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림(심리학과 석사과정)
김수림(심리학과 석사과정)

중학교 때 다니던 학원에서는 일주일 중 4일은 불행했다. 그 4일은 옆에 앉은 친구보다 문제를 더 많이 틀린 날이었다. 그 시절에 내 성적이 하루하루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친구가 틀린 문제를 내가 맞혔을 때의 희열과 그 친구가 맞힌 문제를 틀렸을 때의 절망적인 느낌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어느 순간 나의 이런 인생이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자리의 친구가 나보다 잘하면 슬퍼하는 인생. 남들의 성과에 집착하고 남들이 나보다 못할 때 성취감을 느끼는 인생. 남들이 성장하면 불안해하고 불행해 하는 인생. 성공의 기준이 ‘내가 얼마나 해냈는가’가 아니라 ‘남들보다 잘했는가’인 인생. ‘옆자리의 친구를 이기면 우리 반 1등을 이겨야 하고, 우리 반 1등을 이기면 학원 전체 1등을…, 그러면 전국 1등을….’ 비교라는 감옥에 갇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살다가는 난 내 옆에 머무는 모든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이겨야만 행복해하는 불행한 어른이 될 것 같았다.

이후 나는 스스로를 기준점으로 삼기로 했다. 어제보다 적게 틀리기, 어제 틀렸던 부분을 반복하여 틀리지 않기 등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목표 달성에 성공한 날도, 실패한 날도 있었지만 견제의 대상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가 높아지자, 옆에 앉은 친구가 얼마나 잘하는지는 더 이상 내 마음을 흔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주저 없이 질문하게 됐다. 옆자리의 친구가 내가 못하는 것을 잘한다면, 그 친구는 날 도와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편리한 선생이었다. 이를 깨달은 이후부터 내가 어떤 상황에 있으며,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남들이 부러워하고 남들도 원할 만한 목표 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지금도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다. 어릴 때는 애써 관심을 타인의 성과에서 나의 성장으로 옮기려 노력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집중력을 내가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데에 쓰고 있다. 그렇다 보니 타인의 성과는 오히려 내게 큰 기쁨을 준다. 날 한때 불행하게 만들었던 옆자리의 그 친구를 마침내 자하연에서 같은 새내기로 마주쳤을 때, 오랜 친구가 숨마쿰라우데 졸업을 했을 때, 연인이 원하던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들의 성취가 기쁘고, 타인의 성취에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실 자체도 기쁘다. 

그렇다면 타인에게 집착하던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편안한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내 목표가 남보다 잘하기였던 때에 비해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날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좌절하는 날도 비슷하거나 더 많다. 어제보다 오늘 그리고 내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개인마다 자신의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이 다르다. 누군가는 타인의 성취를 보며 건강한 자극을 받고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부터 상대평가라는 절차를 거쳐 체화돼 버린 타인과의 비교의 틀에서 살아가는 것에 지칠 때가 많다면, 비교 대상을 타인에서 본인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인정하고 개선하기보다 남이 가진 것들에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불행한 순간이 더 많다면 자신에게 득보다 실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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