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족보 구해요(사례 있음)” 지난 6월 우연히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와 같은 글을 본 게 ‘족보’에 대해 두 달 동안 파고든 계기가 됐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족보’를 검색해 보니 족보를 구매, 판매하는 글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시험 기간이면 족보를 찾는 글로 게시판이 도배될 정도였다. 그만큼 학생들에게 족보는 너무나 일상적인 문화라는 의미다.

어떻게 교수님의 기출문제를 사고 파는가?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족보 매매, 유통이 만연하다는 것은 누구도 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지 않았다는 의미다. 우리 학생들이 족보 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기사를 쓰기로 했다. 

내게 족보는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쉬쉬하는 문화다. 학생들이 쉬쉬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며, 이를 밝히는 것에 많은 시간을 들였던 것 같다. 인성에 문제가 있어서, 성적에 눈이 멀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학생들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을 가진 몇몇 학생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취재를 하면서 정말 많은 학생들을 인터뷰했는데 그중 족보를 쓰는 것은 당연하며, 족보에 대한 글을 쓰는 기자를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다. 비난의 근거는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답변 내용을 기사에 싣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유가 어찌 됐든 족보가 유통되는 것은 엄연히 현시점에 서울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곧 다가올 중간고사 기간에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족보를 구하는 글은 꽤 많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사실 의견이 분분하다. 취재를 하면서도 족보 문화를 둘러싼 맥락과 상황이 너무 다양해 어느 것이 옳은지 그른지 확실하게 판단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족보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다 함께 이야기해봐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맥락에서 족보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위이며, 족보를 보는 것은 시험을 준비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성격상 발이 넓지 않아 족보를 구하지 못하는 이들, 외국인 유학생들,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도 족보가 없어 시험을 망친 이들의 한숨이 있다. 누군가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다면 거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게 우리 공동체를 위한 행동이며,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지성인에 걸맞은 행동일 것이다. 취재를 하면서 생각보다 학생들이 족보를 만들고, 사고, 공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학생들이 족보 문화의 폐단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은 사실인 듯 하다. 

사실 족보 문제는 다른 대학교의 학내 언론과 기성 언론에서 많이 다뤄진 소재다. 하지만 하나같이 비슷한 현상, 원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족보에 대한 우리들의 논의가 정체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본 기사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르포처럼 서술해 독자들의 관심을 최대한 불러일으키고자 했고, 다른 기사들에서 다루지 않은 해외 대학의 사례를 제시해 논의의 폭을 넓히고자 했다. 해외 대학의 상황을 보고해준 나의 여러 외국인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고 싶다. 본 기사의 목적이 얼마나 잘 전달됐는지 모르겠지만, 한 명의 학생이라도 기사를 보고 한 번이라도 족보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됐다면 지난 2개월간의 노력은 결실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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