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삶에서 한국 사회를 마주하다
이방인의 삶에서 한국 사회를 마주하다
  • 김대은 기자
  • 승인 2020.09.20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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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올해로 22회를 맞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지난 10일(목)부터 16일까지 진행됐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1997년부터 매년 여성 영화인을 발굴·육성하고 성평등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개최돼 왔다. 특히 올해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 내 영화관에서 출품작이 상영된 것 외에도 온라인으로 개막식·폐막식 등이 진행됐다. 이번 영화제에는 ‘페미니스트 콜렉티브: 여성영화/사’, ‘필름X젠더’와 같이 여성을 다룬 섹션 외에도 ‘퀴어 레인보우’, ‘배리어프리’ 등 소수자 인권 문제를 더욱 폭넓게 다룬 섹션의 영화가 상영됐다.

 

⃟또 다른 소수자를 생각하다=퀴어 레인보우 부문에서는 트랜스젠더를 다룬 세바스찬 리프쉬츠 감독의 영화 〈리틀 걸〉(2020)이 상영됐다. 주인공 사샤는 생물학적으로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자신을 여자라 생각하고 이를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친구들과 교장 선생님을 상대로 사투를 벌인다.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관련 내용으로 공청회를 열려다가 학교로부터 거부당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왜 굳이 이렇게까지 힘든 싸움을 지속해야 하느냐며 포기하려는 마음을 먹기도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전문 상담소를 찾아가 ‘사샤를 여자로 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내용의 서류를 발급받는 등 노력 끝에 학교 측으로부터 여자로 인정받는다.

한편 배리어프리 부문에서는 융 헤넨 감독의 자전적 영화 〈피부색깔=꿀색〉(2012)이 상영됐다. 배리어프리로 상영된 이 영화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이 제공됐다. 영화의 감독이자 주인공인 융은 한국에서 전정식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60년대 한국의 어지러운 정국과 기근 속에서 고아가 돼 만 5살에 벨기에로 입양된다. 어린 시절 융은 부모님과 4형제의 배려 덕에 금방 타국 생활에 적응하지만, 이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검은 머리와 작은 눈 등 동양인의 외모를 가진 탓에 사람들로부터 ‘짱깨’나 ‘썩은 사과’로 불리며 놀림을 받고, 이 때문에 물건을 훔치거나 성적표를 조작하는 등 방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벨기에에 사는 한국인 부부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중적인 정체성과 그에 따른 고민을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걷게 된다. 

 

⃟끝나지 않는 이방인의 삶=두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주인공이 앞으로 겪을 고민거리 또한 암시하고 있다. 〈리틀 걸〉의 주인공 사샤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교장으로부터 여성으로 인정받았을 뿐, 사춘기 2차 성징 및 이성 관계로 인한 고민, 국가를 상대로 한 성별 정정 절차 등 더욱 큰 어려움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를 맡은 평론가 황미요조 씨는 “최근 정신의학계와 세계보건기구(WHO)는 생물학적 성과 스스로 느끼는 성 간의 불일치를 ‘장애’가 아닌 하나의 ‘상태’로 이해하고 있다”라면서도 “이처럼 의학적으로 트랜스젠더를 받아들이는 것과는 별개로, 실제 사회의 제도나 인식 등에는 아직 이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 평했다.

또 〈피부색깔=꿀색〉에서는 어느 사회에도 속할 수 없는 주인공의 방황이 드러나고 있다. 영화는 어릴 적 부모님이 찍은 캠코더 영상과 사춘기 때 모습을 복기해 그린 애니메이션, 그리고 성인이 된 현재 한국으로 돌아간 자신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한국으로 돌아간 융은 본인이 잠시 머물렀던 입양소에 찾아가 자신과 관련된 기록을 찾은 끝에 본인이 친부모로부터 버려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지금까지 벨기에에서 나는 줄곧 ‘동양인’으로 살아왔는데, 이곳 한국에서 과연 나는 무엇으로 불릴까?”라는 주인공 융의 물음으로부터 그의 방황은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사회를 다시 생각하다=이처럼 차별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을 그린 영화들은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리틀 걸〉에서 학교 측이 사샤에게 끊임없이 ‘여성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요청한 것처럼, 제도적 측면에서 한국 사회가 소수자를 충분히 보호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소수자, 유색인종 등 소수자를 향한 차별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차별금지법’은 참여정부 때 처음 발의됐으나,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동성 커플의 사실혼 관계를 가족과 같은 지위로 끌어올리는 ‘생활동반자법’도 마찬가지다.

한편 인식적 측면에서의 상황 또한 좋지 못하다. 〈피부색깔=꿀색〉에서 동양인을 향한 모멸적 발언이 쏟아지는 장면에서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동남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는 비하와 차별의 대상이고, 성소수자를 향한 반대 시위가 연일 열리기도 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얼굴을 검게 칠하는 ‘블랙페이스’로써 흑인 흉내를 내는 것을 혐오 발언으로 규정해 차단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블랙페이스를 비판한 흑인 방송인에게 도리어 악플이 쏟아져 그가 SNS 계정을 닫고 출연하던 방송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2020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 외국인 입양아 등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특히 두 작품 〈리틀 걸〉과 〈피부색깔=꿀색〉은 프랑스와 벨기에 등 유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를 통해 관객이 위치한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처럼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성별, 인종, 종교, 계급 등 우리 사회가 해결해 가야 할 문제를 사람들의 삶을 통해 조용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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