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서점의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다

‘도서정가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는 도서의 할인율을 제한해 정가를 유지하는 도서정가제 정책을 올해 11월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전국의 동네 책방은 도서정가제가 폐지되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책방마저 사라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동네 서점은 물론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까지도 오프라인 채널을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건 투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율 감소와 미디어 환경의 변화 등 도처에 산재한 어려움이 출판·서점계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서점의 놀라운 변화를 이끌고 있다. 희망과 절망 사이 서점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지식의 사랑방이었던 서점, 하지만…

서점은 사회의 변화와 궤를 같이해 왔다. 지식의 생산과 유통이 엄격하게 제한된 조선시대에는 서점이 존재할 수 없었다. 서울대출판문화원 정병설 원장(국어국문학과)은 “중종 때 서점을 만들자는 논의가 처음 나왔으나 시행되지 못했고, 19세기 말에서야 최초의 서점이 생겼다”라며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의 서점은 근대에 이르러 확립된 것”이라고 전했다. 학생 운동이 한창인 80년대에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문학·사회과학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전국적으로 100개 이상의 인문사회과학서점이 있었으며, 서울대 주변에서도 6~7개의 서점이 운영될 정도로 성행했다. 대학동의 마지막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을 운영하는 김동운 대표는 “당시 학생들은 서점에서 공부, 토론, 생활, 투쟁 등 모든 것을 해결했다”라며 “서점은 생활의 중심지이자 사회 운동의 사랑방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하루에 200여 명의 학생이 다녀가던 인문사회과학서점은 학생 운동의 열기가 잦아들며 월세조차 내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는 비단 대학가 서점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2년 사이에 전국 서점의 50%가 문을 닫을 정도로 서점업계는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대형서점,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동네 서점이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인터넷에서 쉽고 빠르게 책을 살 방법이 생기자 사람들은 점차 서점에 가는 것을 번거롭게 여기기 시작했다. 온라인 매체의 발달과 콘텐츠 유통 채널의 다변화는 서점 생태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정병설 원장은 “책이 꼭 종이여야 한다는 관념이 사라지면서 서점의 개념도 달라지기 시작했다”라고 짚었다. ‘정보의 바다’가 열린 시대에 책은 지식을 전하는 수많은 매체 중 하나로 전락했고, 그에 따라 서점도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책을 매개로 한 교류의 장이었던 과거의 서점은 미래에 서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사진은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
책을 매개로 한 교류의 장이었던 과거의 서점은 미래에 서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사진은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

 

독립서점의 등장과 새로운 도전

그런데 최근 들어 골목길을 중심으로 자그마한 책방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른바 독립서점 붐이었다. 대형서점에서는 유통되지 않는 독립출판사의 책을 파는 독립서점은 독특한 컨셉과 큐레이션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자와의 대화나 독서 모임 등의 행사를 열어 책을 매개로 한 지역의 문화 공동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중앙도서관 김명환 관장(영어영문학과)은 “독립서점은 책의 정보를 교환하고 소통하는 곳이자 대형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발견의 즐거움’을 돕는 곳”이라며 대안적 공간으로서 독립서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독립서점은 소셜 미디어 등에서 입소문을 타며 2015년 101개에서 2020년 650개로 불어났다.

이런 변화는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으로까지 번지며 서점의 방향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교보문고’는 지난 7월 잠실점을 새로 단장하면서 고급스러운 원목 인테리어와 조명, 넓은 독서 공간을 확보해 마치 북카페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특히 내부에 유명 독립서점인 ‘사적인 서점’을 입점시켜 책방지기와의 상담을 통해 책을 추천받는 ‘맞춤 책 처방’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진영균 과장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플랫폼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오프라인 서점이 올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찾아와 오래 머물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로 교보문고에 방문한 이근태 씨(45)는 “전보다 분위기가 편해져 책을 구경하기 좋다”라고 밝혔다.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팅 서점을 표방하는 ‘아크앤북’은 ‘책 터널’과 같은 포토 스팟과 함께 독특한 큐레이션 기능을 내세워 기존 대형 서점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아크앤북에서는 기존의 장서 분류 방식에서 벗어나 ‘일상’, ‘주말’, ‘스타일’, ‘영감’이라는 4가지 테마 아래 구체적인 라이프스타일 키워드를 중심으로 선별된 책과 잡화 제품을 함께 선보인다. 이때 키워드는 ‘퇴사’, ‘고양이’ 등 소비자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트렌드를 반영해 갱신된다. 독립서점이 책방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도서 선정으로 인기를 끈다는 점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다. 아크앤북 직원 A씨는 “특색 있는 큐레이션 덕분에 손님들이 일반적인 서점보다 더 흥미를 느낀다”라고 말했다. 

 

아크앤북 등 프랜차이즈 서점도 특색 있는 인테리어와 큐레이션을 도입해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끌고 있다.
아크앤북 등 프랜차이즈 서점도 특색 있는 인테리어와 큐레이션을 도입해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끌고 있다.

 

서점의 오래된 미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시도가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음에도 출판 및 유통 산업은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미래의 서점』을 출간한 유유출판사 조성웅 대표는 “한국의 출판과 유통 시스템은 출판사가 책을 몇 권 팔았는지 집계하는 방법조차 마련돼 있지 않을 정도로 매우 후진적”이라면서 “작은 시장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종이책과 서점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책과 서점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 깊이 있고 믿음직한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책을 뛰어넘을 매체가 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병설 원장은 “책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공공재이자 문화재”라며 “빠르게 생산되는 인터넷 정보와 달리 오랜 투자가 이뤄지는 콘텐츠가 계속 만들어지고 보존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서점의 미래는 서점이 오직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유통, 발전시키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지에 달렸다. 지역의 문화·취향·지식 공동체로 기능했던 과거의 모습에 미래가 담겨있는 것이다. 조성웅 대표는 “일상이 온라인화되는 시대에 서점은 타인과 교류하며 감정을 나누려는 인간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정의하며 “서점이 그 본질을 잃지 않는 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김동운 대표는 “미래에 동네 서점은 신뢰할 수 있는 소통과 연대의 기반이 될 것”이라며 서점에 대한 수요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무엇보다 서점의 미래는 우리가 지식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좋은 콘텐츠를 알아보고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만 출판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병설 원장은 “건강한 생산과 유통 체계가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라며 “우리가 지식 콘텐츠에 너무 낮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읽고 있다. 읽기에 대한 욕구, 지식에 대한 갈증, 소통에 대한 열망이 있는 한 책과 서점은 쉬이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책의 모습이 변할 수도 있고, 서점의 풍경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형식이 변하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책과 서점이 우리에게 갖는 본질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다.

 

사진: 이연후 기자 opalhoo@snu.ac.kr

김가연 기자 ti_min_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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