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편집장이 만난 사람들 | 웹소설이 궁금한 당신에게

웹소설이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8년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는 이미 4000억 원을 넘어섰다. <전지적 독자시점> 등 인기 웹소설은 영화나 드라마, 웹툰, 게임을 비롯한 다른 매체로 활발하게 각색되는 추세다. 이융희 교수(청강문화산업대 웹소설창작전공)는 그 최전선에서 쉬지 않고 웹소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20살에 장르문학 『마왕성 앞 무기점』으로 데뷔한 그는 15년차 장르문학 작가이자 4년차 웹소설 작가다. 장르문학 비평전문팀 ‘텍스트릿’의 팀장으로 일하는 등 문화 연구자로서의 정체성도 빼놓을 수 없다. 장르문학, 그리고 웹소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이융희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웹소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Q. 장르문학 작가로 데뷔하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밟은 뒤 지금도 장르문학 및 웹소설과 관련된 활동들을 하고 있다. 이런 궤적을 밟아 온 배경이 궁금하다.

십대 시절이 IMF 금융위기 전후와 겹쳐서, 사회적 배경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때 직장에서 해고된 이들이 소자본으로도 개업할 수 있는 대여점 산업, 특히 비디오와 도서를 구비한 종합 대여점이 성행했었다. 판타지 소설도 함께 유행했는데 당시 장르문학 독자 수가 수십만에서 수백만으로 추산될 정도다. 더불어 90년대 이전부터 컴퓨터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해 가며 PC통신으로 장르문학을 향유했던 ‘얼리어답터’들이 존재했고, 광통신망이 도입된 후에는 인터넷 전반에서 장르문학이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었다. 과거 새로운 놀이 문화로서, 또 경제 위기를 견뎌내기 위해 판타지나 로맨스 소설을 향유하던 이들이 이제 3~40대가 됐다. 사회의 주역이 된 장르문학 팬들이 학문 담론장에서 자신의 체험을 증언하고 있는데 나도 그 중 하나인 셈이다. 학창시절 내내 작가의 꿈을 품고 장르문학을 읽고 쓰며 놀았고, 책 2종을 낸 뒤에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25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대학원까지 진학해서 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체험한 시대와 장르를 연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Q. 본격적으로 웹소설을 논하기 전 웹소설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웹소설은 주로 스마트폰을 매체로 유료 결제를 통해 유통되는 편당 오천 자 내외의 장르문학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때 주목할 점이 스마트폰을 매체로 삼는다는 부분이다. 독서 방식이 낭독에서 사적 공간 내의 묵독으로 바뀌며 근대적 독자가 등장했다. PC통신 시절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의 ‘독서 공간’에 진입해야만 소설을 읽을 수 있었으므로 이들은 근대적 독자의 연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웹소설에 ‘접속’한다. 중간에 다른 일을 하거나 노래를 들으면서도 틈틈이 한 편씩 빠르게 읽는 식이다. 그렇지만 연재 중인 소설이라면 최신화가 업데이트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빠르고 느린 이중의 읽기 속도를 갖는 것은 웹소설만의 특색이다.

동시에 웹소설은 데이터 그 자체로서 시장에서 거래된다. 보통 웹소설 한 편이 100원에 대여되는데, 창작 노동 자체에 대한 대가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작가는 웹소설 판매 수익만 받는 것이다. 이들은 작품 게시판에 직접 공지를 올리고, 오타를 수정하고, 독자들의 댓글에 따라 작품을 고치기도 한다. 이처럼 웹소설 작가는 개인사업자이자 게시판 운영자로서 일하며 웹소설 또한 일종의 웹 공간 내 상품의 성격을 띤다.

 

Q. 그렇다면 웹소설을 소위 ‘순문학’이나 장르문학과 비교해 보면 어떤가?

둘 다 웹소설과는 아예 다른 층위에 있다. 제도권 문학, 곧 현재의 중심적 문학을 일컫는 순문학은 문예지 기반 생태계나 특유의 텍스트성이 핵심이다. 박범신 작가도 웹소설 형태로 소설을 연재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순문학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한편 장르문학은 독자의 기대를 충족하는 서사적 약속을 담은 작품군으로 풀이된다. 연인의 꽃다발 선물이 로맨스 소설에서는 사랑의 증표로, 추리 소설에서는 범죄의 복선으로 서로 다르게 해석되듯 장르는 작품 속 특정 대사나 화소를 읽는 방식을 독자에게 일러준다. 따라서 내용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은 매체 특성과 유통 방식에 주안점을 두는 웹소설과 같은 차원에서 논의될 수 없다. 종이책 기반의 기존 문학과 차별화된, 웹소설에 걸맞은 글쓰기 기술도 분명 존재하나 장르문학처럼 고정적인 서사 형태에 관한 것은 아니다. 다만 2018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에 의하면 웹소설 형태로 유통되는 대부분의 텍스트가 장르문학이라고 한다. 각각의 층위는 다르지만 서로 배타적이지는 않다.

