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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하가 걸어온 길] 민족과 함께한 ‘젊은이’
  • 박정식 기자
  • 승인 2005.03.21 01:17
  • 수정 2005.03.2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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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지킴이’로 우리에게 친숙한 신용하 명예교수(한양대 석좌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 독도 침탈 등 일본의 도발을 막기위해 앞 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행동하는 ‘젊은이’다. 그런 그도 처음에는 민족을 사랑하는 한 명의 사회학도였다.

1937년 제주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신용하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수석 입학한 중학교에서 학업을 중지해야 했다. 학교와 공부에 목말라하던 그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그러다 그와 비슷한 성장기를 겪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접하고 서서히 민족 문제에 빠져들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제주상고를 졸업한 그는 ‘민족’에 대한 열정 하나로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민족 문제를 연구하던 최문한 교수의 지도 아래 민족주의에 대한 학구열을 불태우던 그는 4ㆍ19가 성공할 때까지 가장 선두에 서서 ‘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승만의 독재가 민족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확신은 ‘학문에 머무르면 그 지식은 죽은 것이다’고 생각하는 그를 만사 제쳐두고 4?9 혁명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하버드대 연구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민족주의를 연구하던 신용하는 우리 민족의 분단 원인을 일본의 침략으로 규정했다. 그는 일본 침략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독립기념관 부설 독립운동사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냈으며, 구조선총독부건물 철거 촉진 위원회 실무위원으로 참가하는 등 일제의 잔재를 뽑아내기 위해 부지런히 대외 활동을 해 왔다.

집필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아 『독립협회연구』, 『한국 근대민족운동사 연구』, 『독도의 민족 영토사 연구』 등 30 여권이 넘는 서적을 출간했다.

일제 침략에 관한 사료를 수집하던 신용하는 일제의 침략이 1905년 독도 침탈 시도로부터 전개됐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민족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독도를 바라보게 된다.

독도에 대한 관심은 그의 열정과 함께 독도를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신용하는 한국과 일본에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제도가 도입되던 1996년, 일본이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자신들의 동해 기점으로 선언하는 것을 보고 위기 의식을 느껴 곧장 독도학회를 설립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독도 관련 단체들을 모아 연합체인 독도연구보전협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일본 예산 중 독도와 관련해 50억원이 배정되는 과정을 지켜본 신용하는 국민들이 보내준후원금으로 5개 국어로 된 독도 홍보서적을 제작하는 등 1년 여간 독도 문제 해결에만 매진해 왔다. 지금도 신용하는 일본이 ‘독도 망언’으로 한국을 자극할 때마다 20대의 열정으로 언론 매체, 정부 기관, 정당 등을 돌며 독도 지키기에 앞장서고 있다.

독도학회 회장으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왕성하게 활동하겠다는 신용하. 우리는 그에게서 민족과 독도를 사랑하는 ‘젊은이의 열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박정식 기자  snuace0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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