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를 만나다 | 유현준 건축가가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2015), 『공간이 만든 공간』(2020)을 비롯한 여러 베스트셀러 도서를 저술한 유현준 교수(홍익대 건축학과)는 그의 저서에서 개별적인 건축물에 대한 시각을 넘어 ‘사는 곳’에 대한 인문학적인 통찰을 던져 왔다. 한편 그는 여러 매체를 통해 건축과 관련된 현안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밝혀 오기도 했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유 교수를 만나 한국의 도시정책을 비롯한 다양한 건축학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지금 우리 도시는

『어디서 살 것인가』(2018)에서 유현준 교수는 뉴욕과의 비교를 통해 건축학적 측면에서 서울의 아쉬운 지점들을 짚었다. 특히 유 교수는 서울에는 장기적 발전을 위한 비전이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서울은 세계 정상 수준의 의료 서비스나 치안을 갖춘, 장점이 많은 도시로 커다란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서울이 국제적인 매력이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라며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주해 오고 싶어 하는 도시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 교수는 현재의 복잡한 규제와 심의 절차를 완화해 개성 있는 건축물을 많이 만들어 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상한 디자인을 거르기 위해 마련된 심의 절차가 오히려 건물을 천편일률적인 디자인 안에 가두기 때문이다. 그는 “보행 환경이나 스카이라인을 개선하는 등 서울의 매력을 살릴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한다”라며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유명한 이유는 각 건물이 가진 개성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유 교수는 지방 균형 발전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예를 들어 서울이 맨해튼 같다면 세종시는 샌프란시스코처럼 만들어 각자의 특색을 살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도시를 개발할 때 서울처럼 빌딩숲이 들어선 형태를 쫒기보다는 그 지역이 가진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유 교수는 “세종시 인구 중 서울 출신은 0.2%에 불과하지만 대전 출신은 25%를 차지한다”라며 “몰개성한 도시 개발은 주변 지역의 인구를 끌어들여 인근을 슬럼화시키기만 할 뿐, 도시를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한다”라고 꼬집었다. 

유 교수는 최근 이천의 발전 방향에 대한 자문을 부탁받은 경험을 들어 도시의 특색을 살릴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이천은 한강 자전거 길의 끝에 있는 도시라 자전거를 타고 오가기 편하다는 장점을 살려 자전거 도시로 만들 수 있다”라며 ”평일에는 서울에서 근무하던 자전거족들이 주말에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이천으로 갈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도시는 주거 공간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깨면, 인구 집중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자생 가능한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살 만한 도시가 되려면

최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부동산 정책과 관련된 논의가 연일 주요 일간지의 헤드라인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됐다. 유현준 교수는 “집값이 치솟는 근본 원인은 주거 수요에 비해 주거 공급이 부족한 데 있다”라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사람들이 정말 살고 싶어 하는 곳에 좋은 집을 지어 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평당 1억 원이 넘는 집을 소비할 여력이 있는 인구가 약 32만 가구인데 서울의 주택은 대부분 과거 소득이 1만 불에 불과하던 시절에 지어져 이들의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한다”라며 “결국 강남 일대를 비롯한 몇몇 고급 주거단지로 수요가 집중되고 자본이 쏠리면서 집값이 오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건축은 현 상황에 탈출구를 열어줄 수 있을까? 유 교수는 이에 대해 “전반적인 도시의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라고 처방했다. 그는 “현재 주거 환경의 가장 큰 문제는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지 못한 채 원룸 또는 대형 평수라는 이원화된 주거 공간만을 제공하는 데 있다”라고 짚었다. 재건축되거나 새롭게 지어진 주거 단지가 사람들의 달라진 눈높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해 지어지고 있는 ‘2030 청년 주택’을 비롯한 공공주택은 원 베드룸 구조의 소형 평수가 세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유 교수는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할 중간 단계의 거주 공급을 늘려야 한다”라며 “적절한 입지에 30평 초반대의 주택을 세워 수요를 분산시키면, 주거의 질을 향상하는 동시에 일부 지역의 집값이 폭등하는 현상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아가 유현준 교수는 지나친 규제로 재건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짚으며 “용적률*만 규제하고 건폐율*과 같은 요소는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규제 완화가 전제돼야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형태의 주거 공간을 설계하고 만들 수 있다”라며 “그러면 주택들의 상향 평준화로 수요가 분산되며 장차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의 공간과 공동체

