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팟 프로’를 받았다. 소음을 싫어하는 천성인지라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가진 에어팟 프로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지면을 빌려 소소한 감사를. 여하튼 에어팟 프로를 쓰며 기술의 발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하철에서의 소음, 스쳐 가는 행인들의 소란, 카페의 떠들썩함 모두 작은 콩나물 두 쪽 앞에 굴복한다. 대중교통이든 길거리든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만의 작은 우주에 빠져들 수 있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수없이 많은 요즘 세상에 이 문명의 이기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돼 버렸다.

하지만 최근 노이즈 캔슬링의 폐해를 경험했다. 오랜만에 외출했다 기숙사로 돌아오던 길, 낙성대역에서 누군가가 어깻죽지를 툭 건드렸다. 뭐지 생각하며 뒤돌아봤더니 한 중년 남성분이 내 지갑을 눈앞에 내밀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생 지갑 떨어트렸어요”라고 계속 말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 직접 전해주러 왔다는 것이다. 연신 감사 인사를 반복한 뒤 관악02 버스에 앉아 생각에 빠졌다. 혼자만의 세계에 취해 지금껏 도움을 주는 소리,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외면해 온 것은 아닐까. 문득 작은 기계가 정하는 기준에 따라 ‘캔슬링’되는 소리가 ‘노이즈’인지 아닌지 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어팟이 차단하는 소리는 당연히 소음이니 들을 필요가 없다고 여겨왔던 자신을 반성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이런 폐해들을 너무 많이, 그리고 오래 접해 왔다. 정치인들은 다른 당 정치인의 말을 소음으로 취급하고 어떤 이는 토론장에서 독선에 빠져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말 그대로 적극적으로 소음을 차단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독선가들이 소음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이들에게 자기 생각과 유사한 말은 음악이고, 반대되는 말은 소음이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의 원리는 어떤 소리가 들어올 때 역(逆)위상의 파동을 쏴서 소음을 상쇄하는 것이다. 비슷한 원리로 독선가들은 자기 의견과 다른 생각이 들어올 때 그 역위상인 아집을 강력히 발사해 그를 무마한다. 이들을 확증편향에 빠졌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무의식중으로 확증편향을 무기로 활용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귀와 마음에 노이즈 캔슬링을 내장한 탓에 자신이 다른 소리를 차단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노이즈 캔슬링 경향이 사회 전체적으로 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점차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를 쏟아내며 대중들을 편 가르기 일쑤고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을 퍼 나른다. 이런 교묘한 기술에 사람들은 극단화되고 확증편향을 내면화하며 이에 따라 사회적 분열과 갈등은 가속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론장 역시 제대로 기능할 리 없다. 이미 모두의 두 귀에는 오랜 사회적 경험과 콘텐츠 소비로 축적된 귀마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에어팟 프로는 ‘주변음 허용 모드’를 지원한다. 노이즈 캔슬링과 정반대로 주변음 허용을 켜면 주변 소리가 대단히 크게 들린다. 노이즈 캔슬링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이 역설적인 기능은 우리 사회에 큰 경종을 울린다. 귀마개를 벗으라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이 대화하는 공론장에서라도 모두 주변음 허용으로 모드를 변경한다면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헛된 소망을 마음에 품은 채 가끔은 주변음 허용 모드를 켜고 혼자만의 세상에서 벗어나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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