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게임계의 성차별, 진단과 처방

지난 7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게임계 내 여성혐오 및 차별에 대한 실태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법 개정을 촉구했다. 게임 회사가 게임 사용자들의 여성혐오적 언행을 방지하고,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권고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게임계 전반에 만연해 있는 성차별적인 문화를 지적하기 어려운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게임계 내에 성차별이 끊이지 않는 원인과 그 해결책을 알아 봤다.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사랑하는 후궁, 낙태약을 마시거라!”

모바일 게임 〈황제라 칭하라〉의 광고 중 나오는 대사다. 조선시대 왕의 복장을 한 남성이 무릎을 꿇은 여성에게 낙태약을 마시라고 강요한다. 왕의 후궁으로 보이는 이 여성은 몸에 딱 달라붙는 얇은 옷을 입은 채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처럼 몇몇 게임사는 최근 남성 게이머의 흥미를 끌기 위해 여성을 대상화하는 콘텐츠를 만들며 빈축을 샀다. 게임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에게 지나치게 선정적인 옷을 입히고, 특정 부위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식이다. 2016년 출시된 FPS 게임 〈서든어택 2〉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게임은 여성 캐릭터의 가슴과 엉덩이를 과장되게 표현해 많은 사람의 질타를 받았다.

이렇게 게임에서 성적 이미지를 남용하는 것 외에도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게임 〈마피아 시티〉는 주인공이 마피아 조직의 보스가 돼 미녀를 쟁취해 데이트를 즐기는 콘텐츠로 이뤄져 있다. 여성학 협동과정 주임 교수로 재직 중인 김수아 교수(언론정보학과)는 “성적 대상화는 여성을 인격을 갖춘 존재가 아닌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을 일컫는다”라며 “문화계발효과 이론*에 따르면 게임이라는 가상현실 내에서 성적 대상화가 벌어지더라도, 플레이어가 실제 현실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게임 콘텐츠 내에서의 성차별을 넘어서 게이머 사이에서 성차별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령 〈오버워치〉처럼 여러 사람이 한 팀을 이뤄 상대 팀과 경쟁하는 게임의 경우, 남성 게이머가 게임 내 음성 채팅을 통해 여성 게이머에게 모욕적이거나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여성 게이머에게 ‘힐러’와 같은 보조적인 역할을 맡기를 강요하거나, 패배의 원인을 여성 게이머의 탓으로 돌리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실제로 여성 게이머 단체인 ‘페이머즈’에는 오버워치 게임 도중 “오버워치 승패는 그 팀의 여자 수로 나뉜다”라는 발언을 들었다는 제보, 성적인 질문을 받았다는 제보가 접수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2017년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게이머 4,47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오버워치 내 성희롱·성차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1.2%가 “게임 내 성차별·성희롱이 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런 일을 겪었을 때 여성 게이머가 공식적으로 대응할 창구가 없다는 점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게임 내에 성차별을 제재할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아 대부분의 여성 게이머는 성차별적 언행에 개별적으로 대응하며 지나친 감정 소모를 경험하고 있다. 이준환 교수(언론정보학과)가 2018년 발표한 논문 「온라인 게임내 성차별 실태 조사 및 제재 시스템 디자인 연구」에 따르면, 많은 여성 게이머가 게임 내 성차별·성희롱 신고 시스템에 대해 “신고해도 먹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라고 응답하는 등 불신을 드러냈다.

한편 게임계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들은 성차별에 반대하는 의견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악플과 계약 해지 등의 공식적·비공식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사건’(클로저스 사건)이다. 2016년에 게임 〈클로저스〉의 캐릭터 ‘티나’를 연기한 성우 K씨가 본인의 SNS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가 악플 세례에 시달린 바 있다. 해당 티셔츠가 ‘메갈리아’ 사이트와 연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게임 홈페이지에 성우 교체에 대한 요구가 쇄도한 끝에, 회사 측은 SNS 업로드 바로 다음 날 ‘티나’의 성우를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게임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노동자가 페미니즘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만 해도 이용자들이 단체로 퇴출을 요구하는 문화가 확산해 유사한 사건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웹툰 작가 선우훈 씨는 “클로저스 사건 때 게임 회사 측을 비판했다가 작품에 대한 별점 테러와 악플 세례에 시달렸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소비자가 원하니 어쩔 수 없다?

게임계에서 성차별이 반복되는 주된 이유로는 남성 게이머가 게임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 꼽힌다. 게임 이용자 중 여성의 비율은 47%(모바일), 35%(PC)로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과금을 많이 하는 남성 게이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임개발자연대 김환민 대표는 “한국의 게임은 대부분 부분유료화 모델을 채택하고 있어 게이머의 절대적인 숫자보다는 과금량이 중요하다”라며 “수입이 안정적이고 게임에 적극적으로 과금을 하는 30~40대 남성 ‘고래 유저’들의 의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 지적했다. 

게임 관련 정보를 주고받기 위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성차별적인 정서가 만연해 있다는 점도 게임계 성차별의 원인 중 하나다. 수적으로 우세한 남성들이 커뮤니티의 여론을 장악하면서, 여성은 물론이고 성차별에 반대하는 남성 또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김수아 교수는 “반-페미니즘, 반-난민, 인종차별 등은 굉장히 오래된 온라인 정서”라며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성 이용자가 활동하기 쉽지 않고, 활동하다가도 불편함을 느껴 탈퇴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평했다.

