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정년을 맞이한 교수들의 회고와 후학에게 전하는 말

김춘진 교수(서어서문학과)
김춘진 교수(서어서문학과)

지난달 20일 인문대(3동) 연구실에서 국내 보르헤스 연구의 선구자이자 스페인 고전문학 전문가인 김춘진 교수(서어서문학과)를 만났다. 연구실의 벽면을 가득 메운 수많은 책들 속에서 인문학자로서의 따뜻한 열정이 느껴졌다. 정년을 맞은 소감을 묻자 김 교수는 “시원섭섭한 기분”이라며 “인생의 새로운 시기를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정년을 맞고 있다”라고 전했다. 

Q. 서어서문학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서어서문학에는 수많은 매력이 있지만, 특히 언어의 국제성과 독특한 문화가 매력적이다. 스페인어는 사용하는 인구도 많고 사용 지역도 넓은 편이다. 스페인을 넘어 중남미나 미국에서도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심지어 포르투갈어권이나 이탈리아어권에서도 스페인어로 소통할 수 있어서, 국제성이 매우 높은 언어라고 평가된다. 또한 스페인어권 국가들은 상당히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스페인이나 중남미 국가들은 유럽 문화와 아랍·아프리카 문화의 교류로 만들어진 특별한 문화권에 속하기에 학생들이 서어서문학을 공부하면서 풍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스페인 고전문학을 전공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A. 고대시기에는 문학과 역사, 철학이 통합된 학문이었지만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것이 세 가지로 분화됐다. 그로 인해 각 학문의 전문성이 높아지며 깊이 있는 연구가 가능해졌지만 동시에 보편적 성격을 갖는 학문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에 문학, 역사, 철학을 함께 공부해야 보편적 의미를 갖는 ‘넓은 학문’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현대문학도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고전문학이 더 통시적인 성격을 띠고 인간 보편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해 스페인 고전문학을 전공하게 됐다. 

Q. 인문대 교수로서 인문학의 미래를 어떻게 조망하나?

A. 본래 인문학은 글과 책을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시대의 주류 학문이었는데 현대에 디지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글과 책이 갖는 공간적·시간적 제약이 사라졌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며 인간과 세상에 대한 관념이 크게 바뀌고 있다. 이에 미래의 인문학은 글과 책을 중심으로 소통하던 과거 학문에서 벗어나 과학이나 기술과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학문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서울대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A. 러시아 문호 투르게네프는 인간을 햄릿과 돈키호테 유형으로 나누며, 두 유형의 인간 중 돈키호테형 인간을 더 높이 평가했다. 햄릿형 인간은 사려 깊고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지만, 이기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고 리더십도 부족하다. 하지만 돈키호테형 인간은 리더십을 갖추고 정의를 위해서라면 두려움 없이 나선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이런 돈키호테의 모험 정신이다. 소통의 수단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과거의 것을 지키기보다는 모든 것을 변화시켜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따라서 돈키호테의 모험 정신과 상상력을 갖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하는 인재가 돼야 한다. 서울대 학생들이 자신의 지적 능력을 모험심과 결부시켜 인류의 행복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인물이 됐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춘진 교수는 “퇴임 후에는 그동안 공부해 온 것을 바탕으로 인류가 직면한 환경 오염, 생태계의 변화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인문학과 과학의 소통을 통한 시대의 변혁을 꿈꾸는 미래지향적 인문학자로서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사진: 김가연 기자 ti_min_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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