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캠퍼스는 ‘서울대학교’가 아닌 ‘줌’(ZOOM)이 됐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이전의 나는 수업, 점심, 동아리 등을 이유로 학교의 이곳저곳을 누볐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나의 모든 활동은 대부분 자취방 한 칸, 엄밀히 말해 ‘줌 화면 한 칸’에서 이뤄지고 있다. 캠퍼스의 글자 수만큼이나 활동 범위도 대폭 축소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월요일, 오래간만의 등굣길이 사뭇 특별하게 느껴졌다. 작년이었다면 반복되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귀찮다 느꼈을지 모를 그 평범한 등굣길이 말이다. 셔틀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가판대에 두둑이 쌓여 있는 『대학신문』이 눈에 띄었다. 한동안 인터넷으로만 접하던 『대학신문』을 오랜만에 지면으로 만나니 새삼 반가웠다.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던 것이 새롭고 달갑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찬찬히 신문을 읽어 봤다. 가장 먼저 나의 이목을 끈 것은 1면, 2면의 총학생회 선거와 관련된 기사였다. 두 차례에 걸친 선거의 무산을 목격하며 혹자는 이번 선거에 대한 기대가 낮아졌을 수도, 혹자는 오히려 기대가 높아졌을 수도 있다. 이처럼 학생 개개인에게 이번 선거가 갖는 의미는 특히나 판이하겠지만, 아무쪼록 그러한 기대와 의견들이 한데 어우러져 별 탈 없이 선거가 성사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1면, 3면의 인권열차 사업은 처음 접하는 사안이었다. 중요한 사안인 만큼 무게 있게 다뤄지고 있었다. 인권 보장을 위해 헌장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지만 크게 우려되지는 않았다. 기사를 통해 ‘위디’, ‘큐이즈’ 등 학내 인권을 사수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주체들의 의지와 에너지를 전해 받았기 때문이리라.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의 존재로부터 이번 사안에서 우리가 마주한 어떠한 갈등도 해결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느꼈다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6면에서는 ‘아무도 돌보지 못한 초등돌봄교실’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최근 이슈가 된 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일명 ‘라면 형제’ 사건은 결국 돌봄의 부재에서 비롯된 참사였다. 이와 연결해 볼 때 돌봄 시설의 고질적 문제와 ‘온종일돌봄특별법’의 졸속행정 문제를 지적한 기사는 시의적절하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돌봄 노동 수요가 폭증하고 관련 논의가 더욱 활발해진 만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돌봄노동을 재조명하는 내용도 덧붙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종합, 특집 면의 큼직한 기사들 뒤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취재수첩은 그것만이 주는 묘미가 있다. 완벽하고 군더더기 없는 기사에선 찾기 힘든, 기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달까. 이번 취재수첩에서 ‘사람들이 들려준 것을 겨우 옮겨냈을 뿐’이라는 대목을 읽으며 기사가 갖는 힘을 다시금 생각해 봤다. 기사가 되어 세상에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크고 작은 변화의 시발점이 된다. 작게는 개인을, 크게는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기자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이, 즉 정성을 다해 옮겨준 덕분이리라. 앞으로도 ‘고이’ 옮겨질 힘 있는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기고를 마친다.

 

 

정지영

지리학과·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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