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다큐멘터리 "미국 수정헌법 13조" 리뷰

“숨을 쉴 수 없어요, 날 죽이지 마세요…”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비무장 상태던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하기 직전에 남긴 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항의 시위가 크게 일어났고, 전 세계적으로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라는 구호가 유행하며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가 다시금 주목받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분노한 것은 비단 이 하나의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에이바 듀버네이 감독의 다큐멘터리 〈미국 수정헌법 제13조〉는 미국 사회의 흑인들이 처한 현실과 함께 그들이 당하는 인종차별의 역사적 배경과 흑인이 쉽게 범죄자로 몰리도록 구조화된 미국의 시스템을 조명한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이기도 한 ‘미국 수정헌법 제13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노예 제도나 강제 노역도 해당자가 정식으로 기소돼 판결로서 확정된 형벌이 아닌 이상, 미합중국과 그 사법권이 관할하는 영역 내에서 존재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는 이 조항의 허점을 지적하며 시작한다. 제13조는 표면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해 흑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 조항이지만, “해당자가 정식으로 기소돼 판결로서 확정된 형벌이 아닌 이상”이라는 부분 때문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예외조항이 된다.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라면 노예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이어서 듀버네이 감독은 영화 〈국가의 탄생〉(1915)의 장면을 통해 노예 해방 이후 흑인에 대한 사회의 공포와 혐오 실태를 보여준다. 미국 남북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는 멋진 양복을 차려입은 백인들 사이에서 흑인이 식욕과 성욕에 미쳐 있는 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백인 여성을 노리는 호색한이나 백인 남성에게 충실하게 복종하는 개로 그려졌다. 시종일관 흑인 남성을 백인 여성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그린 이 영화는 사회가 오랫동안 흑인 남성에게 ‘강간범’, ‘범죄자’의 이미지를 부여해 왔음을 드러낸다. 〈국가의 탄생〉은 KKK와 같은 단체가 흑인에게 집단 린치를 벌이는 모습을 미화했으며 백인 우월주의적 여론을 형성했다. 이런 흑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지금까지도 인종차별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13조〉는 흑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그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통계를 인용해 흑인이 불합리하게 범죄자로 몰리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고발한다. 미국 사법 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일생 동안 백인 남성이 수감될 가능성은 17명 중 1명꼴이지만 흑인 남성은 3명 중 1명꼴이다. 또 흑인 남성은 미국 전체 인구의 6.5%를 차지하지만, 미국 전체 수감 인구의 40.2%를 차지한다. 한편 같은 죄를 지어도 백인이면 경형에 처하고 흑인이면 중형에 처한 경우도 수없이 많다고 한다.

아울러 듀버네이 감독은 노예제 폐지 후에도 흑인에 대한 차별이 제도적으로 굳어진 배경을 밝힌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공화당보다 강력한 범죄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며 폭력 범죄를 3번 저지르면 종신형을 사는 ‘삼진아웃제도’를 도입하고 경찰을 증원했는데 사실상 이런 규제의 주된 대상은 흑인이었다. 이후 군대처럼 조직화된 경찰은 현대 사회까지 이어지는 흑인과 경찰의 대립에 결정적인 시초가 된다. 

그런데 흑인 차별 문제가 내포한 모순은 이런 인식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듀버네이 감독은 미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수감자 수가 월등히 많은 이유가 수십 년에 걸친 로비 행위와 감옥에서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이익 문제 때문임을 지적한다. 20세기 중반부터 미국 정치인들은 ‘ALEC’(American Legislative Exchange Council)라는 사설 클럽을 통해 기업인이 원하는 법안을 처리하고 있었다. 2012년에 미국에서 BLM 운동이 시작된 결정적인 계기인 조지 짐머만 사건*을 통해 미국 사회는 그간 정당방위를 폭넓게 용인해 온 ‘정당방위법’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했는데, 이 역시 ALEC이 통과시킨 법안이었다. ‘위험한 흑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작동하는 아래, ALEC의 대표적인 기업 회원인 월마트는 정당 방위법 제정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된 총기 판매 수익을 챙겼던 것이다. 또 클린턴 대통령의 ‘삼진아웃제도’, ‘법정 최소 형량 규정’은 수감자의 수를 크게 늘려 놓았는데, 이는 ALEC의 회원이었던 미국 최초의 사설감옥 CCA의 이익 극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더 많은 흑인 범죄자를 수감시켜 사설감옥에서 이들의 노동을 착취하려던 이익 관계가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듀버네이 감독은 이처럼 수감자 수와 흑인 범죄자 차별 논란 등이 ALEC 내부의 ‘정치적인 이익’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흑인이 감옥으로 이송되는 범죄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크게 동요하고 분노하는 것일까?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는 경찰들이 수상해 보이는 흑인들을 멈춰 세워 몸을 수색하고, 체포해 심문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많은 사람이 ‘Black Lives Matter’에 대항해 ‘All Lives Matter’(모두의 목숨은 중요하다)를 외친다. KKK의 가면은 없어졌을지 몰라도 흑인은 여전히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산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현대의 맥락에만 국한해 경찰의 가혹 행위에 대한 흑인의 항의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미국 수정헌법 제13조〉의 내용과 같이 흑인 차별의 총체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조지 짐머만 사건: 2012년 방범대원인 조지 짐머만이 총기를 소지한 채 비무장 상태인 17살 흑인 청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수상하다는 이유로 뒤쫓았고, 몸싸움을 벌이다 결국 살해했다. 그런데 정당방위를 주장한 짐머만에게 배심원단이 무죄를 선고해 그 근거가 되는 법률인 ‘정당방위법’에 대해 논란이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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