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서평 | 『택리지』와 『섬 택리지』로 발견한 우리 국토에 대한 새로운 관점

 

 

택리지

이중환

이익성 옮김

318쪽

을유문화사

2006년 4월 10일

 

 

 

강제윤

332쪽

호미

2015년 1월 13일

 

 

 

최근 부동산과 관련된 이슈가 뜨겁다.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는 가운데, 정부는 투자 목적으로 다주택을 소유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물리기 시작했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에도 문제 해결이 요원해 보이는 이유는, 땅을 바라보는 일부 국민의 시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사는 곳’으로서의 국토의 의미가 퇴색되고 국토가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근대적 지리 서술의 시초, 『택리지』

그러나 국토를 경제적 개발과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만 존재해 온 것은 아니다.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서, 나아가 치유와 성찰의 공간으로서 국토를 인식하는 관점은 과거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 『택리지』를 쓴 이중환과 2014년 『섬 택리지』를 쓴 강제윤이 이에 해당한다. 두 저자는 국토를 직접 경험하며 가치를 발견하는 공간으로 여겼다. 그들은 직접 국토를 답사하며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고, 개인적인 평론과 감상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지리를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국토가 물리적, 경제적 공간을 넘어 개인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큰 의미를 내포한 공간임을 발견한다. 이런 독창적인 방식의 지리 기록은 국토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이중환의 『택리지』는 몰락한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을 찾아 조선 팔도를 누비며 쓴, 국토에 관한 실질적인 기록이다. 그는 24세에 과거에 급제할 만큼 매우 똑똑했고, 그의 집안은 남인 당파를 주도하며 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명문가였다. 그러나 영조 즉위 후 노론이 완전히 정계를 장악한 뒤, 소론과 남인이 일으킨 난에 처가 집안이 가담했다는 이유로 이중환은 정계에서 밀려나 배척당했다. 이에 그는 자신이 살 곳을 찾아 국토를 떠돌아다녔고, 『택리지』는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그래서 『택리지』의 원래 서명은 사대부가 살 만한 곳에 관한 기록이라는 의미의 『사대부가거처(士大夫可居處)』다.

따라서 이중환의 『택리지』는 단순한 지리 기록을 넘어, 조선 후기의 정치 상황을 비판하는 목적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 후반에서 “나는 이 책에서 살 만한 땅을 가려 살고자 해도 살 만한 땅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겨 이를 기록했을 뿐이다”라며 “글을 살려서 읽을 줄 아는 분이라면 문장 밖에서 참뜻을 찾아보는 것이 좋으리라”라고 기록한 바 있다. 그는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조차 당파 싸움이 지속되며 상호 배타적인 문화를 형성해 사농공상(士農工商)이 ‘살 만한 곳’이 없어지는 부조리한 현실 구조를 『택리지』를 통해 비판한 것이다.

『택리지』는 사대부가 살 곳을 찾아 전국 규모의 지리를 기록했고, 단순한 자료의 편집을 넘어 개인의 의견과 평론을 덧붙였다는 점에서 지리에 대한 독특한 접근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관(官)에서 편찬한 지리지는 국토의 모양, 인구 통계 등을 중심으로 한 객관적 기록이었다. 그러나 『택리지』는 고난을 겪은 사대부가 국토 기록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실질적인 국토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을 관찰해 평론을 덧붙이는 개인적·주관적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이중환은 지역의 지리와 자연환경, 사람들의 인심과 지역 특성 등을 서술하며 기존에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의 가치를 발굴해 내기도 했다. 이를테면 충청도는 교통이 편리하고 땅이 비옥하며 강물이 시원해 살기 좋은 곳으로, 강원도 영동 지역은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평가됐다. 이처럼 『택리지』에는 각 지역의 특색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객관적인 설명을 넘어 특정 지역에 대해 “마땅히 한 차례의 산천의 기운이 뭉쳐 인재를 길러낼 것이다. 다만 당장은 거리가 너무 멀고, 풍속이 어지러워서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라며 사마천의 『사기』처럼 자신의 주관적 논평을 덧붙이기도 했다. 『택리지』는 이런 구성 덕분에 근대적 지리 서술의 시초라고 불린다.

한편 『택리지』는 산수 유람과 명승 탐방, 지역 문화에 초점을 맞춰 서술하고 있다. 이중환은 살 만한 곳을 선택하는 기준으로서 ‘지리’, ‘생리’, ‘인심’, ‘산수’를 고루 설명했지만, 그중에서도 산수의 분량이 가장 길고 내용도 풍부하다. 이를 통해 이중환이 사대부가 성정을 가다듬고 ‘힐링’할 수 있는, 산수가 잘 갖춰진 공간을 중시한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는 단양을 지나며 “지상으로 높이 솟은 모양은 단정한 선비가 서 있는 듯 강물 속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는 늙은 용이 꿈틀대는 듯”이라며 “일만 골짜기는 봄 꿈꾸어 찾아온 듯 황홀하니 천 년 동안 지상 선인으로 영원히 노닐고 싶구나!”라고 산수 유람의 소회를 기록했다. 이런 산수 유람에 대한 기록은 독자로 하여금 정철의 「관동별곡」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기존 지리서에서는 배제됐던 구비문학적 요소를 풍부하게 포함하며 서술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충청 강경의 강물과 관련된 서술에서 “어떤 이는 ‘소금물과 민물이 섞인 물은 풍토병에 제일이다. 그 중에서도 이 강물이 제일 좋다’라고 말한다”라며 지역민의 이야기를 직접 채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로써 『택리지』는 지역을 탐방하고 산수를 유람하는 사람들에게 오늘날까지 좋은 지침서가 된다.

