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성 교수 사회대교수 외교학과

냉전이 종식되고, 이념과 관계없이 동북아 국가들이 상호교류를 활발히 하면서, 한반도에 평화가 오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불과 십년여 만에 그러한 기대는 사라져가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공공연히 선언하였고, 일본은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테러 사태 이후 안보문제에 정신을 빼앗겨 우리에게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중국과의 고구려사 문제나 무역분쟁 역시 중국의 평화적 부상을 염려하게 한다. 더 큰 문제는 외교적 도전에 직면해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독트린을 발표하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비판하고, 미국의 일방주의에 문제를 제기하고, 고구려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해도 문제가 시원스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였는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


현재 동북아는 하나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지 못하고 경쟁과 대립의 구도에 처해 있다. 유럽이 지역통합을 향해 나가고 있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근대적 세력균형의 경쟁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제 막 본격적인 세력경쟁을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은 근대에 접어든 이래 당해온 수모를 씻고자 장기적인 국가발전전략을 세워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100여 년 전,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동북아시아의 강자로 떠올랐던 일본은 이제 다시금 정상국가, 더 나아가 군사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 하고 있다. 더욱이 대륙의 중국이 막강한 힘으로 다시금 강대해지자, 이에 대한 균형정책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며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북한은 정권과 체제의 생존을 위하여 미국과의 타협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세계의 패권국으로 모든 지역의 문제에 개입해야 하며, 각 지역의 모든 나라와 관계해야 한다. 동북아의 문제에만 집중하지도 않고, 기존의 동맹국의 입장만을 살피지도 않는다. 동북아의 각국들은 이러한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며, 최대강국인 미국을 이용하려는 용미경쟁에 힘을 쏟고 있다. 심지어는 북한도 용미에 사활을 걸고 있다. 불행히도 한국은 유럽과는 다른, 경쟁적인 국제체제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그것도 세계의 강대국들 사이에 약소국의 자리를 차지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동북아의 세력 경쟁 속에서 현명한 외교 준비해나가야
 


북핵문제는 모든 국가들에게 골치덩어리지만, 한국에게는 실로 엄청난 도전이다. 다른 나라들은 북핵문제를 관리하면서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지만, 한국은 21세기적 분단비용을 치를 뿐이다. 현재 북핵문제는 대립과 긴장의 상승구도 속에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북한은 핵위협의 수위를 높일 것이고, 미국은 압력의 강도를 더할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북핵문제는 국제연합에서 논의될 날이 올 수도 있다. 중국의 동의를 얻으면 미국은 움직일 것이다. 

 

더 키울 수 없을 만큼 문제가 커졌을 때, 어떠한 형태로든 해결은 오게 마련인데, 우리는 어떠한 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중국을 놓친 북한은 한국에 의지하려 할 것이고, 우리는 그때 어떠한 논리로 북한과 주변을 설득할 것인가? 북핵은 남북한간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한반도 전체의 생존과 번영의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할 문제다. 남북이 나뉘어 싸우는 동안 주변국은 앞서 달려간다. 분할지배책의 성공사례다.


우리의 희망은 현명한 외교다. 동북아에서 민족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북한의 변화를 설득하면서, 동시에 동북아지역의 발전과 각국의 이익을 위해 주변외세를 설득하는 논리를 세워야 한다. 물리적 국력에서 열세인 한국이 동북아 세력균형의 험로를 헤쳐나가는 길은 ‘지력균형(知力均衡)’에서 우위를 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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