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정년을 맞이한 교수들의 회고와 후학에게 전하는 말

이왕재 교수(의학과)
이왕재 교수(의학과)

3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부학과 면역학 연구에 정진해 온 이왕재 교수(의학과)를 만났다. ‘비타민C 박사’로 널리 알려진 그는 최근 세계적인 출판사를 통해 오랜 기간 진행해 온 비타민C에 관한 연구 결과들을 한 권에 엮어 발간하기도 했다. 호탕한 웃음과 뜨거운 악수로 기자를 맞이한 그는 “곧 학교를 떠난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라며 정년을 맞는 소회를 밝혔다.

Q. 어떻게 해부학과 면역학을 전공하게 됐나?

A. 학부생 때 지도교수가 해부학을 가르치던 장가용 교수였다. 그래서 본과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방학마다 해부학 연구실에 나가 실험에 참여했다. 그때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본과 1학년 때는 ‘함춘의학상 우수상’을, 본과 3학년 때는 전국 의대·치대·약대·간호대 논문발표대회에서 ‘교육부장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동기들은 내가 해부학을 전공할 것이라 여겼지만 당시 나는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학부 졸업 후 1년 간 인턴 생활을 했고, 그 뒤엔 3년간 소아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친 뒤 군 복무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아과 레지던트에 선발되지 않아 군대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장가용 교수가 해부학 전공을 권유해서 대학원 시험을 보고 해부학 연구실에 들어갔으며, 의과학자로서 연구해 갈 분야로 장가용 교수의 연구 분야였던 면역학 연구를 이어받았다. 

Q. 비타민C 관련 논문을 30편 이상 냈고, ‘비타민C 박사’로 유명하다. 비타민C 연구와 관련된 일화가 있나?

A. 장인어른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장인어른은 내가 아내와 결혼할 때부터 간 경변을 앓고 있었다. 그러다 1988년 여름 장인어른이 피를 토하며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간 경변으로 인해 정맥혈이 간으로 가지 못하고 식도정맥으로 몰려 혈관이 터진 것이 그 원인이었다. 간 경변 환자가 이 상태에 이르면 병원에선 환자가 길어야 6개월 정도 생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다행히 장인어른은 지혈이 잘 돼서 무사히 퇴원했고 이후 출혈이 재발할 때마다 지혈이 잘 돼서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2002년에는 간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됐다. 장인어른과 다른 간 경변 환자의 차이점은 그가 1987년부터 매일 하루 6g씩 비타민C를 꾸준히 섭취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경험에서 비타민C가 간 회복에 효과가 있다고 봤다. 이후 동물실험을 통해 비타민C가 간 손상 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서울대병원 간 전공 교수들과 함께 면역학적으로 입증해 세계적 권위지에 논문을 실었다. 간 회복에 비타민C가 필수적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Q. 30여 년 동안 해부학 강의를 해 왔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면?

A. 1997년에 본과 1학년이었던 학생 중 한 명이 안식교 신도였다. 안식교 신도에겐 토요일이 일하지 않고 쉬는 날인 안식일이다. 당시 해부학 시험을 토요일 오전 9시에 봤는데, 그 학생은 금요일 오후 6시부터 토요일 오후 6시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식일이 끝나는 오후 6시에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도 기독교 신자이지만 난처했다. (웃음) 선생으로서 그 학생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 결국 다른 학생들이 오전 9시부터 시험 칠 때 연구실에 앉혀 뒀고 오후 6시까지 성경 공부를 하게 했다. 그러고는 그 학생만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시험을 보게 했었다. 그 뒤로도 그 학생은 종교적인 이유로 어려움을 몇 번 겪었다고 들었는데 결국 무사히 졸업하고 의젓한 의과학자가 됐다. 요즘 같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웃음) 요즘도 가끔 그 학생을 만나는데, 여전히 신앙이 아주 깊다. 그 학생이 제일 생각이 난다. 젊은 학생이 신앙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참 귀하다고 느꼈다.

그는 후학에게 “서울대 학생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 감사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어떤 분야에서 일하게 되든 투철한 전문가 정신과 열정을 가져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건강을 주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건강해야 한다”라며 의과대학 후배들에게 전하고픈 말도 덧붙였다. “학교를 떠난 후에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라는 말을 끝으로 그는 미소를 지으며 기자를 배웅했다.

사진: 송유하 기자 yooha614@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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