대학 시절 서울대 물리학과에 재학 중인 친구를 만나러 캠퍼스에 자주 방문했다던 유현준 교수는 서울대의 공간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우선 유 교수는 서울대의 형태에 대해 “산을 끼고 있다 보니 위로부터 내려오며 자연스럽게 건물들을 접할 수 있는, 잘 배치된 구조”라고 호평했다. 그러나 그는 과거에 비해 현재의 캠퍼스가 “난개발과 자동차 진입 문제 등으로 훼손되고 있다”라며 “내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캠퍼스와는 많이 달라졌다”라고 아쉬워했다. 유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숙사 삼거리부터 학교를 에워싸는 도로를 제외하고 내부에 차가 다니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라며 “연세대의 경우 지하 주차장을 대규모로 만들어 내부에서는 도보로만 이동할 수 있다”라고 소개했다.

유 교수는 서울대의 공간이 개인주의적 문화를 만연하게 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적어져 학생들 사이에 개인주의적 문화가 싹트는 것 같다”라며 “연세대는 노천강당이나 백양로, 신촌처럼 학생들이 공유하는 동시에 학교를 대표하는 이미지로서의 공간이 있는데 그에 비해 서울대는 이런 공간이 거의 없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공유 공간의 부재는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의 단절을 가져와 개인주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유 교수는 ‘샤로수길’은 서울대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보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그는 “공간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도보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하지만 샤로수길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기에 캠퍼스와 연속된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라며 “서울대생이 공유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대에서 역까지 이어지는 길의 양쪽을 트고 상업지구가 형성될 수 있게끔 만드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라고 제안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건축

“코로나 19는 진정되겠지만, 그 이후 우리는 공간과 권력의 재배치가 시작되는 변화의 시작을 볼 것이다”

- 『공간이 만든 공간』 중

『공간이 만든 공간』의 마지막 장에서 유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바꿔놓을 건축의 향방을 짚었다. 코로나19는 공동체주의에서 개인주의로 향하는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가속화할 것이고, 이런 변화는 공간의 재구성으로 이어지기에 건축도 변화의 조류에 발을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유 교수는 “개인화 역시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된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급속한 개인화로 파괴될 수 있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처럼 하나의 커다란 공원이 도시 전체의 녹지를 책임지기보다는 복수의 작은 공원들이 녹지를 구성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나의 통합된 공간을 공유하기보다 작은 규모의 분리된 공간들을 구성하는 편이 감염병 예방의 측면에서 더욱 미래지향적인 형태라는 뜻이다. 

특히, 유 교수는 현재의 정방향 형태보다는 선형의 공원을 만드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공원은 가까이에 있어야 갈 수 있기에 그 수혜를 입는 것은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라며 “공간을 선형으로 만들면 접하는 세대 수가 대폭 늘어난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일례로 용산 공원을 폭이 16m인 선형의 공원으로 바꾸면 전체 변의 길이가 13km에서 150km로 약 11배 늘어나며 공원에 접하는 세대 수도 함께 증가한다. 이런 선형 공원은 이웃 간의 교류를 더욱 원활하게 만들기도 한다. 유 교수는 “이렇게 공간을 재구성해야 이웃과의 유대도 긴밀해지고 지역 간의 격차를 줄여 하나의 생활권으로 만들 수 있다”라며 선형 공간이 파편화를 중화할 가능성을 역설했다. 

한편 코로나19가 현재의 기득권을 그들이 점유하는 공간과 함께 와해시킴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유 교수는 “기득권 세력은 거대한 예배당과 같은 공간을 활용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공간이 해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람들을 결집시켜 공동체 의식을 만드는 학교, 교회, 회사 등의 공간이 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가 구축될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는 “흑사병이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분기점이 된 것과 같은 맥락”이라며 “만약 흑사병이 아니었다면 중세가 20세기까지 지속됐을 수도 있기에, 나는 코로나19가 흑사병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 기회가 되리라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책을 쓰는 것이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라는 유현준 교수는 “영화 스토리 속의 공간이나, 건축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통해 내 생각을 부드러운 텍스트로 전달해 보고 싶다”라며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집필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합의 시대인 21세기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그의 저서를 앞으로도 계속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용적률: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 각 층의 면적을 합한 연면적의 비율

*건폐율: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

 

사진: 송유하 기자 yooha614@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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