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교수(서양사학과)
안병직 교수(서양사학과)

어느덧 정년을 맞아 학교를 떠나게 되니 여러 가지 감회가 든다. 그 가운데 하나는 떠나는 학교, 서울대에 대한 것이다. 서울대는 그동안의 내 삶에서 도저히 빼놓을 수 없는 의미를 지녔던 존재다. 뒤돌아보니 학생으로서, 또 교수로서 참 긴 세월을 이 학교와 함께 보냈다. 군 복무와 유학 시절 교정을 떠난 적은 있으나 그때도 학적은 남아 있었으니 그 인연은 끊어진 적이 없다고도 하겠다. 

청년과 장년을 거쳐 그리고 노년의 문턱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생애주기 대부분을 서울대에서 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그동안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행운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내게 서울대는 단순한 직장 이상의 의미를 지녔으나 직장으로서도 서울대는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 여느 직장과 달리 해고와 실직을 걱정하거나 윗사람의 눈치를 보고 몸을 사릴 일도 없었다. 눈치는커녕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살았고, 말로, 글로 그 자유를 온전히 누렸다. 동료 교수, 학생, 직원 등 직장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이 나를 존중해 주고 배려해 줬다. 그뿐 아니다. 나는 직장 밖에서도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고 살았던 것 같다. 내 행색을 보고 시답잖아 하던 사람도 ‘서울대 교수’라는 신분이 밝혀지면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물론 교내에서는 종종 급여나 복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서울대 교수라는 직함에 따르는 이 이른바 ‘상징 자본’은 그것들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그동안 정말 분에 넘치는 지위를 누리고 살았는데, 그것은 모두 내 신분을 밝혀주는 서울대라는 이름 덕분이었다. 젊은 시절 나는 그것이 내 능력과 노력의 대가라고 은연중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닫게 됐다. 능력 있고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다 내가 누리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었고, 능력이나 노력에서 나를 한참 앞선 사람조차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잘나서 서울대와 인연을 맺은 것이 아니라 서울대와의 인연이 나를 ‘잘난’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서울대 덕분에 과분한 삶을 살았으니 서울대는 내가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그 고마움에 보답해야 할 존재였다. 그러나 그리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뿐이었고,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학교에 보답하는 길은 다른 무엇보다 교육과 연구라는 교수의 직책을 충실히 수행하는, 어떻게 보면 단순한 것이었건만, 교육도, 연구도 솔직히 잘 해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연구의 경우 비유하자면 넓고 깊은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힘차게 헤엄쳐 나아간 것이 아니라 바다 전체가 잘 보이지도 않는 한구석에서 방향을 잃은 채 허우적거리기만 한 느낌이다. 

한편 개인적으로 나는 교수의 직무 가운데 연구보다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내게는 ‘대학교육의 주제는 학문이 아니라 학생’이라는 주장이나, ‘일 년을 생각하면 농사를 짓고, 십 년을 생각하면 나무를 심으며, 백 년을 생각하면 사람을 키워야 한다’라는 말이 큰 공감을 줬다. 하지만 정작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소홀한 점이 많았던 것 같다. 눈앞의 성취도 외에 학생의 잠재력은 잘 알아보지 못했던 것 같고, 그냥 둬도 잘하는 학생에게는 관심을 가졌어도 방황하거나 좌절하며 정작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위해 헌신하지는 못했다. ‘인재’의 육성이 대학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했으나 정말 재목처럼 두고두고, 두루두루 쓰임새가 있는 사람을 키우는 법은 잘 몰랐다. 무엇보다도 교육의 이름으로 내가 한 일이 장차 학생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것이었는지 자신이 없다. 지금에 와서 보니 사람을 교육하는 일이란 내가 감당하기엔 벅찬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결국 받은 만큼 갚지 못하고, 누린 만큼 베풀지 못하고 서울대를 떠난다. 미안한 마음이다. 현직을 떠나니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부디 서울대가 앞으로 더 발전하고, 그 이름이 더 빛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잘됐으면 하는 그 바람보다 소박하나 더 절박한 바람이 있다. 제발 서울대가 세간의 구설에 올라 이름에 흠이 가고 빛이 바래는 일이 없었으면, 특히나 그런 일이 그동안의 나처럼 서울대라는 이름 덕을 톡톡히 보는 이들 때문에 일어나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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