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KBS2에서 나훈아의 온라인 콘서트 실황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방영됐고 29%의 시청률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신곡 ‘테스형!’은 철학자를 소재로 한 가사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높은 관심을 받았으며,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라는 그의 발언은 특히 이목을 끌었다. 나훈아는 해당 발언을 한 뒤, “국민 여러분이 위기를 이겨낸 장본인”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에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공을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돌리면서 위로를 건넨 것이다. 

그러나, 언론과 정계는 국민을 위로한 나훈아의 한 마디를 각자의 입맛에 맞춰 인용하기 바빴다. 대통령과 여당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현 정부의 정치가 잘못됐음을 나훈아가 보여줬다고 주장한다. 윤평중 교수(한신대 정치철학과)는 “우리는 알맞지 않은 비유로 자신의 인지도를 올린 자칭 지식인보다 광대를 자처하는 한 예인(藝人)이 소크라테스에 훨씬 가깝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라며 과거 논쟁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를 언급한 바 있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판했다. 국민의힘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나훈아가 우리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대변해줬다”라며 “제1야당에 부과된 숙제가 분명해졌다”라고 현 정부 관료들의 행적을 지적했다. 기사의 댓글에서는 나훈아의 출신 지역까지 언급하며 그를 보수측의 열사인 것처럼 칭송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확인되지 않은 나훈아의 사생활을 들어 그를 힐난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나훈아를 변호하자면 그는 ‘테스형!’이라는 노래에 딱히 정치적인 의도를 담지는 않았으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소크라테스에 비유해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대통령에 대한 언급도 “역사책에서도 그동안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라는 표현을 통해 보수 세력의 집권 시기까지 통칭했다. 나훈아는 분명 대중을 위로하기 위해 이번 공연을 기획했던 것이지 어떤 세력을 비판하고자 기획한 것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국민을 향한 나훈아의 소리를 빼앗아 그 소리를 자신의 것인 양 마구잡이로 쓰고 있다. 유시민 전 장관과 현 정부의 관료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을 향한 위로까지 그 행적들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야 하는가는 의문이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라는 나훈아의 발언처럼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부정부패가 일어나지 않는다. 3S(Sex, Sports, Screen) 정책과 같이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멸망만을 불러올 뿐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서로의 입지를 지키려 사실을 왜곡하는 새에 ‘그들만의 정쟁’이 극심해지고 있다. 여당은 자신들의 잘못을 뒤돌아보지 않으려 하며, 야당은 그 잘못만을 바라보며 국민의 삶은 내팽개치고 네거티브 유세에만 빠진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진실을 전달해야 할 언론들은 앞다퉈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심지어는 온당한 팩트체크 절차를 거치지 않은 취재 내용까지 내보내고 있다. 서로를 향한 논쟁에 지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자극적인 기사가 아닌 추석날 노래 잘 부르는 아저씨의 위로 한마디가 아닐까 싶지만, 여전히 늘 그래왔듯, 그 위로마저도 빼앗겼다. 그리고 우린 언제까지 그 위로를 빼앗겨야 하는가. 

사실 명절조차도 정치인의 유세 기간으로 이용되곤 했다. 특히 선거가 있는 해의 명절에는 전국의 주요 역에서 유명 정치인의 악수 공세가 관례처럼 벌어졌다. 명절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뉴스를 볼 때마저 서로를 심판한다는 구호를 앞세운 정치인들의 거센 발언을 들을 수 밖에 없는 국민은 무슨 죄인가. 이번 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정치인의 명절 유세가 줄었기에 눈살 찌푸려지는 소식이 잠시 멈출까 기대했지만 그뿐이었다. 그새를 참지 못하고 나훈아의 공연마저 유세의 일부분으로 활용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바쁜 일상 속 한 줌의 휴식이 정치인들의 각축장이 돼 버린 지 오래인 지금, 근심과 걱정을 훌훌 털어내고 가볍게 웃을 수 있는 명절은 과연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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