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숙 교수(작곡과)
오희숙 교수(작곡과)

“음악이 너무나 삶에서 동떨어진 듯하면서도 동시에 삶에 밀착돼 있다는 기묘한 현상”을 지적한 철학자 루카치(Georg Lukács)의 주장은 내게 오래 기억되는 글 중 하나다. 쇼팽의 감미로운 선율을 감상하며 현실을 잠시 잊고 음악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기도 하지만, 펜데레츠키의 날카로운 음향의 애도가를 들으며 전쟁의 비참함을 생각해 보는 나의 음악 감상 패턴을 정확하게 짚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상황은 이런 양상을 극대화한 듯하다. 지난 2월부터 ‘예정된 공연이 취소됐다’라는 수많은 문자를 받았고, 급기야 8월 말에는 예술의 전당이 문을 닫아 청중들은 한동안 음악회장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더 직접적인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은 당연히 연주자와 공연기획자다. 주변의 음악인들은 안타까운 소식을 줄지어 전해 왔다. 국내 최초로 ‘모차르트 전 교향곡’을 연주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시리즈를 시작했던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도 그중 하나다. 외국에서 내한한 저명한 지휘자는 연주하지 못한 채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만 했고, 수많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모두 스탠바이 상태로 머물렀다. 지금까지도 이 공연은 중단된 상태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한국 창작 오페라 나실인의 〈빨간 바지〉의 초연도 계속 연기돼, 티켓을 예매했다가 2번이나 환불해야만 했다. 이처럼 많은 음악인이 자아실현의 장(場)인 무대를 잃고, 생존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그렇지만 음악은 현실에 굴복하지는 않았다. 대면 강의 대신 인터넷 매체를 활용한 강의가 대학가에 등장한 것처럼, 음악계에서도 이번 사태를 맞아 새로운 모색이 적극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니’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은 인터넷으로 음악회를 제공하며 청중을 만나는 시도를 했고, 예술의 전당에서도 ‘SAC프로젝트’를 통해서 수준 높은 공연을 청중들에게 무료로 선사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피아노의 날, 키신, 부흐빈더, 다닐 트리포토프와 한국의 조성진 등 정상급 피아니스트 9명이 참여한 〈Stay at Home〉 라이브 스트리밍 음악회에서, 평소라면 한자리에서 절대 만날 수 없는 피아니스트들이 연주 릴레이를 선보이며 청중들에게 최고의 공연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제 서울대 음대도 ‘화요음악회’를 비롯해 다양한 온라인 음악회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봄 학생이 없는 조용한 교정에 화려하게 핀 벚꽃 나무 아래서 바이올린 전공 고동휘 학생과 기타 전공 안용헌 학생 등이 함께 연주한 음악회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벚꽃잎이 날리는 모습과 함께 음악이 흐르는 모습은 무대를 벗어나 자연과 음악이 함께하는 참신한 시도를 보였고, 학교 홈페이지에 업로드돼 큰 호응을 받았다.

물론 이런 변화 속에서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무료 온라인 공연을 유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 논리의 문제, 진정한 공연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온라인 공연만의 특수성’에 대한 논의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도 시간예술인 음악의 생생함, 총체적인 시청각 경험이라는 공연만의 특수성이 과연 온라인 음악회로 대체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음악은 현실적 삶과 밀착됐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삶을 잠시 내려놓을 기회도 주고 있다. 음악계의 고군분투 덕분에, 코로나19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음악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게 됐고, 이 삶을 관조할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론 샷으로 촬영된 멋진 음악회 영상을 연구실 컴퓨터에서 보면서, “내게 공연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이었고 내 자리는 객석이라고 믿어왔지만, 지금의 나는 스크린 앞에 앉아 공연 관람의 기쁨을 누린다”라는 한 평론가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더욱이 온라인 수업 영상에서 음악을 감상한 학생들이 “코로나19 시대의 황폐한 마음에 큰 위안을 받았다”라는 코멘트를 많이 올려 줬듯이, 지금의 삭막함과 무력감은 음악을 통해서 분명 위로받고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만이 실존의 공포와 불합리에 관한 저 구역질 나는 생각들을 그것과 더불어 살 수 있는 표상들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삶에 대한 긍정이고 축복”이라는 니체의 말처럼, 음악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힘을 준다. 모차르트의 짧고 단순한 선율, 베토벤 교향곡의 웅장함,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드뷔시도 좋다. 음악은 우리의 가장 내밀한 마음에 파고들어 말을 걸어 온다. 지금 느끼는 막막함과 고독도 음악으로 승화시켜 보라고. 삶은 그래도 의미가 있다고. 지금이 바로 음악을 들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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