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한국 갯벌의 우수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다

김종성 교수(지구환경과학부)
김종성 교수(지구환경과학부)

갯벌은 수십 년 전만 해도 ‘쓸모없는 땅’, 버려도 되는 공간으로 인식돼 7~80년대 개발우선주의 정책의 최대 희생양이 됐다. 그 결과 우리나라 갯벌은 지난 40년간 지속적인 대규모 간척사업과 매립으로 절반가량 소실됐다. 우리나라는 과거 5,000㎢ 정도의 광활한 자연 갯벌을 소유한 몇 안 되는 국가였으나 지금은 약 2,500㎢ 규모의 갯벌만을 갖고 있다. (참고로 제주도 면적은 1,850㎢다) 

대규모 간척사업에 의한 생태계 피해의 최악으로 꼽히는 사례로는 한때 죽음의 호수로 전락했던 ‘시화호’가 있다. 필자가 갯벌 공부를 처음 시작할 당시인 90년대 경기만 인근 갯벌에 가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갯벌 생물들이 살고 있었다. 당시 화성 갯벌에는 1㎥에 무려 200개체의 가리맛조개가 살 정도로 풍부하고 건강한 생물상을 보였다. 

시화호의 역사는 1989년 건설을 시작한 시화 방조제로부터 출발한다. 1994년 경기만을 가로질러 12.7㎞라는, 당시로는 가장 긴 시화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방조제 건설 후 인공호수가 된 시화호의 내부 수질이 점차 악화했고, 급기야 빈산소 환경으로 변해버렸다. 결국, 대부분의 갯벌 저서생물은 숨을 쉬러 표층으로 올라오면서 모두 폐사했다. 

가리맛조개의 최대 밀생 지역이었던 화성과 남양만 일대의 갯벌이 모두 사라진 후로 국산 가리맛조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단순 수산물 가치만으로 우리는 매해 수백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보고 있다. 국민의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학계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으면서 다행히 지난했던 시화호의 간척 역사는 2011년 조력발전소 건설로 타협됐고 시화호 내 수질은 개선됐다. 그러나 우리는 옛 시화, 화성의 자연 갯벌을 영원히 잃어버렸고, 맛의 황제인 가리맛조개를 보기란 이제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간척사업 이후 가리맛조개가 폐사된 갯벌의 모습.
간척사업 이후 가리맛조개가 폐사된 갯벌의 모습.

현재진행형인 ‘새만금’ 간척사업 역시 시화호와 비슷한 뼈아픈 간척의 흑역사를 그대로 밟고 있다. 1991년 시작된 새만금 간척 공사는 90년대 말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로 중단되고 2003년 전국민적 반대와 삼보일배 운동 등에 부딪혀 잠정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엇갈린 사법부의 1, 2심 결정과 대법원의 최종 간척사업 추진 허용 결정으로 2006년 간척 공사가 재개됐고, 결국 우리는 33.9㎞라는 세계 최대 길이의 방조제를 가진 불명예 국가가 됐다. 새만금 사업은 애초 목적인 농경지 확보로부터 산업단지 및 주택, 신항만, 태양광 및 풍력단지, 명품도시 건설에 이르기까지 지난 30년간 꾸준히 탈바꿈을 시도해 왔고 아직도 그 끝을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자연 갯벌과 바다생물이 주는 혜택, 즉 생태계 서비스는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시화호, 새만금 외에 아직도 다양한 중소규모의 간척과 매립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암울하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갯벌이 소개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80년대 전국적으로 대규모 간척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당시는 갯벌 연구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부족했기에 정부의 대규모 간척과 매립에 따른 갯벌의 소실과 생태계의 파괴에 대해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대응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필자의 은사님인 고철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독일 킬대학에서 해양생물학 공부를 마치고 80년대 초에 서울대 해양학과로 부임하면서 우리나라에 갯벌 연구가 비로소 시작됐다.

