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아 교수(언론정보학과)
김수아 교수(언론정보학과)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고 시민들이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디지털 문화의 참여적 성격이 부각됐다. 수용자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선택하고 새롭게 만들어서 배포하는 역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디지털 문화는 참여적이고 민주적이라고 주장되기도 한다. 유튜브에 존재하는 수많은 창의적 영상물들과 스타트업 미디어들의 다양한 실험들을 보면 민주적 참여라는 말이 단지 이상만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팬덤의 활동이 전 지구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다종의 창작물을 생산하는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상찬되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를 쉽게 조합하고 변형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유포할 수 있는 기술은 종종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한 여성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자신들의 안무 영상을 재편집하면서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하거나 안무의 구간을 반복하도록 ‘움짤’을 만드는 것을 더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주 사소하고, 매우 쉬운 기술이기도 한 움짤 만드는 일은 팬의 창조성과 관련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 여성의 몸을 오랜 기간 시각적 대상으로만 활용해 온 맥락에서 볼 때 특정한 방식으로 활용되는 기술은 마냥 긍정적일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호소에 대한 반응을 보면 이런 문제가 왜 오랜 기간 누적돼 왔는지를 알 수 있다. 해당 발언이 보도됐을 때, SNS나 커뮤니티의 게시글, 댓글에서 누리꾼들이 선정적인 이미지를 활용해 활동하던 여성 아이돌 그룹이 저런 말을 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면서 화를 내는 내용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이 특정한 방식으로 대상화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했는데 해당 아이돌 그룹 여성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비난했던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아이돌 그룹은 상품에 불과하고, 돈을 냈다면 그 상품에 대해서 특정한 권리가 있다고 인식하는 기이한 소비자 권리 담론과도 맞닿아 있다. 여성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다는 말을 했을 때, 그리고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디자인으로 들어간 유명 패션 브랜드 티셔츠를 입었을 때, 일부 소비자들은 성적 대상화를 통해 돈을 벌던 아이돌이 왜 페미니즘을 옹호하냐고 비난하며 팬을 기만한 행위라고 말했다. 여성 아이돌은 성적 대상화된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이 그 존재 이유라는 식의 발언들이었다. SNS 언론, 유사 언론은 이를 제목으로 뽑아서 전시하기도 했다. 『82년생 김지영』 관련 논란을 보도하는 위키트리의 기사 제목은 “아이돌이 이러는 거 이해 안 가…”, “‘좋아요’ 누른 걸로 욕먹고 있는 ○○”이었으며 하위 제목은 ‘엉덩이 흔들던 아이돌’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여성 아이돌의 위치를 이렇게 ‘성적 대상화된 이미지’의 자리에만 있어야 한다고 인식하는 온라인 문화에서 기술은 결국 이 위치를 고정하기 위해 사용될 뿐이다. 

여성의 몸 이미지가 특정한 방식으로 소비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인식 속에서 기술의 발전은 여성 이미지의 성적 소비를 가속하는 결과를 낳는다. 2017년 청년 페미니스트들은 구글의 길거리 검색 결과를 예시로 들면서 한국 온라인 문화에서 여성의 몸 이미지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비판을 담은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다. 우리 온라인 문화에서 여성의 일상적인 행위와 신체 이미지에도 성적인 의미를 부착하는 일들은 일종의 유희이자 더 나아가 금전적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의 사진을 ‘은꼴’이라 부르고, 사진에 개인정보와 성적 모욕을 담아 유포하거나,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 여성의 사진을 성적 이미지가 되도록 합성해 판매하는 일, 특정한 여성의 신체 부위를 부각하거나 움짤로 만들어 소비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이뤄져 온 것이다. 

혹자는 이런 성적 대상화된 이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를 음란·선정의 틀로 이해한다. 노출이 심한 경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여성의 경우에도 강제로 노출된 경우에만 피해라는 식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국 광고기준위원회는 2014년 대상화된 방식으로 여성의 몸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성차별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우리 사회의 성차별이 어떻게 이런 이미지 소비를 통해 가속화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 성적 대상화에 기초한 온라인 문화의 양상들이 만연한 디지털 성폭력 문제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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