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유지원 기자 uz10913@snu.ac.kr
삽화: 유지원 기자 uz10913@snu.ac.kr

9월도 한 주가 지났다.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직 가을의 화창한 날씨를 기대하긴 무리인 듯하다. 올여름엔 햇빛을 보기 참 힘들었다. 비가 오거나 우중충한 날이 계속됐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사회에 우울감이 짙게 내려앉은 지금 날씨까지 우중충하니 사람들이 느끼는 우울감은 배가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이 사회 분위기에 따라 날씨를 정하는 건지, 아니면 코로나가 퍼지지 않도록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는 것인지는 모르나 여름에 내내 비가 온 데 이어 가을이 되니 이제 한반도로 태풍을 세 개 연속으로 보내고 있다.

매주 하나씩 태풍이 오니 요즘 뉴스에서 자주 소환되는 이름이 있다. 바로 태풍 ‘매미’다. 오래전 가을 한반도를 관통했던 이 태풍의 인상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이후 한반도를 거쳐 가는 모든 태풍은 졸지에 매미와 비교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태풍에 관한 뉴스를 보면 대부분 언론에서 태풍의 위력을 ‘매미에 버금간다’, ‘매미 급 풍속이다’라며 매미 기준으로 설명한다.

나 개인적으로도 태풍 ‘매미’는 인상이 깊다. 흔히 ‘매미’의 위력을 보여줄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진이 부산의 부두에 서 있던 대형 크레인이 강풍으로 휴짓조각처럼 쓰러진 모습이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이 그 쓰러진 크레인이 있던 부두 근처였다. 근처라곤 해도 부두에 적재된 컨테이너 박스들이 작게 보일 정도로는 떨어져 있는 곳이라 우리 집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태풍의 위력을 온전히 느끼기는 충분했다.

아버지 일 때문에 시골 할머니 집에서 추석 연휴를 채 다 못 보내고 집으로 왔을 때는 이미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왔었다. 집에 오기 전만 하더라도 여느 때와 같이 태풍 하나가 올라오나 보다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고 밤이 되니 정전이 됐다. 엄마는 시골에서 받아온 음식들도 많은데 냉장고 전기가 나가서 어쩌냐고 불평했지만 이내 그건 큰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밤이 더 깊어지자 강풍으로 인해 건물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 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졌다. 가족들은 이러다 건물 무너지는 거 아니냐면서 걱정했다. 그렇다고 밖에도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나마 흔들림이 덜 느껴지는 방에 모여 촛불 앞에서 덜덜 떨며 밤을 꼬박 샜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전기가 다시 들어온 뒤 TV를 켜고 본 것이 바로 대형 크레인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 근처에 살기도 해서 학교에서 그 부두로 견학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평소에는 모형처럼 조그맣게 보이던 크레인은 가까이서 보면 무서울 정도로 거대했다. 그런 크레인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겨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지난 밤 우리를 떨게 했던 태풍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중학교 졸업 후 부산을 떠나기도 했고 이후 서울로 오면서 다행스럽게도 태풍의 무서움을 당시만큼 느껴본 적은 없다. 올여름 수해로 인해 내가 본 손해라고 해봐야 얼마 전 삼겹살 도시락을 시켰을 때 상추가 오지 않았다는 것과 다가오는 추석 차례상 물가 정도다. 하지만 창밖의 ‘매미’ 소리에 떨던 나처럼 지금도 두려움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올해는 코로나19에 자연재해까지 겹쳐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도 많다. 태풍이 지나가고 이제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여동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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