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낭송회 〈팬데믹 시대: 섬이 있다〉

21일(월)부터 25일까지 ‘2020 서울대학교 예술주간’이 이어졌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캠퍼스뿐 아니라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음악, 미술, 문학, 무용, 동아리 공연 등 다채로운 예술이 펼쳐졌다. 전공자 외에 비전공자도 자신의 재능을 한껏 뽐냈다. 『대학신문』 기자들이 예술주간의 생생한 현장을 담아냈다.

 

가락에 따라 글로 짜인 시는 문학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갖는 예술이다. 하지만 오늘날 일반화된 묵독의 흐름에 시는 운율을 잃고 활자로만 남아 침묵한다. 가을마다 돌아오는 ‘서울대 예술주간’은 사그라져 가는 시의 음악성을 다시 환기하고자 시 낭송회를 개최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된 이번 낭송회는 ‘팬데믹 시대: 섬이 있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총 2부로 계획된 낭송회는 우리말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로 진행됐으며, 시 낭송과 더불어 청중의 사연 소개와 그에 맞는 시를 처방하는 과정으로 구성됐다. 

팬데믹 시대: 섬이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 박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중

우리가 떠올리는 섬의 이미지는 망망대해 속 띄엄띄엄 떨어진 조각이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닿지 못하는 섬들의 모습은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소원해진 인간관계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서로 이어질 가능성으로 변주된다. 1부에서 시를 낭송한 박소연 씨(국어국문학과·16)는 “낭송회의 부제 ‘섬이 있다’는 정현종 시인의 「섬」에서 가져온 시구”라며 “팬데믹 시대에 섬처럼 떨어진 우리를 시가 이어줌으로써 이 시대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제목으로 붙이게 됐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낭독자들은 팬데믹 시대에 찾은 저마다의 희망을 안고 단상에 올라 시를 읽어 내려갔다. 박준 시인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를 낭독한 황유리 씨(의예과·20)는 “팬데믹 시대는 우리 모두가 섬처럼 떨어져 있다고 비웃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우리 안의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낭독한 시를 선정한 배경에 대해 그는 “외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자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기에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을 슬픔이더라도, 다른 이를 향한 공감에서 비롯됐다면 슬퍼하는 것이 자랑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차분하게 들려오는 시의 구절에는 슬프면서도 동시에 희망찬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다른 언어 같은 마음

“여럿인 나, 하나의 그림자인 나, 둘 중 누가 이 시를 쓰는 것일까? 저주가 같을지면 나를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 중요하랴”

- 보르헤스 「축복의 시」 중

코로나19로 국가 간 발걸음이 뚝 끊어진 탓인지 원어로 각 시를 낭송하는 모습은 올해 유난히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보르헤스의 「축복의 시」를 스페인어로 낭송한 오세원 씨(국어국문학과·16)는 “팬데믹이 본격화돼 교환학생으로 갔던 스페인에서 어쩔 수 없이 돌아오게 됐다”라며 “귀국한 뒤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기약 없는 외로움에 시달렸다”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외로움에 시달리던 중 알게 된 시 낭독의 힘은, 공명하는 언어를 찾았을 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 데 있다”라며 자신이 발견한 공명하는 언어를 낭독했다.

한편 낭독회에서는 한국인 낭독자뿐 아니라 외국인 낭독자도 단상에 올라 팬데믹 시대가 안겨준 고통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 니자르 깝바니의 「슬픔의 송가」를 아랍어로 낭독한 카릴 카림 씨(기계항공공학부·18)는 “팬데믹 시대는 우리에게 인간의 복잡한 삶으로 인한 불행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라고 밝혔다. 그가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아랍어로 읽어 내려간 「슬픔의 송가」는 언어의 장벽을 극복한 깊은 울림을 전했다. 실시간 중계에 참석한 최진영 씨(심리학과·18)는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고뇌하는 감정만은 선명하게 와 닿았다”라며 “소리 내어 낭송한 시에는 단순한 글자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라고 감상평을 밝혔다.

팬데믹 시대 속 각자의 사연들

“우리가 살아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 이병률 「이 넉넉한 쓸쓸함」 중

시를 낭송하는 것 외에도 본 행사에서는 진행자들이 청취자가 보내준 사연에 맞는 시를 처방해 주는 ‘청중 사연 소개 및 시 처방 코너’가 진행됐다. 1부에서 소개된 사연은 전역 후 캠퍼스에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희망이 좌절된 복학생의 고민이었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전역이 꽤 남았을 무렵이었다던 그는, 전역할 때는 코로나19가 종식되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지금, 그는 코로나19 이전 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놨다. 진행자들은 이에 이병률 시인의 「이 넉넉한 쓸쓸함」을 처방했다.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라는 마음이 맞닿는 듯한 첫 연과 마지막 연은 코로나19의 종식을 기다리는 모두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듯했다. 

“지친 내 가슴을 추스르러 그 섬에 가고 싶습니다 사람을 만나러 그 섬에 가고 싶습니다” 낭송회의 부제가 됐던 「섬」에서 정현종 시인은 섬의 고립된 이미지를 비틀어 치유의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팬데믹 시대가 만들어낸 거리두기라는 상처도, 오히려 서로의 소중함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돼 더 매끄러운 새살로 덮이길 기대한다.

 

예술이 가득했던 닷새가 막을 내렸다. 특히 온라인에서도 진행된 이번 예술주간은 힘든 시기 마음의 여유를 잃고 지내던 구성원들에게 여유를 선사하고 미소를 띠게 했다. 예술주간을 통해 자신의 예술 작품을 선보인 사람과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감상한 사람 모두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비록 예술주간은 끝이 났지만 아름다운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서울대를 밝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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