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수) 현행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는 대신 임신 14주 이내의 낙태를 조건 없이 허용하는 형법·모자보건법 입법 예고안이 정부에 의해 발의됐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지 20개월 만의 일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 14주 이내의 임부는 임신 중지가 가능하고, 현재까지의 낙태 인정 사유에 더해 ‘사회·경제적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임신 21주 이내에 제한적으로 임신 중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와 법조계는 물론 여야 정계에서도 해당 개정안이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정부안은 임신 주수와 임신 중지 허용 사유에만 집중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임신한 여성에게 자기결정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임신한 여성이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자신의 몸을 임신 상태로 유지하여 출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언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라고 판시했다. 판결문의 핵심은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한 온전한 결정권을 가진다는 사실에 있으며, 따라서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현행법을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낙태죄 폐지는 결코 낙태를 권장하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다. 임신을 원하지 않음에도 법령 때문에 임신 유지를 선택하는 여성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낙태죄 조항 때문에 음지에서 임신 중지를 경험하며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이 대다수다. 자신의 낙태 경험을 고백하는 ‘#나는낙태했다’ 릴레이를 보면, 불법이었던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이들이 겪었던 고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경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100명 중 7명은 낙태를 경험했다. 이에, 낙태죄 폐지는 임신 중지의 비범죄화를 통해 여성의 건강권과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권리를 되찾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돼야 한다. 

다른 한편, 낙태죄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인 여성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돼 왔기에, 낙태의 비범죄화뿐 아니라 이들을 위한 사회적 보호망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 곰퍼츠는 “낙태에 대한 모든 장애물은 가장 취약한 여성부터 해친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가정 폭력 피해 여성이나 청소년, 발달 장애인 등 보호자나 법정대리인과 다른 입장에 놓인 여성들은 24시간의 숙려 기간이나 자료 제출 요구 등으로 인해 자신의 의사대로 임신 중지를 실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정부안은 오히려 여러 겹의 단서를 달며 이들의 임신 중지에 대한 접근을 더욱 어렵게 한다. 

이번 정부안은 국가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약하고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법안이며, 헌법불합치 판결에 거스르는 퇴행적인 법안이다. 임신 중지 주수라는 일차원적인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대한 여성의 온전한 선택권을 보장하고 사회적 취약 계층에 해당하는 산부를 보호하는 대안적인 사회적 합의와 법안 발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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