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정년을 맞이한 교수들의 회고와 후학에게 전하는 말

강헌 교수(화학부)
강헌 교수(화학부)

지난달 20일, 자연대(503동) 연구실에서 강헌 교수(화학부)를 만났다. 연구실까지 가는 길에 창문 너머로 보이는 화학 실험 장비들이 강 교수의 일상을 짐작하게 했다. 오랜 기간 표면 화학을 연구하던 그는 얼음 화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화학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퇴임 후에는 자유롭게 시간을 쓰며 인생 공부를 하고 싶다”라고 밝히는 그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애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Q. 6월 18일에 정년퇴임 기념 세미나를 진행했다. 어떤 내용을 다뤘나?

A. 화학부에서는 주로 전공과 관련된 내용으로 정년 세미나를 진행한다. 학문 연구는 세대를 이어가는 것이기에, 지난 30여 년간 내가 한 표면 화학, 얼음 화학 연구가 한국에서 해당 연구 분야의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떻게 발전돼 가고 있는지 세미나를 통해 공유했다. 세미나가 후학들이 학문의 흐름을 파악하고 미래 연구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Q. 얼음 화학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자연과학의 연구 흐름은 크게 해방 후, 경제 발전기, 최근으로 나뉜다. 경제 발전기에는 선배 학자들이 외국에서 하던 연구를 들여와서 우리나라에 정착시키는 일명 ‘학문 수입’이 이뤄졌다. 나도 외국에서 표면 화학 박사 공부를 한 뒤 국내에서도 10년 정도 표면 화학 관련 연구를 이어갔지만, 선진국을 따라 하는 연구는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서울대에 와서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고 싶어서 ‘얼음 화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얼음 화학은 얼음의 화학적 특성과 화학 반응을 연구하는 분야다. 우주적인 관점으로 보면 우주 공간은 차가우므로 얼음이 물보다 많다. 그런데 물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 연구는 많았던 반면 얼음에서의 화학 반응은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분야를 새롭게 개척하고 국제적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했다.

Q. 지구와 우주 사이의 분자 교류 등 천체과학과 관련된 연구도 했다.

A. 얼음 화학을 연구하다 보니 차가운 우주 공간에서 물질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연구도 하게 됐다. 우주 공간에는 모래 알갱이 같은 차가운 먼지 입자들이 있는데, 이것에 물, 메탄올, 암모니아, 이산화탄소 등 분자가 붙어서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더 복잡한 분자로 재탄생한다. 이 먼지들이 중력에 의해 점점 모이면서 별과 행성이 된다. 지구도 그렇게 생겨났다. 오늘날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의 상당 부분은 이처럼 먼 옛날 우주 공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물 한 잔을 마실 때, 그 안에 들어 있는 1몰의 분자 중에는 저 멀리 시리우스나 오리온 별자리에 있던 물 분자가 한두 개 이상은 포함돼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인간과 지구, 별이 서로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라 분자가 섞이고 떨어지고 진화하며 40억 년 동안 교류해 온 관계라는 것이다.

Q. 교수 생활을 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면?

A.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들과 교류하며 배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교육은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교수가 조바심을 내고 의욕이 넘쳐서 학생들에게 지시하기만 하면 교수가 생각하는 범위, 즉 우물 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학생들은 똑똑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사고를 통해 새로운 분야를 발견해 낸다. 그래서 틀에 갇힌 사고를 답습하도록 가르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Q. 후배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학자는 새로운 지식을 쌓아 올리는 직업이다. 그런데 최근 초고속 온라인 저널리즘과 정보 범람으로 가짜 정보도 많아지고, 지식 전달의 정확성보다 속도가 중요해졌다. 앞으로 학자들이 진실을 어떻게 수호하고 전파할지 고민해야 한다. 학자와 대중을 연결하는 전문성 있는 과학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만들고, 중간 연결고리 역할을 할 사람들을 길러낼 때라고 생각한다.

강헌 교수는 “얼음 화학 연구는 이전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를 탐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라면서도 아이디어 차원에 그쳤을 뿐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명제를 찾고, 남들에게 주목받기 위한 연구가 아닌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라며 학생들도 자신의 분야를 찾아 담대히 나아갈 것을 당부했다.

사진: 이연후 기자 opalho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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