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 취재부 기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 있다. 매주 월요일마다 서울대 내 출입처들을 찾아가 기사 소재를 발굴하는 일이다. 자신이 맡은 출입처의 담당자에게 방학에 미리 인사를 드리는 것이 관례라 올해 1월 나는 본부의 모 부서 과장님을 찾아 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무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직위나 ‘중성적’인 이름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과장님이 남자일 것이라 여겼는데 실은 중년의 여성분이셨던 것이다. 그날 우리는 청귤차를 마시며 잠깐 이야기를 나눴었다. 대학생이 낀 대화가 으레 그렇듯 진로도 화두에 올랐는데, 행정고시니 CPA니 하는 것들을 주워섬겼더니 자신 또한 행정고시를 치른 뒤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자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도 고시에 붙으면 나중에는 기꺼이 큰 책임을 맡는 사람이 될까? 그렇게 될 때까지 그 친구는, 또 나는 각자의 현장에 오래도록 남을 수 있을까?

할리우드 내 여성 영화인이 직면하는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 <우먼 인 할리우드>는 텅 빈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응시하는 여자아이를 비추며 시작된다. 어릴 적 미디어에서 보는 이미지는 우리에게 ‘누가 가치 있고 어떤 이야기가 중요한지’ 은연중에 가르친다. 생각해보면 내가 자라면서 미디어에서 목격했던 ‘중요한’ 여성은 대개 20대 청춘이었다. 남자 주인공의 활약이나 남녀 간 로맨스로만 치환되는 플롯 안에서 젊은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과 사랑을 확인한 뒤 극에서 퇴장한다. 그러면 그 뒤는? 40대와 50대엔 어떻게 살아가는데? 여자 주인공의 엄마 외에 다른 해답을 주지 않는 미디어 환경 안에서 자란 내게, 20대 이후의 세계는 그래서 공백이었다. 결혼과 육아 외의 선택지를 골라 살아가는 내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때도 화사한 원피스를 선뜻 입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경력 단절 없이 시니어가 될 수 있겠냐는 의문까지. 중년도 이럴진대 노년의 삶을 그리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여성들을 만날 때면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든다. 과장님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결혼한 뒤 직장 생활이 어그러질 것이 걱정된다고 말하자, 그분은 나를 이해한다며 자신이 결혼으로 얻은 것 또한 말씀해 주셨다. 결혼 후에도 일을 지속하는 삶의 정경이 내 안에 추가된 순간이었다. 학생기자로 일하며 이십 대 초반에 여러 여성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분명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순간마다 내 마음 속 도감에 새로운 가능성을 하나씩 수록할 수 있었기에.

미디어에서도 각양각색인 여성의 삶을 다루려는 시도가 늘어나는 추세다. 여성 히어로를 단독으로 내세운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오는가 하면 평범하기 그지 없는 여성 캐릭터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는 예기치 못하게 영화 작업을 관두며 슬럼프에 빠진 중년의 영화 PD ‘찬실’이 등장한다. 영화는 찬실의 ‘별 볼 일 없는’ 일상 안에 어떤 치열함이 깃들어 있는지 조명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느꼈던 편안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객관식 보기 몇 개로 포괄할 수 없는 숱한 삶의 방식이 우리 앞에 계속 펼쳐지기를 기원하며 영화관을 나섰었다.

요즘 ‘행복하세요, 저도 행복할 테니’라는 인사말에 꽂혔다. 당신의 행복이 나의 용기가 되고, 나의 행복이 또 다른 누군가의 용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말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을 가로지르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나는 소심한 사람이라 누군가의 발자국이 먼저 찍힌 눈길을 걷고 싶다. 그것을 이정표 삼아 걸어나가서, 다른 겁 많은 이를 위한 발자국을 다시 남기고 싶다. 그러니 독자들에게도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 본다. 다들 행복하세요, 저도 행복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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