고 교수는 우리나라 갯벌 연구의 선구자로 평가되며, ‘마른 땅’이란 뜻을 가진 일제 강점기 용어인 ‘간석지’를 쓰지 말고 ‘넓은 들’을 의미하는 순우리말 ‘갯벌’을 학계에서 통일해 사용해야 한다고 최초로 제안했다. 그는 우리나라 갯벌의 중요성을 세계 학계에 피력하고 국민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 ‘세계 5대 갯벌’이라는 말을 만들어 서해 갯벌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앞장섰다. 고 교수는 2012년 정년 후에도 해양 정책 분야의 저명한 국제 학술지에 「한국의 갯벌」이라는 제목으로 특별호를 발표해 국제학계에 한국 갯벌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렸다. 평소 그의 소신과 철학이 후속세대로 이어져 최근 서해 갯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과거 우리는 갯벌의 가치와 생태계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간척과 매립으로 간석지는 농토로 바뀌어도 무방하고 사라져도 된다는 무지한 철학이 자리 잡았던 것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우리는 갯벌 본연의 자연 자본 가치, 그리고 갯벌이 인간에게 주는 다양한 혜택을 부지불식간 포기하고 살아온 셈이다. 그러나 갯벌의 가치는 다양하고 실로 크다. 이렇게 갯벌이 제공하는 기능을 통틀어 ‘생태계 서비스’라 한다. 앞서 언급한 가리맛조개 외에도 갯벌에는 새우, 게, 어류 등 매우 다양한 바다생물이 산다. 우리에게 다양한 먹거리 수산물을 제공해 주므로 이를 ‘공급 서비스’라 부른다. 갯벌의 공급 서비스는 비단 수산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갯벌은 화장품, 페인트, 탈취제, 접착제, 필터 등 친환경 제품과 의약품 등의 천연원료로 활용되는 다양한 원료를 제공한다. 이 원료들은 광물자원, 유전자원, 장식용으로도 사용되는 등 그 활용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갯벌의 또 다른 중요한 가치는 ‘조절 서비스’에 있다. 갯벌은 점이지대로서 육상에서 강과 하천을 거쳐 바다로 유입되는 각종 유해성 오염물질과 쓰레기를 정화해 주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갯벌의 흙이 유해물질을 흡착·제거하고 갯벌의 다양한 생물이 폐수와 오염물질을 걸러 먹고 분해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한 요즘, 재해방지, 기후 조절, 탄소 흡수 능력까지 고루 갖춘 갯벌의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한편, 갯벌은 ‘지원 서비스’로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이자 산란장이 되고 물, 영양염을 순환시키며 1차생산(유기물 고정)을 제공한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자연 본래의 기능이기도 할 것이다. 끝으로 사회문화적 가치를 대변하는 ‘문화 서비스’가 있다. 여가, 관광, 치유, 연구, 교육 등 다양한 목적으로 우리는 갯벌을 이용하고 그 혜택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갯벌의 생태계 서비스가 크다는 사실이 학계에 보고되고 또 일반 국민에게까지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갯벌의 가치가 숲의 10배, 농경지의 100배에 이른다고 세계 학계에 보고된 것은 불과 20년 전이다. 우리나라에서 갯벌 복원 사업이 시작된 것이 2000년대 후반이니 복원 역사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셈이다. 나아가 우리나라 해양공간 계획과 관리에 생태계 서비스 개념이 새롭게 포함된 것도 불과 수년 전 일이다. 이렇듯 지난 수십 년간 갯벌의 가치와 생태적, 사회경제적 중요성에 대한 대국민 인식은 사뭇 높아졌고, 이와 함께 학계와 정부의 노력도 이어져 왔기에 지금 갯벌을 찾고 망가진 갯벌을 다시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최근 바다와 관련한 두 개의 중요한 법률이 제정됐다. 첫째는 2018년 제정된 ‘해양공간계획 및 관리에 관한 법률’(해양공간계획법)이다. 기존 우리나라의 해양공간 관리는 ‘연안관리법’에 의거해 바다 일부분인 연안에 제한돼 있었다는 점이 한계였으나, 해양공간계획법에 따라 관리 구역이 연안, 영해, 배타적경제수역, 대륙붕까지 포함해 우리나라 전체 해양공간으로 확장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 이는 영토와 생물까지 아우르는 바다 주권에 대한 대국민 인식 증진과 함께 해양강국으로서의 면모와 위용을 갖춰가는 의미 있는 발걸음일 것이다. 

