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트로트의 재부상을 파헤치다

 

‘목포의 눈물’, ‘항구의 남자’, ‘안동역에서’… 트로트를 잘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노래 제목이다. 지역 행사나 노래방에서만 주로 불리던 트로트가 최근 〈놀면 뭐하니?〉,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등의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재유행하고 있다. 촌스럽고, 중·노년 세대만 즐기는 비주류 음악이라고 인식됐던 트로트가 다시 떠오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학신문』이 트로트의 음악적 기원과 트로트가 겪어 온 변화를 바탕으로 트로트 재부상이 대중음악계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그 한계에 대해 짚어 봤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와 함께 변화해 온 트로트

트로트는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로 오랜 역사를 지녔다. 트로트의 기원은 1930년대 유행한 서양식 음악으로, 사람들은 ‘라미도시파’의 서양식 단조 5음계를 사용한 이 음악을 기존의 민요와 구분해 ‘유행가’, ‘유행 소곡’이라고 불렀다. 유행가는 서구 문화를 받아들인 청년층을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았고, 1960~70년대 남진과 나훈아의 노래를 중심으로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도 유행가는 1980년대까지 독자적인 이름조차 얻지 못하다가 디스코, 통기타 음악 등 새로운 음악 장르가 등장하면서 그와 구분되는 음악으로서 ‘트로트’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손민정 교수(한국교원대 음악교육과)는 “초창기 대중가요집에 실린 트로트 음악이 미국의 사교댄스 리듬 ‘폭스트로트’(foxtrot)에서 온 ‘도롯도 리듬’을 많이 사용했기에, 사람들이 그 리듬의 이름을 따서 ‘트로트’라고 이름 붙였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발라드의 서사적 특성을 트로트로 가져온 주현미부터 트로트에 댄스를 가미한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의 세미 트로트까지 트로트는 나름의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며 트로트는 점차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는 저서 『요새 노래가 노래냐!』(2017)에서, 트로트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노년층이 됐고 포크, 록을 비롯한 다양한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트로트의 뽕짝 리듬과 노골적 가사가 젊은이들에게 트로트가 ‘저급한’ 음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결국 문화적 주도층이었던 젊은이들에게 외면받으면서 트로트는 주류 미디어에서 밀려나 지방 행사에서나 불리는 음악으로 전락했다. 김선민 교수(미국 다트머스대 사회학과)는 “향유층이 중·노년층으로 축소되면서 트로트는 ‘저소득’, ‘저학력’, ‘촌스러움’과 같은 속성과 결부돼 대중음악의 주류에서 밀려났다”라고 밝혔다.

트로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국민 MC 유재석이 예능에서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변모하고 TV조선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 인기를 끌며 트로트의 향유세대를 넓힌 것이다. 김교석 TV 칼럼니스트는 “TV조선에 중·노년 시청자들이 이미 결집해 있었기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었다”라면서도 “젊은 가수들이 기존의 트로트를 리메이크하면서 새롭고 가벼워진 모습이 신세대에게도 신선하게 다가왔다”라고 진단했다. 〈미스터트롯〉 콘서트에 참가한 대학생 팬 A씨는 “정통 트로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거나, 다른 장르의 노래를 트로트 풍으로 편곡하며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 트로트가 촌스럽다는 편견을 없애는 계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트로트의 문화적 지위가 상승하다

트로트의 재부상은 트로트를 주류 대중음악계에서 인정받는 하나의 장르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전까지 트로트는 주류 대중음악계에서 외면받던 비주류 음악이었다. 논문 「음악장르선호를 통해 본 문화적 불평등」(김선민, 2008)에 따르면, 문화적 ‘여론주도층’은 다양한 음악 장르를 포용하면서도 유독 트로트를 싫어하는 경향을 보였다. 김선민 교수는 “트로트는 음원 판매나 TV, 인터넷을 통한 홍보라는 주류 대중음악 시장의 작동원리에 포섭되지 못하고 지역 행사나 술자리에서나 불리는 ‘저급한’ 음악으로 여겨져 왔다”라며 “이는 사람들이 트로트를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든 사회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라고 말했다.

트로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한 것은 1970년대부터 불거진 ‘왜색(倭色) 논쟁’이었다. 손민정 교수는 “60~70년대부터 트로트가 엔카*의 아류이며 왜색을 담고 있다는 비판이 일면서 특히 엘리트층이 트로트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대개 트로트 하면 ‘뽕기’ 있는 신나는 음악이 연상되지만, 초기 트로트는 단조의 구슬픈 음악이었기에 젊은이들에게 지나치게 애수적이고 우울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는 비판도 일었다. 이에 대응해 트로트는 1980년대 디스코 열풍에 맞춰 신나는 리듬과 현대적인 정서를 담아내려 했지만, 트로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트로트는 TV와 유튜브에서 활발히 불리고, 음원과 스트리밍 시장에도 진출하며 주류 대중음악의 범위 내로 편입되는 추세다. 김선민 교수는 “주류 문화는 내용이 아니라 향유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계층과 문화적 영향력에 의해 결정된다”라며 “트로트도 주류 대중음악 시장의 작동원리에 포섭되고, 트로트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영향력을 가지면서 주류 음악 장르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왜색 논쟁의 역사를 모르는 신세대가 트로트를 신선하고 정겨운 음악으로 여기며 거부감 없이 트로트를 받아들인 것도 트로트의 문화적 지위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트로트가 주류 대중음악 내로 포섭되면서 전공학과나 학원 등에서 트로트를 정식으로 배울 수 있는 제도적 공간도 확대되고, 트로트는 미디어를 장악하며 대중에게 자주 불리게 됐다.

