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추석이 다가왔다. 여느 때면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 연휴이지만 이번 추석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과 그로 인한 당국의 권고에 따라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의 수도 줄어들 모양이다. 내 주변에도 이번 추석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언론에서 인용하는 통계들을 보면 대부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이번 추석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겠다거나 집에서 보내겠다는 답변을 하고 있다. 

나는 글을 쓰는 지금도 일단 열차표를 손에 쥔 채로 고향에 내려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차례도 지내야 하고 안 그래도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고향에 잘 가지도 않으니 그래도 한 번 내려오라고 말씀을 하신다. 그래서 아무래도 고향에 내려가긴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부모님을 뵙는 것이 오히려 불효라는 말도 나오는 상황에서 고향에 가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고향에서 본가뿐만 아니라 다른 친척 집을 들르던 여느 추석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본가만 내려가고 다른 친척들에겐 전화로 안부를 묻는 정도로 명절 인사를 대신할 것 같다. 

불과 반년 조금 더 전 설날, 친척들끼리 모여 그때만 하더라도 그렇게까진 위협적이라는 인식이 없었던 코로나19에 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친척들이 나에게 “야 서울은 좀 조심해야겠더라”라는 말을 웃으면서 들었던 것이 꿈처럼 느껴진다. 반년이 지난 지금, 그때는 별거 아닌 듯이 이야기했던 그 바이러스로 인해 지금은 명절에 친척 얼굴 보기도 힘들어졌다. 

추석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겠다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 추석 연휴에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 좌석은 만석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이번 추석 연휴 고향 방문 자제 권고는 어떤 사람에겐 고향을 방문하지 않고 개인의 시간을 가지는 좋은 구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을 딱히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생각해 보면 나도 고향 방문 자제 권고가 나왔을 때 그럼 이렇게나 긴 추석 연휴를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조금이나마 품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언젠가부터 추석 연휴에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귀찮은 일처럼 돼 버렸다. 그렇다고 친척들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막상 친척들을 보면 반가운 것도 사실이다. 다만 점점 더 사이가 소원해짐을 느낀다. 앞서 이번 추석엔 코로나19 때문에 친척을 만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생각해 보면 코로나19 이전에도 최근 몇 해 동안 명절에 친척들은 만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릴 때만 해도 할머니 집에 친척들이 가득 차 밤이면 잘 자리가 없어서 거실에 사촌들끼리 다닥다닥 붙어서 칼잠을 잤었는데 어느샌가 명절에 친척들이 많이 모이지도 않고 얼굴을 보는 것도 명절 당일 잠깐 정도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이전부터 온 가족이 모이는 날로서의 명절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앞에서 귀찮은 일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점차 개인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적어도 일 년에 두 번 친척들을 잠시나마 만나는 시간은 그나마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그런 잠깐의 만남조차도 어려워졌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이후의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파편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 이후의 명절의 모습은 어떨까? 이전과 그대로일까? 쓸쓸한 상상만이 떠오르지만 우선 그런 먼 이야기보다는 내년 설에는 상황이 좋아져 고향에서 친척들의 얼굴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여동하 간사

삽화: 유지원 기자 uz10913@snu.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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