 

Q. 현대판타지나 로맨스판타지 등 웹소설 내부의 여러 장르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일각에는 같은 장르 내 작품들이 비슷한 코드의 조합이나 클리셰를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웹소설 장르 내부의 작품들이 똑같다는 주장은 사람마다 얼굴에 이목구비가 존재하니 다 같은 얼굴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르는 본래 약속과 관습을 공유하는 작품군(群)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르 안의 유행은 계속 변화할뿐더러 관습의 세부를 변용하는 데서 장르문학 작품의 재미가 탄생한다. 단순한 가위바위보라도 전후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게임으로 재구성되지 않나. 반대로 모든 소설은 작가의 영감에서 기인하며 세상에 없던 것이어야 한다는 소재만능주의도 비판해 볼 만한데, 장르문학에 대해서만 작품들은 전부 비슷하고 그것은 잘못됐다는 시선이 두드러진다. 

더불어 독자는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장르를 찾는다. 손님이 돼지국밥을 먹으러 식당에 왔는데 독창성을 추구하기 위해 이들에게 ‘두리안’ 국밥을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독자가 갖는 기대와 거기 깔린 욕망, 소비 방식은 제쳐 놓고 ‘독창성이 없다’라며 내용 비평에만 천착하는 것은 사실 낡은 관점이다.

 

Q. 웹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들의 욕망이 즉각적으로 반영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연한 계기로 성공하거나 나를 사랑하는 가족을 새롭게 찾는 전개 등이 있는데, 이 같은 현상의 원인과 의의가 궁금하다.

웹소설이 빠르게 창작되기 때문이다. 대개 하루 단위로 내용을 창작하니 사회의 욕망들을 즉시 반영하는 것인데, ‘컬트적 저널리즘’이라고도 한다. 독자들의 보편적인 욕망을 대리 만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가성비’도 좋다. 복권 당첨금 덕분에 편하게 학교나 회사를 다니는 것을 꿈꿔 본 이들이라면 웹소설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의 설정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테다. 틈틈이 읽는 것이기에 독자들이 이전의 독서처럼 몰입해서 ‘다른 몸’이 되어 볼 시간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따라서 웹소설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욕망을 소재로 삼는다. 한편 뒤집어 생각해 보면 웹소설에 반영된 욕망은 동시대 대중의 심리를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로맨스판타지 속 대안 가족에 대한 욕망을 가정에 대한 불안으로 읽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보편의 욕망과 내 욕망이 항상 같지만은 않다. 우리는 능동적 수용자로서 이들을 구분하면서도 충분히 웹소설을 즐길 수 있다.

 

Q. 독자가 작가에게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직접적으로 요구하고, 때로는 이것이 작가를 향한 사이버불링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 지금의 웹소설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균형 잡힌 관점이 필요하다. 웹소설 시장이 커지며 작가가 독자들에게 피해를 입는 경우가 늘어났지만,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켰을 때 얻는 수입도 개선됐다. 일부 인기 작품의 매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다만 앞서 말한 웹소설의 특성 때문에 독자들이 사이버불링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자신의 의견을 ‘우리’의 것으로 일반화해 상대를 폭력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인터넷 문화 전반의 문제다. 다만 웹소설 플랫폼의 댓글난 구조가 문제에 일조하는 면은 있다. 가령 ‘카카오페이지’에서는 베스트 댓글창을 거쳐야만 해당 웹소설의 다음 편을 읽을 수 있다. 댓글이 작품의 일부처럼 자리 잡고 있으니 작가가 댓글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듯 댓글 때문에 작가와 독자 간 거리감이 사라지며 생기는 문제에는 작가 개인의 ‘멘탈 관리’ 이상의 대책이 필요하다.

Q. 대여점의 장르문학을 읽던 학생들이 이제는 어른이 돼 웹소설을 읽는다. 웹소설 시장이 매년 커지고 있는데, 웹소설의 대중화란 무엇일까?

‘가시화’라고 말하는 편이다. 2000년대 인기를 끌었던 판타지소설 『달빛조각사』의 독자 수를 추산하면 지금의 인기 웹소설에 뒤지지 않는다. 잠재력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대여점에서 빌려보던 것이 개인이 플랫폼에서 작품을 직접 구매하는 형태로 바뀌며 웹소설 시장의 경제적 가치가 가시화됐다. 다만 웹툰이 ‘네이버’를 필두로 무료 연재나 적극적 밈(meme)화를 통해 대중화된 것과 달리, 돈을 주고 웹소설을 사 읽는 것이 가치 있는 소비로 널리 인정되려면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 웹소설에 권위를 부여할 다른 기반도 갖춰져야 할 테다.

