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들에게 | 졸업생에 전하는 응원과 격려

박진호 교수(국어국문학과)
박진호 교수(국어국문학과)

저는 오래전에 영화 ‘트루먼 쇼’를 매우 인상 깊게 봤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짐 캐리가 연기한 주인공은 방송국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세트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주인공의 가족과 주위의 모든 사람이 방송 프로그램에 의해 기획된 것인데도 주인공은 그것을 모르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데, 기획된 세트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낀 이 여인은 주인공에게 진실을 알려주려 하다가 방송국에 의해 저지되고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합니다.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던 주인공에게 뭔가 이상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주인공은 첫사랑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주인공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험난한 바다 항해를 거쳐, 수평선으로 보였던 방송국 세트장 가장자리에까지 도달하고, 세트장 안과 밖을 구분하던 장막을 찢고 밖으로 나갑니다.

주인공은 세트장 안에서 살 때는 매우 안전했습니다. 주인공이 사고로 사망하거나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프로그램에 큰 타격이 되기 때문에, 방송국 스태프들은 주인공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온갖 배려를 다 합니다. 신체적 안전뿐이 아닙니다. 심리적으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일들도 미연에 방지해 줍니다. 주인공에게 진실(!)을 알려주려고 각본과 다르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스태프들이 온 몸을 던져 막아 줍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주인공은 매우 안전했고 나름 행복했을지도 모르지만, 주인공은 그런 안락한 삶에 만족하지 않고 안전하지 않은 바깥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껍질을 깨고 알 밖으로 나오기' 류의 이야기는 사실 많습니다. 관점에 따라서 이 영화는 그런 상투적인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 유치한 우화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그토록 많은 것은, 우리가 평소에 잊고 있던 어떤 진실을 알려주고 의식 속 깊은 곳으로부터 어떤 감동을 이끌어 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가 우리 마음을 건드리는 그 지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는 매우 오랜 기간 동안 150명 정도가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 수렵·채집을 하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가정, 국가, 학교, 직장 등이 만들어진 것은, 기나긴 인류 역사에서 보면 상당히 최근의 일입니다. 이런 사회적 제도가 만들어진 동기들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그것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태어나서 일정 정도 성장하기 전까지는 너무나도 나약하기 때문에 주위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지켜 주고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 주는 장치로서 (작은 혈연 집단으로서의) 가정이 형성됐을 것입니다. 다른 집단의 습격에 대비하고 자기 집단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집단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고 전문적인 전사(戰士)를 양성하게 됐을 것이고, 농업의 발전으로 인해 생긴 잉여 생산물을 분배·관리하는 시스템이 발전돼 국가 같은 큰 집단도 발생했을 것입니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정에서 가르치는 것으로는 부족하게 돼 학교 같은 교육 시스템이 생겼을 것이고, 경제 활동을 보다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회사 같은 경제 시스템도 생겼을 것입니다. 인간은 이런 가정, 국가, 학교, 회사 같은 것들 속에 속함으로써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안전하게 됐습니다. 인류의 훌륭한 발명품입니다.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착각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를 주로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지만, 이 말을 개인과 집단 사이에 적용해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가정·국가·학교·회사 같은 집단은 인간이 더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발명해 낸 제도이고, 그 속에는 인류가 기나긴 세월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체득한 지혜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기 위한 배려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치안 시스템, 건강보험, 복지 제도, 실업급여, 보건의료 시스템, 학폭위, 의무교육제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나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베풀어 주신 것들에 대해 아주 가끔은 고마움을 느끼지요? 조금만 생각을 확장하면 나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그토록 많은 제도를 만들고 배려해 주고 있는 학교, 국가(어쩌면 회사까지도)에 대해서도 아주 가끔은 고마움을 느낄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울타리 안에 안주하고 있을 때는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신상목 씨(‘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일본사/세계사’의 저자)가 SNS에 쓴 글 한 토막이 생각납니다.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절벽 같은 곳에 가 보면, 서양과 동아시아가 꽤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서양은 ‘위험’, ‘추락 주의’ 같은 간단한 팻말 하나 정도 세워져 있는 것이 보통이라고 합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국가나 지자체는 ‘여기서 절벽 쪽으로 더 다가가면 위험하다. 추락할 수도 있다. 그러니 네가 알아서 주의해라.’라고 알려주는 데 그치는 것입니다. 반면에 동아시아에서는 그런 곳에 울타리를 설치합니다.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훨씬 더 적극적인 조치입니다. 그런데 더 안전하게 된 덕분에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울타리 없는 경치에 비해 울타리가 쳐진 경치는 한결 덜 아름답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절경, 장관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양은 절경을 포기하지 않는 대신, 국가는 최소한의 고지만 하고 각자의 안전은 각자 책임진다는 식의 관습과 제도가 정착된 모양입니다. 반면에 동아시아는 절경을 포기하는 대신, 국가가 국민들을 (마치 부모가 어린아이를 돌보듯이) 안전하게 보호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식의 관습과 제도가 정착된 것 같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하는 것은 물론 가치 있는 일입니다만, 그 가치를 추구할 때 포기해야 하는 다른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끔은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안전의 가치와 다른 가치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에 따라 복수의 정답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도 가끔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일본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는 가정, 국가, 회사 같은 그런 조직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살기보다는 과감하게 그 밖으로 나와 야생의 삶을 살아 보라고 권합니다. 자기 스스로가 그런 삶을 실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시도를 해 보면, 인류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고안한 제도들이 왜 훌륭한지도 깨닫게 되고, 다양한 가치 가운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고, 그런 제도를 더 좋게 다듬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의 삶을 더 잘 기획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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