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정년을 맞이한 교수들의 회고와 후학에게 전하는 말

허남진 교수(철학과)
허남진 교수(철학과)

두꺼운 연구 서적이 꽂힌 책장, 좌식 책상과 방석, 나무장에 진열된 찻잔들. 허남진 교수(철학과)의 연구실에서는 박물관 같은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퇴임하니 학생들을 성적으로 평가하지 않아도 돼 좋다”라는 허 교수는 『한국 철학 사상 연구 자료집』을 만들며 연구에 매진함과 동시에 대학신문 부주간, 인문대 부학장, 도서관장, 기초교육원장 등 주요 보직을 맡아 학교 발전에 힘써왔다.

Q. 한국 철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오늘날 한국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

A. 사회 혼란과 갈등이 심할수록 철학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내가 대학에 진학할 때는 냉전이 끝나가면서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성장과 독립이 중시되던 시기였기에 민족적 자산을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에 한국 철학을 전공했다. 특히 이황, 정약용, 홍대용 같은 조선 시대 철학자로부터 배운 이전 세대의 경험과 문제 해결 방식을 현대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공부했다. 현대 사회가 갖는 약점을 중세 사상으로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 한국 철학 연구는 우리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무비판적인 태도가 강했다. 나도 우리 것의 가치를 찾고 싶어 연구를 시작했지만, 한편으로는 비판의 중요성도 절감하게 됐다. 그래서 한국 철학자들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보는 데 노력을 쏟았다. 이런 태도가 최근 물밀듯 들어오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외국 사상을 우리 현실에 맞게 받아들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Q. 다른 철학과 구분되는 한국 철학만의 매력은?

A. 서양 철학이나 중국 철학은 너무 광범위해서 사상이 서로 부딪히고 흘러가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지만, 한국 철학은 짧은 시기에 변화를 거듭했기 때문에 그 갈등 양상이 잘 보인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 고려는 불교 중심 사회였는데, 조선은 유교 중심 사회가 됐다. 또, 한국 전통 철학은 철학과 종교가 분리되지 않아 유교나 불교 같은 종교가 그대로 철학의 주제가 된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 철학은 이런 종교적 특성 때문에 수련, 수양에 관한 논의를 꾸준히 해왔다. 수련과 수양은 건전한 시민 양성이라는 현대 도덕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강조되는 방법이다. 이와 발맞춰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윤리성에 관한 논의 역시 주목받고 있는데, 한국 철학의 종교적, 인성적 측면이 윤리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큰 깨달음과 자극을 줄 것이다.

Q. 2004년부터 약 3년간 중앙도서관장을 지냈다. 추진한 사업의 성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A. 도서관 자료를 전자자료화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본다. 당시 허성도 중문과 교수와 함께 지금 사용하는 중앙도서관 홈페이지 통합검색 기능을 도입했다. 연구에 필요한 저널과 학생들이 원하는 단행본도 많이 구비했다. 그런데 저널 출판사에서 저널 가격을 계속 올려서, 한정된 도서관 예산에 맞추려다 보니 단행본의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저널과 단행본의 비중을 비슷하게 맞추는 데 신경을 썼다.

Q. 퇴임 후의 계획은?

A. 특별한 계획은 없다. 다만 양평에 집을 사 놓고 좋은 스피커도 구매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그 집에 가서 공부도 하고 음악도 듣고 싶다. 차나무 키우면서 좋아하는 차도 마시고 싶다. 또, 나무에 글자를 새기는 서각을 더 배워 친한 사람들에게 선물도 해 주고 싶다. 한국 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비판하는 연구를 할 마음도 있다. 그렇지만 모두 막연한 계획일 뿐, 바뀔 수 있다. 유연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내려 한다.

허남진 교수는 “교재에 의존하는 수업이 아닌, 계획하지 않았던 주제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을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수업이 좋았다”라며 “학생들이 강의만 듣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전을 읽고 공부하며 기초를 튼튼히 쌓아가길 바란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사진: 이연후 기자 opalho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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