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 청년기본법 이후, 청년의 자리

올해 2월 4일 '청년기본법’이 제정됐다. 청년기본법은 ‘청년의 권리 및 책임과 더불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청년에 대한 책무를 정하고 청년정책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청년기본법이 제정됐음에도 청년들은 실질적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지난 7일(토) 2020 청년정책 협력포럼 ‘청년기본법 이후, 청년의 자리’가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됐다. 세션 1에서는 10명의 연사가 청년정책의 현황을 발표하고 앞으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했다. 세션 2에서는 청년정책 전달체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해 7명의 연사가 이야기를 나눴다. 세션 3에서는 청년 불평등 문제에 관해 4명의 연사가 의견을 나누고 사회적 약속문을 낭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일하지도, 먹지도 못하는 청년

청년실업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청년의 노동권 보장 문제는 청년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산업 구조의 변화와 인력의 디지털화로 신입사원 고용 자체가 줄어들었고 기업도 경력직을 선호하게 되며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더 어렵게 된 것이다. 청년유니온 이채은 위원장은 “노동권의 의미는 일터에서의 권리를 넘어 일할 권리까지 넓혀서 해석돼야 한다”라며 “청년 구직난이 극에 달한 지금, 청년들은 일할 권리를 누리지 못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일하는 청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들의 가장 주된 노동 형태인 아르바이트에서 제대로 된 복지를 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채은 위원장은 “쪼개기 고용*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노동자는 퇴직금은커녕 4대 보험도 일부만 적용받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있다”라고 지적했다.

청년들의 노동 어려움은 소득 문제로 이어진다. 최근 팬데믹의 도래로 일어난 ‘동학개미운동’ 투자 열풍은 일정한 수입이 없는 대학생과 구직자들이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기존 재테크 열풍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경향신문 최미랑 기자는 “청년들의 투자 붐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 청년들 마음속에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을 시사한다”라고 분석했다. 열심히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불안정한 노동소득 대신 금융소득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누구나 똑같이 위험 부담을 지고 매수, 매도 시점을 본인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투자시장이 공정하다는 인식도 청년들 사이에 투자 열풍이 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최 기자는 “청년들에게 일의 의미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라며 “지금의 일은 충분한 소득을 담보하지 못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도 살지 못하게 하는 불공정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청년들이 ‘투자만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진정한 희망의 근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청년정책, 여기 있습니다

이어 청년정책 활동가들은 청년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각자 어떤 청년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현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춘천시 청년청 이동근 사무국장은 “춘천시 청년청의 네 가지 핵심 가치인 관계, 판, 신뢰, 자립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였다”라고 밝히며 청년과 청년의 관계, 청년과 지역의 관계를 이어주는 사업을 소개했다. 춘천시 청년청은 지난 1일 133명의 청년이 모여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인 ‘청춘 의회’를 개최해 14개의 새로운 정책 의제를 도출했다. 이동근 사무국장은 “청년이 정치 참여를 ‘추가적인 일’로 느끼지 않도록 청년의 삶과 맞닿아 있는 지점에서 청년의 일상을 지원하고자 했다”라며 청춘 의회가 청년 참여의 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완주군의 청년정책팀은 타지에서 이주해 온 청년들이 자리 잡는 데 도움을 주고 청년과 지역을 연결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청년 귀농귀촌 캠프, 지역 청년과의 네트워크 파티, 문화기획자 양성과정 등이 대표적이다. 완주뿐 아니라 여러 농어촌 지역에서도 청년정책이 생기고 있는 가운데, 완주청년정책위원회 김주영 위원은 “최근 청년정책의 탈을 쓴 인구정책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지자체가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에 대한 우려로 청년들을 지역으로 유입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정책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김주영 위원은 “청년들을 지역 인구를 유지하는 도구로 간주하기보다, 그 지역을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바라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지역 청년정책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지역사회”라며 “지역사회는 청년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지 고민하며 청년 친화적인 지역으로 변화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주거와 관련한 청년정책 사례도 이어졌다. 기존의 청년주거정책은 주택 지원과 금융 지원에 집중돼 일정한 임대료와 이자를 부담할 수 있는 자금 대출이 가능한 청년만을 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장 월세를 내지 못하는 청년들을 위한 직접적인 주거비 지원 정책은 없었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 부산시는 2019년에 처음 청년월세지원사업을 시작해 월세 납부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10개월간 월 10만 원을 지급했다. 부산시 청년정책위원회 정서원 위원장은 “10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적은 금액만을 지원했다는 한계가 드러나기도 했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이 공공임대주택 등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필요했던 중간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했으며 청년들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통해서 정책 지원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금융 지원, 임대주택 지원뿐 아니라 청년의 삶 전반을 살펴보며 고민하는 종합적인 주거정책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청년주거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갈림길에 선 청년정책

앞으로 청년정책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서복경 청년정책센터장은 “코로나 시대의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통계 수치가 아니라 청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고용률 수치의 추이와 실제 청년들의 삶이 깨져나가고 있는 ‘스토리’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년 당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전하고 참여해야 한다. 서복경 센터장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오는 청년들뿐 아니라 찾아가는 청년정책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박지예 마음건강지원팀장 또한 문제가 발생한 후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적 차원의 정책들이 만들어져야 함을 짚었다. 박지예 팀장은 “청년들이 아프기 전에 다가가는 예방적 차원의 마음 건강 돌봄이 중요하다”라며 “당사자들의 참여로 정책의 포괄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우리 사회는 충분한 환경을 제공해 주지도 않은 채 청년들에게 자립이라는 신화를 강요해왔다. 그 결과 청년들은 사회 밖으로 내몰리게 됐다. 이제 청년들의 노동권 보장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기다. 청년의 권리에 대해 발제한 조기현 작가는 “모두가 자립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인식의 기본값을 중간이 아니라 아래로 맞춰야 한다”라며 분수효과를 언급했다. 이처럼 분수의 물이 솟아오르는 꼭지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 때 비로소 모든 청년을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삽화: 유지원 기자 uz1091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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