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외연을 확장하고 싶거나 말이나 글에 힘이 실리길 원할 때 인용법은 우리에게 구원투수가 돼 준다. 적재적소에 사용된다는 전제하에, 인용법만큼 좋은 보조도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주요 일간지들의 기사를 훑어보면, 언론 논조를 막론하고 따옴표를 지나치게 남발하는 기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제는 따옴표로 점철된 헤드라인이 아니면 왠지 모를 어색함마저 들 지경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항간에선 ‘따옴표 저널리즘’이라고 칭하는데, 특히 정치권과 관련된 기사에서 자주 등장한다. 물론 정치의 특성상 때에 따라서는 정계 인물들의 말 한 마디가 큰 파급력을 가지기에, 따옴표를 사용해 발언의 취지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온당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요즘의 신문 기사들을 보고 있자니 따옴표에 모든 책임을 이양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하다못해 이제는 유명 인물들의 설전마저 따옴표 헤드라인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는 인물들의 말이나 글을 빌려 따옴표 안에 넣어 놓고선 언론은 그 말 뒤에 숨어 권위에 편하게 기대는 듯한 모습이다. 다소 과격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들조차 그대로 직접 인용해 따옴표에 담아내면 당사의 논조와 부합하는 말도 쓸 수 있고, 고민해서 헤드라인을 작성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나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같이 SNS 활동이 잦은 인물들은 언론의 아주 좋은 소재거리다. 이들이 글 하나만 SNS에 올려도, 각종 언론 매체에서 기사를 쏟아내는 건 순식간이다. 신속 보도라는 측면에서는 언론의 소임을 충분히 다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단지 글이나 발언만 보고 그것을 베끼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말이나 발언의 일부를 따옴표로 감싸는 것만으로 전후 맥락을 여과 없이 모두 담아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특히 발언의 경우 화자의 가치와 생각이 온전히 반영되지 못한 채 입 밖으로 나올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중대한 과실이라면 응당 책임을 쳐야겠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특별한 확인 절차 없이 이를 따옴표로 퍼 나르는 것은 혼란만 가중하는 꼴이 된다. 언론이 갈등과 혐오의 온상이 돼서는 안 된다. 

최근에 있었던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겨레’ 간 해프닝을 보고, 따옴표 저널리즘이 결국 미진한 취재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미 나와 있는 데이터에 따옴표만 덧씌우면 되니 취재에 큰 힘을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당사자에게 전화 한 통이라도 걸어서 발언의 요지가 자신이 이해한 바와 일치하는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상반되는 주장을 다루는 기사라면 양측 당사자에게 직접 사실을 확인받아 균형 잡힌 기사를 써야 할 것이다. ‘취재’라는 행위는 결코 글과 발언을 단순 필사하는 것이 아니다. 

팩트체크가 나름대로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저널리즘으로 정착되면서, 드디어 언론에서도 자정 작용이 일어나는 것 같아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 사실 확인을 해 봐야 할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따옴표 저널리즘은 역설적으로 팩트체크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당연히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더욱 파괴적으로 치달은 전쟁으로 인해 기술이 발달하는 것과 진배없다. 질문과 취재는 기자가 가지는 특별한 권리이지만 한편으로는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 의무를 외면하게 만드는 따옴표 저널리즘은 조속히 시정돼야 할 언론의 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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