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은 제574주년 한글날이자 사라졌던 『훈민정음』 해례본이 1940년에 발견되어 간송 전형필 선생에 의해 소장된 지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맞아 서울시에서는 세종국어문화원이 주관하고 간송미술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전시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를 9월 28일부터 10월 18일까지 서울도서관 외벽에 전시했다. 쉬운 문자로 누구나 읽고 쓰며, 글자를 몰라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했던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에 맞게, 전시는 글과 그림, 인포그래픽으로 훈민정음의 가치와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한글날을 맞아 10월 9일 10시 9분에는 전시 작가의 특별해설이 서울도서관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한글날에 예고된 집회를 막기 위해 광화문 일대에 차벽이 설치되고, 경찰 인력이 배치되면서 가까운 시청역 출구가 폐쇄됐다. 지하철을 나와 시청까지 가는 길에 경찰이 어디를 가는지 묻고 신분증 검사를 하기도 했다. 겨우 서울도서관이 있는 시청에 도착한 후에도 도서관 외벽에 접근하는 길이 철제 펜스로 막혀 시청을 몇 바퀴 돌며 헤매야 했다. 

주변 건물이 다 문을 닫아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전시 특별해설이 유일하게 허용된 광화문 한글날 행사였다. 한글과 관련된 행사가 많이 열리고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상이 주목받아야 할 한글날에, 광화문 광장 주변은 경찰과 차벽, 그리고 통제를 위해 구불구불 만들어 놓은 길로 삭막한 분위기였다.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집회를 금지한 것이 법원 판단에 의한 정당한 조치였고, 또 시민 통행을 위해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경찰 인력을 배치해 통행을 안내하는 등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하지만 한글날에 한글 전시를 보러 가기가 힘든 현실이 참 아이러니했다.

그러나 돌고 돌아 헤매면서도 전시를 보고 해설을 듣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서울도서관 외벽에 도착했을 때, 지금 걸어온 이 복잡하고 힘든 길이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이 거쳐 온 삶의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사대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해 널리 사용하고자 했던 세종대왕, 한글이 파괴되는 현실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한글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려 노력해 온 사람들, 이들 모두의 길이 순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훈민정음』 해례본 공저자 9명을 상징하는 특별해설 초청자 9명 중 한 명이 돼 전시 해설을 듣고 있다는 것에 모종의 책임감을 느꼈다.

1443년 겨울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이듬해,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를 비롯한 학자들이 훈민정음이 사대주의에 어긋나며 학문 정진에 손해를 끼친다고 반대 상소를 올렸다. 세종대왕은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훈민정음』 해례본을 편찬했다. 해례본이 나온 후 세종대왕은 직접 훈민정음으로 적은 공문서를 발행해 내려보내며 훈민정음 보급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당시 조선의 주도층이었던 유학자들의 의견을 반박하며, 사회적 약자인 백성을 생각하는 자세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관철한 세종대왕의 의지가 돋보이는 역사다.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특별해설을 듣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높은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백성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훈민정음을 반포해 백성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자 했던 세종대왕의 정신을 떠올려 본다. 나도 ‘아직 말해지지 않았지만, 반드시 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나아가, 세종대왕과 같은 마음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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