둘째는 필자가 더 애착을 갖는 법률인데, 바로 갯벌 생태 복원을 골자로 하는 ‘갯벌 및 그 주변지역의 지속가능한 관리와 복원에 관한 법률’(갯벌법)이다. 갯벌법에서 주목할 점 역시 관리 구역의 범위로, 갯벌 관리의 공간적 범위를 갯벌과 그 주변지역으로 해 바닷가와 수심 6m 이내 해역까지 확장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갯벌의 위쪽인 바닷가는 물론, 썰물 때도 드러나지 않는 수심 6m의 얕은 바다까지를 관리 대상에 새롭게 포함한 것이다. 이는 갯벌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서식공간과 산란, 이동 등의 생태적 활동 영역까지 확장해서 관리해야 한다는 개념을 수용한 것으로 매우 선진적인 관리 체계로 평가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갯벌과 그 생태계를 구조뿐 아니라 기능적 측면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학계의 과학적 의견과 노력이 정책에 반영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최근 필자는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나라 갯벌이 세계 최고라 주장한다. 서해에 광활하게 발달한 우리나라 갯벌과 생태계는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고 교수님이 발굴한 세계 5대 갯벌은 우리나라 서해 갯벌 이외에 유럽 와덴해, 미국 동부 연안, 캐나다 동부 연안, 브라질 아마존강 하구를 포함한다. 그런데 우리는 최근 연구를 통해 서해 갯벌의 해양생물 다양성과 1차생산력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2009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와덴해 갯벌과 가히 어깨를 나란히 할만하니 이제 서해 갯벌을 세계 제1의 갯벌로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간척과 매립의 무지했던 아픈 역사는 뒤로하고 역간척과 복원이라는 키워드로 희망찬 미래로 전진해 나갔으면 한다. 요즘 모두 어렵고 힘든 시기지만 ‘K-방역’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은 급부상했다. 세계적인 서해 갯벌을 가진 해양강국의 국가적 위상과 역할도 점점 중요해지는 지금,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의 보배인 서해 갯벌을 잘 가꿔 후속세대에 물려주는 것도 우리 세대의 역할이자 보람일 것이다.

에피소드 하나

대학원 박사과정 때다. 후배와 함께 갯벌 규조류(갯벌의 미세조류 중 가장 우점하는 단세포 광합성 식물) 광합성 실험을 하게 됐다. 규조류가 ‘낮’과 ‘밤’에 광합성을 어떻게 다르게 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빛 조건은 전구를 켜고 끄는 것을 자동 설정해 낮과 밤을 반복 재현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규조류가 전구가 꺼진 상태(즉 ‘밤’ 조건)에서 광합성을 해 산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본래 광합성은 빛을 이용하는 것인데 상식 밖의 결과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사실 전구가 나가는 바람에 낮 조건으로 세팅된 시간이 밤 조건이 된 “해프닝”으로 끝날 뻔했다. 우리는 이 결과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규조류가 광합성을 한 ‘밤’ 시간이 현장의 ‘낮’ 시간이란 점을 깨닫고 생체리듬이란 새로운 해석에 도달했고 생명의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지금도 군산대 교수가 된 그 후배를 만나면 가끔 웃음이 난다. 그 후배와 필자는 이렇게 우연히 발견한 규조류의 “생체시계” 현상을 세계 최초로 보고하는 행운을 잡았다. 

에피소드 둘

2015년 순천시 공무원, 시민들과 함께 순천만 갯벌을 둘러볼 때의 일이다. 따뜻한 봄날, 쨍쨍한 햇살 아래로 갯벌 표면에 “규조꽃”이 핀 것을 보고 무척이나 반갑게 관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저기 갯벌 위가 누런데 썩은 거 아니에요?”라는 한 시민의 목소리에 담당 시청 공무원이 무척이나 당황한 것이다. 갯벌이 거무칙칙한 데다 퇴적물도 똥같이도 보이고 얼른 보면 썩어 보일 만도 하다. 표층의 누런 피막의 정체는 다름 아닌 규조류의 바이오-필름이다. 규조류는 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날 때 따뜻한 빛을 쫓아서 퇴적물 표층으로 올라와 얇은 막을 형성한다. 특히 빛이 강할수록 많이 올라온다. 규조류가 많다는 것은 갯벌이 그만큼 건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때 이후로 “해양학에 대한 전문과학지식을 일반인에게 알려야겠다”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필자가 2016년부터 학부생 대상인 기초교양과목으로 “바다과학기행” 강의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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