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슬픔과 용인을 격려하는 『복자에게』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이영초롱은 개인이 살아가며 품게 되는 다양한 슬픔을 보여준다. 유년 시절 이영초롱에게 벌어진 첫 번째 큰 사건은 부모의 파산이다. 이 때문에 그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여기저기 얹혀사는 수모를 당하고, 어린 동생 ‘영웅’에게 거지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비참함을 느낀다. 실망과 무력감이 남긴 상처는 이영초롱이 마음의 벽을 쌓아 올리게 만들고 또 다른 상처를 낳기도 한다. 유년 시절의 그는 처음 만난 복자 외에는 섬의 어떤 것과도 소통하려 하지 않고, 낯선 사람에 대한 적대감으로 복자의 어머니를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영초롱은 복자와 멀어지고 10대 시절을 죄책감으로 보낸다.

이렇듯 미안한 마음을 쉽게 놓지 않는 이영초롱의 모습은 슬픔을 끌어안는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이영초롱은 상처가 많아 때로는 ‘아파 보이는’ 사람이면서도 여전히 삶이 주는 아픔에 ‘충분히 아파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이영초롱은 서로 다른 고고리섬의 풍경을 감상할 때마다 ‘슬프다’, ‘시리다’라고 느낀다. 이런 장면들은 판사가 된 그가 법조계의 현실에 아픔을 느끼는 서사와 병렬적으로 놓여있다. 이영초롱은 법적 사실과 인간적 진실이 반복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에 무뎌지지 않고 계속해서 아파한다. 법에 무지한 재판 당사자들이 안타까워 그들을 은근히 도와주려다 상부에서 문젯거리 취급을 받기도 한다. 이영초롱이 후반부에서 동생 영웅과 나누는 대화는 그의 삶 전체를 함축한다. 자신이 결국 사표를 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영웅은 “글쎄, 그런 건 인생을 더 깊이 용인한다는 자세 아닐까?”라고 대답한다. 저자는 이영초롱의 삶을 통해 슬픔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영초롱이라는 개인의 모습에서 슬픔이 배어 나오는 것처럼 『복자에게』는 사회적 슬픔 또한 조망한다. 역사적 슬픔이 새겨진 공간인 제주의 고고리섬은 아름다운 풍경과 특유의 문화를 매개로 사회적 차원의 고통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이영초롱이 복자와 함께 기도한 제단의 ‘고넹이돌’은 4·3사건 때 주민들이 생존하기 위해 올라간 곳이다. 또한 성인이 된 이영초롱은 비행장을 방문했을 때 사람이 많이 죽은 곳이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듣는다. 고고리섬 사람들에게는 공간에 서린 죽음의 이미지가 마치 현재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한편 섬의 아픔은 장소뿐 아니라 언어에도 남는다. 남편이나 아이를 잃은 여자들이 많았던 제주에는 ‘서러운 엄마’를 일컫는 ‘설운어멍’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는 이후 ‘여성 근로자’이자 ‘엄마’로서 고통받아야 했던 복자의 슬픔과 연결되기도 한다. 

개인의 삶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사회적 폭력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복자에게』의 슬픔을 한층 무겁고 차갑게 만든다. 제주의료원 산재사건의 이야기는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 문제들을 형상화하며 논의를 확장한다. 이영초롱과 복자의 어쩔 수 없는 슬픔들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삶의 기록인 반면, 사회적 불합리함과 모순이 안겨주는 슬픔은 약자들을 옥죄고 짓누르기에 부당하다. 소설 후반부의 복자는 힘없는 여성 근로자이자 인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임에도 모든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복자는 간호사들이 유독성 물질이 포함된 가루약을 빻았다는 증거를 찾으러 동분서주하지만 진료기록 하나 제공받지 못한다. 소설 속 영광의료원은 영리병원으로의 발전을 꾀할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음에도 임금을 체불하고 열악한 근무환경을 방치한 것이 불가피한 처사였다고 항변한다. 이영초롱은 판사로서 복자를 돕던 중 영광의료원이 매수한 의사가 이전에 받은 치료기록을 정신과 처방으로 조작해 수세에 몰린다. 그럼에도 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고, 복자 또한 환자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필요한 자료를 얻어낸다. 저자는 가혹한 사회의 일면을 여과 없이 그려내 이들의 힘겨운 생존을 더욱 부각한다. 

쉽지 않은 싸움에도 이영초롱과 복자는 재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을 통해 『복자에게』는 슬픔의 용인이 생존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아픔을 분명히 알고 느끼며 이에 맞서 나가는 이영초롱과 복자의 태도는 그 자체로 고통스러운 삶을 생존해 나가는 힘이 된다. 이영초롱과 복자는 때로 세상 전체가 작동하는 방식과 싸우게 되더라도 눈앞의 슬픔을 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슬픔의 무게를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진심을 다하는 원동력으로 삼는다. 매번 편지를 부치지 못했던 이영초롱이 결말에서 복자에게 소식을 전할 각오로 적는 편지에는 이런 생존의 메타포가 강하게 드러난다. “생존자일 수 있는 시간을, 자신을 내보이는 것만으로 골목의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을, 그렇게 해서 모두를 생존자로 만드는 시간을.” 편지에서 이영초롱이 다짐하듯 그들이 아파하며 살아남은 시간들은 그 자체로 슬픔과 함께하는 생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자에게』는 슬픔까지 그러안아 함께하는 인생들을 생존의 방법이자 본질로 들려준다. 이영초롱은 세상이 주는 상처와 슬픔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내며, 아프지만 서늘하게 제주도의 바람처럼 유유히 살아갈 것이다. 복자와 고고리섬 주민들은 서투르지만 치열하게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슬픔을 보듬을 것이다. 이들은 슬픔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슬픈 삶을 진심으로 용인하고 관용할 때 비로소 우리는 ‘슬프지’ 않게 될 것이다.

 

복자에게

김금희

244쪽

문학동네

2020년 9월 9일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