 

Q. 웹소설 작가 지망생도 부쩍 늘어난 요즘인데, 인기 작품의 성공에 가려진 웹소설 생태계의 그늘도 있을 것 같다. 

우선 웹소설 작가는 수입에 바닥이 없다. 대학원생 시절 1년 반 동안 웹소설 <만렙 헌터는 포토그래퍼>를 연재했었는데, 그 작품의 월평균 수익을 계산하면 7~8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많은 웹소설 작가들이 전업 작가로 넘어가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다. 그런데 ‘문피아’에서 판타지 소설 공모전을 열면 응모작이 4천 개가 넘어간다. 장르 다양성까지 고려하면 웹소설 작가 지망생이 못해도 1~3만 명은 될 것인데, 근로 환경에는 안전망이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창작 노동을 했음에도 작가에게 노동에 대한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따라서 이는 웹소설 가격 책정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특히 웹소설 대여에는 소유의 개념이 전무하므로 우리는 순간의 즐거움에 대해 값을 치르는 셈인데 그렇다면 대여의 가격은 어떻게 책정해야 하는가? 작가와 에이전시, 플랫폼이 100원을 나눠 가지는 비율 또한 종이책 출판과는 달리 물리적으로 계산될 수 없어 작가마다 판매 수익 배분율이 다르다. 가격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다.

 

Q. 현재 청강문화산업대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대학이 ‘웹소설’을 다루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을 듯한데, 대학에서 웹소설을 가르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가?

웹소설은 상업성이 짙은 데다 청강대 또한 산업대인 것 때문인지 웹소설창작전공을 웹소설 작가가 되기 위한 ‘학원’처럼 여기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같은 순수과학을 전공하더라도 학문 연구부터 기술 응용까지 다양한 길이 있듯이 웹소설창작전공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작가로 데뷔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웹소설 산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플랫폼이나 작가 에이전시에 진출하고, 다른 매체로 각색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창작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여러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도록 폭넓게 커리큘럼을 짠다.

대학으로 대표되는 학문 담론장에 웹소설이 진입하는 것의 의미를 따지자면, 이전에는 선천적으로 의미 있다고 인정받는 것들만 학문의 대상이 됐지만 지금은 다수가 소비한다는 현상 자체에서 대상의 의의를 규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웹소설의 인기나 소비 양상이 가시화됐다면 이를 지식화하는 일은 대학 담론에서 이뤄질 수 있겠다. 교수진 또한 웹소설 담론을 체계화하려고 노력 중이다.

 

Q. 다른 문학 담론이 아닌, 웹소설 담론이 좋은 웹소설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없다. 뭉뚱그려서 ‘필력’이라는 말을 쓰는 이들도 있으나 세부적 기준이 없다. 다양한 기준이 등장할 만한 웹소설 담론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문학에서도 각자의 호불호나 기준에 따라 작품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지 않나. 그런데 웹소설 연구들은 아직 현상 분석에 머물러 있다. 웹소설 작법서 또한 엄밀한 의미의 작법보다는 개인 경험에 그친 경우가 많다. 지금은 좋은 웹소설을 판단하는 준거가 나올 만한 토대가 마련되는 중이고, 이는 앞으로 남은 과제이기도 하다.

현재로서는 독자들의 별점이나 구매량이 더 유의미한 지표다. ‘좋은 웹소설’에 대한 비평이 의미가 있으려면 예술영화계처럼 상업성 없이도 작품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하는데 지금은 상업적인 시장만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릿도 웹소설 큐레이션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것이 작가에게 상금이나 권위를 부여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자연히 작가는 잘 팔리는 소설을 쓰는 데 집중하게 된다.

 

웹소설의 매력을 ‘영업’해 달라는 질문에 이융희 교수는 “자기에게 의미가 있다면 읽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의미를 억지로 구성하기보다는 스스로 웹소설을 읽으면서 각자의 의미를 찾아보라는 말이다. 그에게도 웹소설과 장르문학을 논하는 일은 장르문학과 함께했던 23년의 세월의 의미를 찾는 일종의 인정투쟁이다. 학생들과 함께 웹소설을 연재하면서 수업을 진행한다는 이융희 교수는 “학생들이 웹소설에서 의미를 찾고 즐거워할 때면 함께 보람을 느낀다”라며 ‘덕업일치’라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그의 다음 행보에서도 틀림없이 배어나올 웹소설을 향한 애정과 열정이 기대되는 까닭이다. 당신에게도 텅 빈 채 흘려 보내는 일상의 시간이 있다면 웹소설에 도전해 보라. 어쩌면 거기서 당신이 사랑할 만한 이야기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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