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미지의 밑바닥에 우리는 잠기고 싶다, 새로운 것을 찾아서!” 

샤를 보들레르의 「여행」이라는 시 구절이다. 보들레르에게 여행이란 우리들을 일상의 비속하고 비참한 현실로부터 해방시켜 줄 돌파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구보는 다방 구석진 자리에 앉아, 유럽 유학을 앞둔 어느 화가의 고별 전시회 포스터를 보고는 언제든 ‘슈트케이스’를 들고 어디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여행 충동을 느낀다. 그것은 식민지 현실과 같은 비참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실제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 어디라도 좋다는 것일 테다.

구태여 보들레르나 박태원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여행은 바쁘거나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잠시만이라도 모든 것을 잊고 일상 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또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처럼 때로는 불편한 것 투성이요, 여행 중 예기치 않은 곤란한 사건과 마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서 고생’도 나중에는 추억이 돼 이야기보따리 안에 넣어 두고 때때로 꺼내 보게 된다.

요즘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은커녕 답답한 ‘집콕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에 따라 지난 16일(금) 외교부는 해외여행에 대한 특별여행주의보를 한 달 더 연장했고, 그것은 이후에도 재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마음대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절이 다시 오기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이런 때일수록 여행은 더욱 간절해지는 법인가 보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목적지 없는 비행’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의 한 항공사가 하와이 노선에 투입하는 비행기를 타고 일본 상공을 도는 상품을 내놓았는데 신청자가 정원을 훨씬 초과해 추첨으로 탑승객을 선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 대만에서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타이베이를 출발해 제주 상공에서 ‘치맥’을 즐긴 뒤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가는 상품을 출시에 성공리에 ‘완판’한 바 있다. 

이런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저 해외토픽 감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유사한 여행 상품 서비스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목적지 없는 비행 상품이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현재 저비용 항공사들도 비슷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불필요한 외출은 자제하는 것이 미덕인 이 시대, 국내여행도 쉽지는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거리두기가 가능한 비대면 여행지를 찾거나 ‘차박’ 캠핑, ‘호캉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시대의 새로운 대안 문화여행으로 ‘랜선 여행’ 콘텐츠를 보고, 집에 텐트를 치고 캠핑 기분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목적지 없는 비행과 같은 것은 여행·항공 업계가 코로나19로 인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고, 그 이용자들은 평소에는 타보기 힘든 비즈니스 좌석에 타보는 것이나 기내식과 기념품에 관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적지 없는 비행이나 집에 텐트를 치고서 랜선 여행을 즐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저 여행 ‘기분’이라도 내보려는 자들이 많다는 것, 즉 여행에의 갈증 때문일 것이다. 또 그것은 그만큼 코로나19 시대의 일상이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은 것임을 방증한다. 코로나19 이후 여행의 방식은 이미 달라지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참신한 ‘슬기로운 집콕 생활’ 방법들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어디로든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가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잠시 눈을 감고 미지의 세계를 그려 본다.

 

유예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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