 보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오늘날 공연예술계는 공연자와 관객이 한데 모이지 않으면서도 ‘함께’ 있을 수 있는 공연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공연 〈Performance for Price: 클린룸〉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연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이와 같이 제한적인 작업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공연예술 문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시도들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