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 팀 ‘블러디퍼니’를 만나다

웃음에는 힘이 있다. 고단한 현실로부터 잠시 멀어질 수 있게 해 개인에게 위안을 주거나 현실의 부조리를 아프게 꼬집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말 많고 문제도 많은 사회 속에서 웃음의 힘을 알고, 여성을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16일(금) 『대학신문』은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스탠드업 코미디 팀 ‘블러디퍼니’와 만났다.

 

◇여성의 입이 돼 주는 팀=세상에 다양한 여성이 존재하듯, 블러디퍼니 역시 각자의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코미디와 함께 성교육 강사를 병행하고 있는 최정윤 씨, 오랜 시간 희극인을 꿈꿔 온 최예나 씨, 연극배우이자 문화예술계 성폭력 예방 강사인 김보은 씨, 그리고 블러디퍼니를 통해 코미디를 즐기던 관객에서 코미디언이 된 고은별 씨. 정윤 씨는 “2018년 6월에 생긴 강남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장에 여성 코미디언이 너무 안 왔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정윤 씨는 “남성 위주의 코미디만 접하는 여성 관객에게 여성의 코미디를 보여줌으로써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자극하면 좋을 것 같아 예나 씨와 함께 여성들로만 구성된 크루를 꾸리기 시작했다”라고 블러디퍼니를 결성한 계기를 소개했다.

블러디퍼니의 멤버들. 왼쪽부터 최정윤 씨, 고은별 씨, 김보은 씨, 최예나 씨
블러디퍼니의 멤버들. 왼쪽부터 최정윤 씨, 고은별 씨, 김보은 씨, 최예나 씨

블러디퍼니는 정기적인 공연을 올릴 뿐 아니라 여성을 위한 ‘오픈마이크’라는 공간을 마련했다. 오픈마이크란 코미디언이 자신의 역량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무대다. 정윤 씨는 “아마추어 가수가 인디밴드를 시작할 때 작은 무대에서 시작하듯, 오픈마이크로 스탠드업 코미디의 첫발을 떼고 역량이 생기면 유료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과정을 밟는다”라고 설명했다. 블러디퍼니는 오픈마이크를 통해 스탠드업 코미디에 관심이 있는 여성을 모으고, 여성들이 코미디에 도전할 용기를 불어넣음과 동시에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전복의 예술, 스탠드업 코미디=무대가 있다. 마이크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무대 위에 평범한 사람 하나가 나타난다. 짧으면 5분, 길면 10분 남짓한 찰나의 시간 동안 그는 무대를 압도하고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정윤 씨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콩트나 스케치 코미디에서 요구되는 끼나 소품 없이도, 본인만의 스타일과 관점이 있다면 관객에게 웃음을 주고 이목을 끌어모을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예나 씨는 “고정관념과 타인을 조롱하는 것에 기반을 둔 과거의 TV 코미디 프로그램과 달리 자신의 시각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라고 스탠드업 코미디의 매력을 설명했다.

블러디퍼니는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약자를 공격하는 개그만큼은 지양한다. 팀은 코미디를 구상할 때, 관객이 기대하는 바에 따라 다른 소재를 활용한다. 은별 씨는 “편안한 분위기의 공연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품는 은밀한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고, 페미니즘 연극제처럼 공감대가 형성된 무대에서는 기득권을 풍자하는 펀치업을 넣는다”라고 밝혔다. 한편 보은 씨는 “약자를 희화화하는 것은 조크가 아니라 괴롭힘이다”라며 개그의 경계를 명확히 했다. 정윤 씨 역시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우리의 레벨로 끌어내려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여성의 웃음을 위해=‘여성은 웃기지 않다.’ 블러디퍼니는 편견으로 점철된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는 이 말의 신화를 파괴하려 한다. 은별 씨는 “여성의 관점은 주류가 아니기에 이해할 만한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라며 “남성의 시각을 내면화한 사회가 여성의 입장에 공감하려 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여성의 관점은 공감의 대상조차 되지 않으므로 웃음을 제공하는 여성의 끼는 과소평가됨과 동시에 위축된다. 더불어 예나 씨는 “코미디 학원에 다닐 때 한 방송국의 예능국장이 여성은 망가지면 안 된다며 개그우먼의 웃긴 분장을 지적했다는 일화를 들었다”라고 토로했다. 코미디를 시도하는 여성 역시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기 힘들기에 여성이 설 수 있는 무대는 한정된다. 이로써 여성은 웃기지 않다는 편견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겨난다. 블러디퍼니는 이를 끊기 위해서라도 코미디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여성이 많아질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여성성은 블러디퍼니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속성이다. 은별 씨는 블러디퍼니의 본질에 대해 “우리가 여성이라는 것이 팀의 100%라고 봐도 되며, 우리 무대의 기본 전제다”라고 설명했다. 블러디퍼니는 여성의 이야기를 전하는 여성 코미디 팀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행보를 여성운동의 일종이라 한정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은별 씨는 “무게를 덜어내고 싶을 때 찾는 것이 코미디인데, 팀의 활동을 여성운동이라 규정하게 되면 오히려 개그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예나 씨는 여성운동임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블러디퍼니의 행보를 “가까이서 보면 코미디, 멀리서 보면 여성운동”이라고 정리했다.

 

블러디퍼니는 다양한 여성들의 개성이 드러나는, 정말 웃긴 공연을 만드는 팀이 되기를 꿈꾼다. 정윤 씨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젊은 층에게 '힙한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라며 스탠드업 코미디의 대중화에 대한 바람을 표현했다. 블러디퍼니는 다음 달 8일 저녁 7시에 온라인 라이브로 오픈마이크를 진행한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로 웃음을 주고 싶은 여성들, 모두가 마음 편히 웃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사진: 이호은 수습기자 hosilver@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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