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회 | 서울대 외국인 대학원생 간담회

왼쪽부터 갈루 씨, 세자르 씨, 황예정 기자, 소라비 씨다.
왼쪽부터 갈루 씨, 세자르 씨, 황예정 기자, 소라비 씨다.

지난달 7일,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 씨는 한국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의정부고 학생들이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찍은 졸업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게시하고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행위인 ‘블랙 페이스’를 지적한 것에 대한 사과였다. 자신이 “선을 넘었다”라는 그의 사과는 오히려 한국 사회가 외국인에게 그어놓은 진한 경계선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흐른 지난 2일(화) 『대학신문』에서는 나이지리아에서 온 갈루 씨(국제협력과 석사과정·19), 스페인에서 온 세자르 씨(한국학과 석사과정·20), 인도에서 온 소라비 씨(한국학과 석사과정·20)와 함께 샘 오취리가 한국 사회에 남긴 질문에 대해 고민해 봤다. 

 

▶샘 오취리와 의정부고 졸업사진에 관련된 이슈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세자르: 학생들이 의도적으로 인종차별을 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블랙 페이스가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보여줬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 사건을 통해 한국인들이 블랙 페이스에 대해 알게 되고 인종차별 문제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갈루: 샘 오취리가 영어와 한국어를 다르게 썼다는 비판은 영어를 한국어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다. 오취리는 블랙 페이스가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의미로 ‘educate’와 ‘ignoranc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단어다. 그런데 한국어로는 ‘교육하다’, ‘무지’라는 심각한 뜻으로 번역되다 보니 사람들이 오취리가 한국을 업신여겼다고 오해한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은 한국 사회가 외국인을 수용하는 정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학생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한 것은 인종차별적인 의도가 없었기에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고 본다. 오히려 나는 블랙 페이스보다 오취리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논란이 일자 몇몇 한국인들이 정부에 영주권자인 오취리를 강제 추방하라는 청원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만약 한국이 어떤 이를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여기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줬다면, 그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그를 해외로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법으로 처벌하라는 청원을 올렸을 것이다. 즉, 한국 사회는 오취리를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아무리 한국 사회에 잘 통합된 것처럼 보여도 결국 외부인이며, 쫓겨날까 봐 자신의 의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존재임이 드러났다. 

 

▶흑인에게 블랙 페이스는 어떤 의미인가?

갈루: 상황에 따라 다르다. 미국에서 흑인들은 종종 서로를 ‘nigger’라고 부른다. 이때는 친구라는 의미다. 그런데 같은 말을 백인이 흑인에게 하면 그때는 노예라는 의미가 된다. 얼굴을 까맣게 칠하는 행위 자체는 문제가 없다. 다만 그 행위가 이뤄진 맥락이 중요하다. 블랙 페이스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를 봐야 하는 것이다. 어떤 흑인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흑인은 매우 모욕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특히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고 지위가 낮다고 생각할수록 블랙 페이스가 심각한 차별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흑인들에게 누군가 차별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그를 일일이 지적하며 화를 내기보다는 좀 더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그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려줘야 한다.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는가?

소라비: 나는 한국어를 잘해서 그런지 대부분의 한국인은 내게 친절하다. 그런데 입을 열기 전에는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번은 비에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나를 걱정하는 꼬마에게 아빠가 “그쪽 보지마”라고 말해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내 옆자리를 놔두고 멀리 앉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그게 기분 나쁘기보다는 이상하다고 느낀다. 

세자르: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백인 남성인 나는 인종차별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전에는 친구들끼리 ‘긍정적인 인종차별’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친절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처음으로 인종차별을 겪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떤 곳에서는 출입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갈루: 한국은 외국인을 인종뿐만 아니라 국적에 따라서도 다르게 대하는 것 같다. 같은 흑인이더라도 서양 국가에서 온 흑인은 나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는다. 미국인이나 영국인은 한국에서 쉽게 직업을 구할 수 있지만, 아프리카인은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한국에서 영어 교사를 하기 힘들다. 

 

▶한국에서 외국인의 위치는 어떤가? 한국인들은 외국인을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외국인의 의견을 잘 수용하나?

세자르: 한 교수님은 한국에서 산 지 30년이 넘으셨는데도 아직도 학생들과 회식을 하면 “젓가락질을 굉장히 잘하신다”라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아무리 한국에 오래 살고 한국을 잘 알아도 외모가 다르면 한국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외국인은 한국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 외국인이 한국 사회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한국인들은 “그건 네가 한국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사회가 만든 일정한 틀을 벗어나면 ‘외국인’이라고 선을 긋는 것 같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고 느낀 또 다른 계기는 최근 한국에서 열린 ‘Black Lives Matter’ 시위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이었다. 시위에 참석했던 나는 이것이 정말 좋은 행사라고 생각했고, 기사가 나가면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기사에 달린 댓글이 대부분 “왜 한국의 일도 아닌데 여기서 시위를 하냐”라는 반응이었다. 이를 보면서 외국인으로서 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미디어에서 보이는 외국인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세자르: 한국 TV 프로그램은 종종 방송에 나오는 백인을 ‘White Monkey’ 취급한다. “봐, 외국인이 한국말도 잘해”라고 말하며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 하는 것이다. 외국 커뮤니티에서는 한국의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외국인들이 일부러 바보처럼 행동해서 돈을 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아직 한국에서는 외국인을 신기해하는 문화가 남아있는 것 같다. 

소라비: 유튜브에서 ‘인도 사람이 하는 한국어 성대모사’ 같은 영상을 많이 봤다. 인도 억양을 과장해서 따라하는 것인데, 실제로 나는 그렇게 한국말을 하지 않는다. 왜 굳이 그런 영상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또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태국 연예인이 자신의 이름을 맞춰달라고 하자, MC들이 ‘사와디 캅’, ‘푸팟퐁 커리’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어떤 점에서 웃긴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국이 다문화, 다인종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갈루: 어린아이들은 인종이 다르다고 차별하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모든 이들은 평등하며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교육해야 한다. 또한, 이민법을 통해 외국인들이 쉽게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나라의 문턱을 낮추는 방법도 있다. 지금도 한국은 여러 장학교육제도를 통해 다양한 외국인들을 데려오고 있다. 더 많은 외국인에게 나라를 개방한다면 다문화 포용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자르: 우선 한국에서 살려는 외국인은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한국은 과거의 ‘한민족’ 개념을 내려놓고 세계화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흐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다면 한국도 자연스럽게 많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포용적인 사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사진: 송유하 기자 yooha614@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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