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그리고 75편의 詩
전쟁과 평화, 그리고 75편의 詩
  • 대학신문
  • 승인 2020.10.11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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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전문위원(자유전공학부)
김지나 전문위원(자유전공학부)

지난 여름방학, 자유전공학부 학생들과 뜻깊은 프로젝트를 했다. 한국전쟁 이후 철원의 민북 마을(민간인통제선 북방마을) 개척사를 다룬 지역 작가의 시 연작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모두 75편의 시로 이뤄진 정춘근 선생님의 『대마리』는 민간인들이 맨몸으로 지뢰밭을 일군 억척스럽고 비극적인 역사를 기록한 작품이다. 영어를 읽고 쓰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출판을 전제로 한 번역 작업은 아무래도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대학원 시절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신 선생님의 부탁이라 거절하기 힘들었다.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자유전공학부의 학생들이었다.

자유전공학부는 매년 약 140명의 학생이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한다. 수백 명의 학생이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일이다.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은 자유전공학부의 큰 메리트지만,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대부분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간소화돼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학생들과 함께 철원 역사를 공부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번역 작업은 학생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굳이 만나지 않아도 카카오톡과 구글 드라이브만으로 충분히 협업이 가능했다. 

영어영문학 전공자 정도만 참여하지 않겠냐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단 사흘 동안만 희망자를 모집했는데, 모두 29명이 함께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경제학, 통계학, 건축학, 전기·정보공학 등 전공도 다양했다. 그중에는 지금 현재 군 복무 중인 학생도 있었고, 휴학 중인 학생도 있었으며, 심지어 졸업생도 있었다. 원래 이렇게 대학생들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 번역에 관심이 많았던 걸까? 참여 학생들에게 많은 활동비를 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다. 활동비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보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몇 해 전, 우리 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진행하는 통일기반 구축사업에 참여하면서 학부생들과 함께한 연극 프로젝트가 있었다. 철원을 주제로 학생들이 창작극을 만들도록 하고, 그 비용을 우리가 지원해 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는 제작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연극동아리 학생들에게 큰 동기가 된 듯했다. 그렇다고 엄청 많은 금액도 아니었다. 예산은 단 300만 원. 학생들에게는 한국전쟁 전후 철원의 파란만장했던 근현대사에 대해 알려주고 노동당사, 농산물검사소, 얼음창고 등 드문드문 남아 있는 옛 도시의 흔적들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곳에서 든 생각이나 느낀 것들을 가지고 마음대로 극을 만들어 보게 했다. 우리 연구진은 한국전쟁 혹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감성적인 역사극 같은 걸 상상했지만,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학생들이 답사한 곳들은 전형적인 안보 관광지이자 최근에는 ‘평화관광’이란 이름으로 자주 언급되는 장소였는데,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보고 느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과 그것을 만들어낸 과거,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었을까? 우리 사회가 기대하듯이, 어떤 평화의 실마리 같은 걸 발견했을까?

결과물은 예상과 아주 달랐다. 시대극도 아니었고, 전쟁이나 분단의 소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난해하고 초현실적인 스토리에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계속 보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아픔이나 고민이 조금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연출과 극본을 맡았던 학생은 시놉시스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철원은 낯선 곳이었고, 그 시절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두려움은 그저 몇 줄의 문장으로만 설명되는 ‘내 것이 아닌 이야기’였다고. 그럼에도 그 마음을 어쩌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 이 연극이었다고 했다. 우리가 이 연극을 보면서 느꼈던 처음의 혼란스러움, 나중에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던 그 느낌이 바로 다음 세대가 바라보는 통일과 평화의 얼굴일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안보 관광지 혹은 ‘평화’를 내세우는 DMZ 접경지역의 여러 장소에서 무엇을 느낄까? 통일의 희망이나 평화의 간절함을 실감할까? 나는 학위논문을 쓰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이런 공간들을 보여준 다음에 이 질문을 던져봤다. 어떤 이들은 그런 반응을 보였지만 대부분은, 특히나 20~30대 청년들은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이해하고 싶지 않거나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위에서 이야기한 두 개의 프로젝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문제는 방법이 낡았다는 것이다. 화석처럼 남겨진 한국전쟁의 흔적들이 공허하게 외쳐대는 통일과 평화의 이념으로 어딜 가든 비슷하게 포장돼 있다. DMZ 접경지역의 다른 관광자원과 엮어서 ‘평화관광벨트’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이미 90년대에 처음 등장했고 30년째 되풀이되는 중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통일 교육, 평화관광은 그보다 조금 더 진정성 있고, 참여적이며,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지난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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