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수업 사용설명서
비대면 수업 사용설명서
  • 대학신문
  • 승인 2020.09.2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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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선 강사(인류학과)
박한선 강사(인류학과)

낯선 이와의 길거리 프리허그가 ‘힙’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이제 그랬다가는 방역 조치 위반으로 잡혀갈지도 모른다. 지름 12,742㎞의 지구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묶일 것이라는 진보주의적 상상력은, 지름 100㎚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에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얼른 감염병이 ‘종식’되고, 과거로 돌아가기를 기대한다. 많은 이의 희망이다. 그러나 탈집중화는 집중화만큼이나 강한 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 시작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집중화에서 탈집중화로 넘어가는 거대한 인류사의 문턱 앞뒤에 한 발씩 걸치고 있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 서 있는 이가 대학생이다. 

수백만 명의 학생이 기약 없는 비대면 수업을 받고 있다. 한두 달의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이제 아예 표준 수업 방식으로 굳어지고 있다(빈 강의실이 아깝다). 코로나19는 언젠가 진정되겠지만, 새로운 감염병은 계속될 것이다. 곧 새로운 시대의 승자와 패자가 나뉠 것이다.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 들고, ‘난 원래 대면 수업 취향이라서…’라는 식이면 곤란하다. 50년대에도 ‘OMR카드는 영 익숙지 않다’라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붓으로 시험 보던 때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비대면 수업을 최대한 잘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eTL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지자. 뜻밖에도 eTL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 eTL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하는 것은 강사의 몫이지만, 수강생의 활용 정도에 따라 그 효과가 결정된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다른 학생과 소통하고, 끊임없이 강사와 조교를 귀찮게 해야 한다(가급적이면 조교를 귀찮게 하자).

둘째, 시간 안배에 신경 쓰자. 예전에는 본부 앞에서 마냥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나 그냥 ‘멍 때리는’ 공강 시간도 다 공식적인 학업 시간에 포함할 수 있었다. 아침 8시에 나와 저녁 8시에 들어가면, 무려 12시간을 공부한 셈이다. 실제 책을 들여다본 시간은 3시간도 안 되지만, 가방들고 왔다갔다 한 모든 활동을 ‘공부’라고 편리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근데 상황이 바뀌었다. 종일 집에만 있으니 이런 식의 자기기만이 어렵다. 청춘을 얼마나 헛되이 보내는지 적나라하게 자각한다. 하지만 상황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늘어난 시간을 잘 활용할 것인가, ‘롤’을 할 것인가? 각자의 몫이다.

셋째, 얼굴을 보여주자. 물론 각자 사정이 있겠지만, 될 수 있으면 ‘자신 있게’ 얼굴을 드러내고 수업에 임하자. 모든 동물은 두 가지 활동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더 즐거운 것을 한다.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니 강의 화면은 점점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고, 온라인 게임이나 인터넷 쇼핑 창이 금세 모니터를 장악한다.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럼, 더 즐거운 강의를 만들어 달라고? 서울대의 비대면 수업이 주는 즐거움은 ‘넥슨’이나 ‘쿠팡’이 주는 즐거움을 영원히 앞지를 수 없다. 장담한다. 그러니 약간의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면, 인간은 더 ‘바람직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화면에서라도 모범생이 되어 보자.

넷째, 자주 소통하자. 비대면 수업은 졸지에 학우 사이의 연결망을 죄다 끊어 놓았다. 선배도 없고, 후배도 없고, 동기도 없다. 그러니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런저런 노하우나 팁도 없고, 서로 격려하는 일도 없다. 기회가 될 때마다 만나고 연락하자. 과제를 핑계로 전화하고, 시시한 서클 일이라도 꺼내며 톡하고, 뭐라도 ‘꺼리’를 만들어 만나자(유증상자나 접촉자가 아닌지 확인부터 하고, 2미터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제 오며가며 자연스레 친해질 기회는 별로 없다.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아마 상대방도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정은 덤이다. 대학 시절은 ‘직접적인 이해 관계’에서 자유로운 대인관계를 얻어낼 마지막 기회다. 

다섯째, 미리 계획하자. 아무래도 비대면 수업이니 긴장감이 덜하다. 전에는 강의실에 앉아만 있어도 뭔가 주워듣는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안 들어도 그만이다. ‘에이, 중간고사 전에 밤새우면 되겠지?’ 하지만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 평소 열심히 공부한 학생도 시험 전날 밤을 새우기 때문이다. 목표를 세우고,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일간, 주간, 월간 학업 계획을 짜고, 달성도를 스스로 평가해 보자. 아니, 뭘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나중에 취업하면, 지겹게 해야 할 일이다. 전략 목표 설정, 핵심 성과 지표 설정, 실행 계획과 일정 수립, 기간별 성과 평가, 목표 수정, 다시 성과 지표… 직장 일이라는 것이 맨날 이런 것 하는 일이다. 미리 연습해 보자.

여섯째, 더 이상의 경과 조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1학기에는 모두 혼란스러웠다. 대학 본부도, 교수자도, 학생도 우왕좌왕이었다. 그래서 출석도, 성적도, 과제도 재량껏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법이나 제도의 변화에 따라 늘 취해지는 경과 조치다. 그러나 2학기부터는 아니다. 이제 비대면 수업이 기본이고, 모두 다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학업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유’는 더이상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얼른 적응해야 한다. 

5월의 봄날 같은 대학 시절을 빼앗겨서 속상할 것이다. 컴퓨터 화면이나 들여다보려고 대학에 왔느냐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90년대 ‘놀고먹고 대학생’의 시기를 즐긴 기성세대로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다. 

하지만 모두가 너무나도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수천만 명이 감염되었고, 100만 명 가까이 죽었다. 앞으로 50억 명이 감염되고, 6,500만 명이 죽을 것이라는 ‘진지한’ 시나리오도 있다. 이차적인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벌써 자살률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어디까지 가야 바닥을 보게 될까?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있다. 상시화된 감염병 유행은 앞으로 우리가 적응하고, 또 해결해야 할 거대한 과제라는 것이다. 마술처럼 모든 문제가 눈 앞에서 사라지고, 2019년 11월의 세계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이 글을 읽는 대학생 여러분이 새로운 세계를 살게 될, 어떻게 해서든 살아내야 할 첫 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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