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정년을 맞이한 교수들의 회고와 후학에게 전하는 말

윤희정 교수(수의학과)
윤희정 교수(수의학과)

지난달 15일 수의대(85동)에서 윤희정 교수(수의학과)를 만났다. 그는 약 35년 동안 기생충 연구에 전념해 왔다. 연구실의 공기는 차분했으며 서적으로 가득 찬 책장은 오랜 세월 깊어진 그의 지성을 실감하게 했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그저 담담할 뿐”이라며 정년을 맞는 소감을 밝혔다.

Q. 수의기생충학은 어떤 학문인가?

A. 기생충은 사람, 동물과 함께 사는 생물로, 연충·원충·절지동물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수의기생충학은 동물에 기생하는 기생충 중에서도 가축·가금에 해가 되는 기생충을 주로 연구한다. △기생충 감염 예방과 진단 △분리와 동정(identification) △치료제 개발 등 기생충 전반을 다루는 학문이다. 

Q. 어떻게 수의기생충학을 전공하게 됐나?

A. 처음부터 수의학을 전공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고 경제적인 이유로 서울대 수의대에 입학하게 됐다. 그 후 군 복무를 하고 학교로 복귀해 공중보건학, 생화학 실험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근무했다. 당시 공중보건학 교수가 동료인 일본 도쿄대 해부학 교수의 부탁을 받고 등줄쥐와 두더지를 100마리씩 잡아 왔고, 그는 내게 동물의 뼈를 분리하고 남은 내장으로 기생충 검사를 해 보라고 했다. 검사 결과를 기생충학 교수였던 장두환 교수에게 가져갔고, 그는 내게 곧장 짐을 싸서 자신의 연구실로 오라고 했다. 공중보건학 교수에게 기생충학 실험실로 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허락해서 그 길로 기생충학을 하게 됐다. 학부 3학년 여름방학에는 하루 12시간씩 현미경으로 기생충 검사를 하느라 시력이 나빠지기도 했으나 무척 즐거웠다. 하지만 공중보건학 교수가 등줄쥐와 두더지를 잡아 오지 않았더라면 다른 전공을 선택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Q. 기생충 샘플 수집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A. 수의대가 수원에 있던 학부 3학년 때 캠퍼스 주변 양계장과 도계장을 찾아다니면서 닭 분변과 내장을 받아 콕시듐* 검사를 했다. 그때 방문했던 양계장은 30곳 정도인데, 각각 한 달에 한 번씩 1년 동안 갔다. 도계장에서는 매일 20마리의 닭 내장을 얻어와서 콕시듐 검사를 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그 모습을 본 장두환 교수가 모터 달린 자전거를 사줬다. 덕분에 도로를 신나게 달릴 수 있었지만, 진흙밭을 지날 땐 무거운 자전거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석사 졸업 후 가축위생연구소(현 동물위생시험소)에 채용돼 실험실을 떠날 때는 그렇게 모았던 자료를 연구실에 두고 갔다. 그땐 논문을 쓸 줄 몰라서 데이터를 뒀다가 나중에 논문 쓸 때 사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연구실로 돌아왔을 때는 후배들이 이미 자료를 모두 없애 버린 뒤였다. 당시엔 PC가 없었기 때문에 복구할 방법도 없었다. 데이터를 안 챙긴 건 내 잘못이었지만, 그땐 섭섭함이 컸다.

Q. 수의기생충학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A. 대학원생이 됐던 1980년대에 비하면 기생충학 분야가 많이 축소됐다. 사람과 동물의 기생충에 효과적인 구충제가 잘 개발돼 있기 때문이다. 국가 주도로 1969년부터 1995년까지 진행된 ‘기생충구제사업’으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기생충이 박멸 단계에 이르렀고, 의대에서는 기생충학 실험실이 없어지거나 이름이 바뀌는 변화를 겪었다. 폭발적으로 증식해 질병을 유발하는 세균·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기에 병원체로서의 기생충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새로운 기생충이 발견되더라도 세균·바이러스보다 위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중요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은 기생충 연구를 위해 연구비를 지원받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수의학 분야에서 다루는 기생충이 인간 의학 분야처럼 박멸 단계에 이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하므로 수의기생충학 연구는 아직 필요하다.

윤희정 교수는 후학에게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고, 수의대 후배들에게는 “기초예방 분야 공부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희망 서린 얼굴로 기자를 떠나보내는 그의 뒤편으로 비 갠 뒤의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콕시듐(coccidium): 가축의 장에 기생하며 설사·혈변·빈혈 등의 임상증상을 유발하는 원생동물(protozoa) 중 하나

사진: 김가연 기자 ti_min_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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