한편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게임계 노동자에 대한 계약 해지가 잇따르는 원인으로 게임업계의 노동 환경이 불안정하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게임 회사에 용역을 제공하는 일러스트레이터나 디자이너, 성우 등은 대부분 여성 프리랜서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정규직 근로자로서 회사에 소속돼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단기 계약을 맺고 일하는 것이기에 게이머의 항의 및 계약 해지 요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김환민 대표는 “이전에는 회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를 직고용했지만 지금은 이들이 대부분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라며 “정규직 근로자조차 이직이 잦아 노동조합(노조) 결성 등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게임 회사 내부의 의사 결정권자 중 남성의 비율이 극히 높고, 이것이 페미니스트를 옹호하는 노동자의 퇴출이나 선정적인 캐릭터 제작 등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김 대표는 “대형 게임 회사인 N사 등의 이사급, 본부장급 직원 중 여성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라며 “실제로 게임 회사 내 여성 종사자의 비율이 전체의 20%도 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게임 회사가 노동이나 차별 문제에 있어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 성차별적 관행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의견도 제시된다. 클로저스 사건 이후 게임 회사의 계약 해지가 논란이 됐을 때 회사 측은 “소비자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인 것일 뿐, 개인의 신념을 이유로 차별한 것은 아니다”라며 “게이머의 반응을 살피지 않으면 사용자가 이탈해 사업상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러나 소비자의 요구 자체가 차별에 기반하고 있다면, 이것에 부응하는 것 또한 차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김창환 교수(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는 “클로저스 사건은 1957년 학계에 도입된 개념인 ‘소비자 선호에 기반한 차별’(consumer-based discrimination)의 전형적인 사례”라며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 식당에서 부유한 백인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개와 흑인은 출입 금지’라고 써 붙이는 행위와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모두가 함께하는 게임을 만들려면

게임계에 만연한 성차별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여성 게이머를 대상으로 하는, 채팅을 통한 성차별·성희롱에 게임 회사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가령 게임 내 신고 항목에 ‘성적 괴롭힘’을 추가하고, 이것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례가 어떤 것이 있는지 공지함으로써 해당하는 발언을 줄여 나갈 수 있다. 신고 항목을 추가하고 이를 공지하는 것만으로도, 성차별적·성희롱적 언행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관련 커뮤니티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 김수아 교수는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명예나 사회 윤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장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하에 커뮤니티상의 차별적 언행을 방치하기보다는 커뮤니티 스스로 내부의 성차별 및 성희롱에 해당하는 악플을 제재하는 것이 요청된다. 실제로 최근 많은 IT 기업들은 표현의 자유를 조건 없이 보장하기보다는 때에 따라 적절히 규제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네이버·다음 등의 포털 사이트는 연예 뉴스의 댓글난을 폐쇄하고, 다른 분야의 뉴스에도 AI 기반 악플 필터링 기능을 도입했다. 이처럼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성차별적인 발언을 제재하고 여성 노동자와 게이머에 대한 악플을 규제함으로써 집단적인 사이버 괴롭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게임 회사 내부에서도 계임계 성차별에 대한 의견이 자유롭게 논의될 수 있도록 성비 불균형의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현재 공공 영역의 경우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비례대표 등이 특정 성별에만 편중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으나, 민간 영역에는 이런 제도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따라서 기업의 주요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임원단이 성별에 있어 지나치게 편중되지 않도록 규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게임 회사 내의 성비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국가 기관의 적극적인 개입이 중요하다. 과거 게임업계에서 근무했던 프리랜서 A씨는 “현재 성별 이슈와 관련해서는 게임업계의 내부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 및 관련 부처에 제도 마련을 촉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7월 인권위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선정 기준에 사회적 가치 평가 항목을 강화해 기업의 책임성을 제고해야 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로써 예산 지원상의 평가 기준에 성평등한 인력 구성과 관련된 지표를 마련하고, 게임 업계의 성비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업계 내 노동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도 이뤄져야 한다. 클로저스 사건 이후 회사 측을 비판한 사람들을 정리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는 등 게임계 내 페미니스트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잇따르자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IT노조, 게임개발자연대 등 다양한 단체가 구성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노총 산하에 중견 게임사 ‘엑스엘게임즈’의 노조가 만들어지며 노조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게임업계에 중요한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게임사 또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윤 추구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해외의 IT 기업인 애플·구글·트위터 등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BlackLivesMatter’ 운동에 참여하거나,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의 제품을 내놓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정치인의 게시글에 경고 문구를 추가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A씨는 “과거 게임 〈마녀의 샘〉과 〈로드 오브 히어로즈〉에도 페미니스트 노동자를 퇴출하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게임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감정노동자 보호법’을 근거로 소통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한 사례가 있다”라며 유사한 노력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까지도 게임계 내의 성차별에 대한 개선책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탓에 게임 내부에서 시작됐던 성차별 문제가 게임계 내 노동자에 대한 집단 괴롭힘은 물론 노동권 침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과도한 악플 및 괴롭힘을 제한하는 한편,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요구된다. 게임 이용자들 역시 게임계에 만연한 문제점을 외면하지 않고 개선해 나갈 때, 게임이 사람들의 편견을 타파하고 진정한 ‘문화예술’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계발효과 이론: 텔레비전을 많이 시청하는 사람일수록 텔레비전이 묘사하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으로 1980년 거브너에 의해 만들어졌다.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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