 

살기 좋은 공간에서 치유와 발견의 여행 공간으로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사대부가 살기 좋은 곳을 찾기 위해 지리를 저술했다면, 강제윤은 『섬 택리지』에서 치유와 발견의 여행 공간으로 또 다른 우리 국토 ‘섬’을 조명한다. 강제윤은 청년 시절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다 자신의 고향인 ‘보길도’로 돌아왔으나, 그곳에서도 대규모 개발 계획에 맞서 싸우며 순탄하지 못한 생활을 겪었다. 이런 경험은 그가 이후 10년간 ‘나그네’로서 우리나라의 섬들을 돌아다니며 섬의 보물과 가치를 발견하고 기록하며 여행을 이어간 계기가 됐다. 고향에 대한 애정과 섬이 파괴돼 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를 섬 여행가이자 지리 저술가로 만든 셈이다. 그에게 섬의 지리에 대한 저술이란 국토에 대한 통계적 기록도, 살 곳을 찾기 위한 수단도 아닌 섬의 가치를 발견하는 힐링 여행과 같다.

『섬 택리지』에는 강제윤이 섬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유·무형의 보물과 섬에 얽힌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는 섬을 답사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록하고, 어업·농업과 같은 그들의 삶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신안군의 천일염 생산 염전, 장산도의 들노래, 갯벌에서 낙지 잡는 사람들의 모습을 작가의 눈을 따라 읽어나가다 보면 모든 섬이 보물섬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섬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안좌도에 있는 마을 공동 우물은 “그 샘 하나로 아흔다섯 집이 물을 먹”을 만큼 마르지 않는 생명의 원천이었지만, 가정마다 수도가 들어오면서 샘에 정성을 들이지 않자 샘의 신이 노했는지 어느 때부터 마을 샘물이 시퍼렇게 변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그 하나다. 이런 섬 이야기를 읽다 보면, 국토가 치유의 공간이라는 데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나 국토를 직접 답사하다 보면, 지역의 예상치 못한 실상을 목격하게 되기도 한다. 강제윤은 『섬 택리지』에서 자신이 섬을 돌아다니며 직접 본 섬사람들의 고충과 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기록하고 있다. 섬은 전부 어업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 같지만, 실제로는 환경 문제로 인해 물고기잡이의 벌이가 시원치 않아지고 시금치나 대파 농사가 이윤을 가져다주며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또, 육지와의 교통·교류가 불편한 탓에 섬에 들어온 외부인이나 섬사람들도 며칠씩 발이 묶이기도 한다. 섬 인구가 적어 학교가 폐교되면서 젊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근처 내륙으로 들어가 섬에 노인만 남는 악순환도 또 하나의 큰 문제다. 강제윤은 이에 국가가 섬의 응급의료체계 구축과 섬사람들의 이동권 보장 등 섬 주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빛과 그림자는 섬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섬을 직접 여행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섬 지리 저술은 섬에 대한 ‘발견’의 기록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사연과 경험을 투영해 바라본 우리 국토

『택리지』 이후 국가 관리 차원을 넘어 개인적·체험적 관점에서 국토를 서술하고자 하는 시도는 『섬 택리지』에 이르기까지 계속돼 왔다. 일례로 소설가 박태순은 『국토와 민중』에서 “찾지 않는 한 국토는 없으며 깨닫지 않는 한 현실은 보이지 않는다”라며 유신 치하의 국토 순례 과정을 기록하고 민중의 역사와 우주의 삼라만상을 느끼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설파한다. 이런 국토 저술의 역사는 신정일의 『신 택리지』나 강제윤의 『섬 택리지』처럼 지역의 문화와 삶을 보존하고,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저술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개인의 병을 고치거나 심신을 새롭게 하기 위한 ‘걷기 열풍’을 가져오며 국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강제윤이 『섬 택리지』에서 이야기하듯이, 내륙 사람들은 물론 섬사람들조차 자신이 사는 곳의 가치와 지리에 무지한 경우가 많다. 특히나 정부의 국토개발계획은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지역민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환경 파괴를 낳은 4대강 사업이나 바다와 어촌 살리기가 아닌 토건 인프라, 관광 사업에 초점이 맞춰진 ‘어촌뉴딜 300’ 사업이 그 예시다. 이는 ‘경제적 이익 창출’이라는 한 가지 시선만으로 국토를 바라보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다.

그렇기에 경제적 투자의 대상을 넘어 개인적 경험을 투영하는 공간으로서의 국토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움직임은 고무적이다. 조선 시대에 정부의 지리 기록에 의존하지 않고 국토를 직접 돌아다니며 지역의 문화와 지리, 생리, 인심, 산수를 두루 담아낸 『택리지』의 정신은 오늘날 『섬 택리지』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걷기’의 장점을 다룬 책이나 둘레길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글과 같이, 여행을 좋아하는 일반 사람들이나 에세이스트가 국토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서술한 글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개인적 경험을 국토에 투영하고, 그 과정에서 국토의 개인적·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국토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국토 공간을 바라보고, 가치를 발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경제적, 문화적, 역사적 측면 등 다양한 관점에서 국토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환과 강제윤은 국토를 직접 답사하며 개인의 울분을 해소하기도 하고, 지역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자신의 고향, 섬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자동차가 많아지고 교통이 편리해지며 지리 정보를 접하기 쉬워진 지금, 국토 지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은 필수가 아닌 선택의 영역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섬 답사를 다니거나, 국토 순례를 하는 등 불편하고 투박하지만 직접 국토를 밟고 겪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국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토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가치를 발견하는 이런 새로운 시각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삽화: 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유지원 기자 uz1091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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