 

 

세대 간 취향의 화합을 보여준 신 트로트

트로트의 가사가 세대 차이를 좁히고 정서적 공감대 형성에 성공한 것도 재부상의 한 원인이다. 트로트는 상실, 희망 등 민중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손민정 교수는 “트로트는 고향, 부모님, 사랑, 젊음에 대한 상실의 감정을 현실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라며 “트로트에는 우리 전통정서인 한(恨)과 흥(興)이 합쳐진 ‘해학’의 정신이 담겨 있어 서민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해방구 같은 역할을 한다”라고 말했다. 〈미스터트롯〉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과, 덩실덩실 춤추는 사람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대중음악의 역사를 조명한 전시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 기획에 참여한 국립한글박물관 김미미 학예사는 “희로애락과 같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고, 노래를 만든 사람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트로트의 문학적 가사가 오늘날까지도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최근의 트로트 재부상은 세대 간 취향의 화합을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보통 대중음악은 세대 간 취향 차이가 크게 나타나지만, 이영미 평론가는 “1970년대에 트로트를 좋아하는 세대와 포크를 좋아하는 세대가 격하게 부딪친 것과는 달리, 최근에는 신(新) 트로트를 통해 취향이 다른 세대들이 서로 화합하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트로트 음악은 국악, 성악, 발라드, 아이돌 음악 등 다양한 장르와 융합하며 새로운 장르로 탄생하고 있다. 김미미 학예사는 “신 트로트는 새롭게 등장한 젊은 가수들이 과거부터 유행했던 노래에 세련된 편곡과 퍼포먼스를 더해 부름으로써 계층, 세대와 관계없이 널리 향유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트로트 팬층에 젊은 세대의 문화 향유 방식이 유입되면서 트로트를 향유하는 방식도 변화했다. 신세대 문화로만 여겨졌던 팬덤 문화가 트로트계로 들어온 것이다. 중·노년층 팬들도 좋아하는 가수에게 선물을 하는 ‘조공’이나 음원 스트리밍, 콘서트 관람을 하는 시대가 됐다. 손민정 교수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자기 삶에 능동적인 ‘신중년’이 변화의 중심”이라며 “이들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청중 투표에 참여하고 팬카페나 밴드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좋아하는 가수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며 적극적인 문화 향유 주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전과 달리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자신의 취향을 당당히 드러내며 적극적으로 음악을 향유하게 되면서, 트로트는 음악, 예능, 오디션과 같은 TV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유튜브, 음원차트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등장하며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다.

 

문화 소비의 시대 트로트 유행의 한계점은?

트로트 재부상은 마케팅과 자본, 인물이 대중음악을 이끌어 나가는 ‘문화 소비’ 시대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트로트 음악이 대중의 관심을 끌면서 트로트 산업에도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가수별로 팬덤이 생겨나고, 그들의 자본과 마케팅이 트로트의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예전에는 가수가 히트곡을 통해 유명해졌지만, 요즘에는 특정 가수가 마케팅을 통해 유명해지면 그가 부르는 노래를 사람들이 소비하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자본이 집중되는 곳이 문화적 중심지가 되는 것이다. 트로트의 재부상은 음악이 아닌 가수의 파워가 유행을 이끄는 최근 대중음악계의 경향과 상통했다고 평가된다.

동시에 트로트 재부상은 문화 소비 시대에 지나치게 자본에 포섭된 대중음악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획사가 트로트의 장르적 발전에 대한 투자보다는 유명가수 마케팅을 통한 수익 창출에 집중하면서 〈미스터트롯〉 이후 눈에 띄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교석 칼럼니스트는 “트로트 열풍이라고 하지만, 막상 유행하는 트로트 가수는 유산슬과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출신 몇몇 가수들뿐”이라며 “신곡을 개발하는 등 트로트 장르의 발전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예능 출연이나 행사와 같은 마케팅에만 집중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트로트 유행의 지속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트로트가 주목받는 문화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트로트와 관련된 TV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트로트와 전혀 관련이 없는 프로그램에도 유명 트로트 가수들을 출연시키는 등 트로트가 미디어에서 지나치게 많이 소비되면서 대중의 피로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에 트로트의 인기가 특정 팬덤 내로 축소되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임진모 평론가는 “현재의 트로트 열풍은 미디어가 유행을 포착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디어가 트로트를 의도적으로 띄워 유행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우르르 관심이 쏠렸다가 급하게 꺼질 우려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트로트의 재부상은 트로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고, 대중음악 향유에서 소외됐던 중·노년층이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영역을 주류 대중음악계 내에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향후 트로트의 유행이 미디어의 상업적 목적에 끌려가기보다, 한 단계 성숙한 모습으로 지속가능한 음악적 발전을 이뤄나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엔카: 일본 대중음악 장르 중 하나로, 곡의 구성과 리듬은 서양 대중음악의 형식에서 왔지만, 일본 전래 민요의 5음계를 사용한다. 눈물, 비, 이별 등의 단어가 가사에 빈번하게 등장하며, 애절한 감정을 노래하는 감상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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