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게임 캐스터 전용준의 이야기를 듣다

전용준 캐스터는 ‘킹 오브 파이터즈’, ‘스타크래프트’ 등 한국 e-스포츠 문화의 태동기에서부터 ‘카트라이더’, ‘오버워치’ 등을 거쳐 현재의 ‘리그 오브 레전드’까지 약 20년 동안 게임계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그는 열정적인 중계로 젊은 층으로부터 ‘용준좌’, ‘MC용준’이라는 별명을 얻는 등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전 캐스터는 2008년부터 수차례 서울대 축제를 방문해 ‘관악 스타리그’나 ‘리그 오브 레전드 리그전’ 등을 중계한 뒤 학생들과 총장 잔디나 녹두거리에서 음주를 즐기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의 롤파크 게임 경기장에서 전용준 캐스터를 만났다.

 

 

세계적인 게임 캐스터가 되기까지

흔히 대학 생활의 3요소로 학점·연애·동아리를 꼽는다. 이 점에서 전용준 캐스터는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이야기한다.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수업을 듣기 위해 수강신청 날에만 치열하게 경쟁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졸업에 지장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공부했다. 친한 선배의 권유로 인류학과 내 역사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전 캐스터는 동아리에 대해 “역사적인 소양을 가진 학우들의 모임이라기보다, 술 잘 마시는 사람들이 친목을 쌓는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연애에 관한 질문에는, “‘모태 솔로’는 아니었고, 그냥 남들 하는 만큼은 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인류학이라는 전공은 얼핏 게임 캐스터라는 그의 직업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전용준 캐스터는 “인류학과 교수들의 교육 철학이나 인류학과의 시스템이 내가 게임 캐스터의 길을 걷게 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라고 설명한다. 당시 인류학과는 전공 필수 수업이 3개에 불과해 학업 부담을 상대적으로 덜 느낄 수 있었고, 교수들은 인류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계획이 아닌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기를 권하는 분위기였다.

전용준 캐스터는 인천광역시의 지역 방송국인 ‘iTV’(현 OBS)에서 공채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본래 크고 작은 모임에서 사회 보기를 좋아했지만, 처음부터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ROTC로 복무하던 중 충청북도 음성 꽃동네에 강당 건물을 짓는 봉사활동을 갔다가, 강당 완공 기념으로 개최된 KBS 열린음악회의 황현정 아나운서를 보고 해당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제대 후 그는 3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iTV 아나운서로 정식 데뷔했다.

전용준 캐스터가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한 1998년은 현재와 같은 게임 중계 문화가 생기기 전이었다. 그는 “원래 게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라며 “방송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야구 캐스터가 되고 싶어서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중파 방송과 차별화된 콘텐츠가 필요했던 iTV는 방송국의 막내에 가까웠던 전용준 캐스터에게 게임 중계를 맡겼다. 이후 스타크래프트가 흥행하면서 이른바 ‘엄전김’(엄재경-전용준-김태형)의 중계진 조합이 만들어졌고, 2010년 무렵까지 그는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스타리그), ‘카트라이더 리그’ 등 각종 게임 대회의 중계를 도맡았다. 현재 전용준 캐스터는 10년 가까이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십 코리아’를 중계하고 있다.

 

화려한 샤우팅 뒤에 숨겨진 고민들

전용준 캐스터 특유의 오프닝 콜은 그의 빼놓을 수 없는 트레이드 마크로 꼽힌다. 4강전, 결승전 등 중요한 경기가 시작할 때마다 무대 중앙에 서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목청껏 외치는 모습은 2000년대 초반 스타크래프트 중계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2014년 그가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를 시작할 때 물병을 내던지고 포효하는 모습이 화제가 돼 영미권에서는 ‘하이프 전’(HYPE JUN), 중국에서는 ‘포효제’(咆哮帝)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그는 “리그 오브 레전드 중계를 처음 시작할 때는 스타크래프트 중계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일부러 샤우팅을 안 하려 했다”라며 “사람들이 계속 특유의 오프닝 콜을 기대하다 보니 다시 시작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전용준 캐스터는 현재 세계적인 게임 캐스터지만 그가 항상 탄탄대로만을 걸어 온 것은 아니다. 그는 약 10년 전 스타크래프트 승부 조작 사건 및 인기 감소로 스타리그가 종료되면서 잠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전 캐스터는 “다행히 스타리그 종료 즈음에 리그 오브 레전드 중계를 맡으며 캐스터 일을 계속하게 됐지만, 스타크래프트 선수 등 게임계 동료들은 모두 어려운 상황에 놓였었다”라며 “당시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에 지금까지도 미안한 마음이다”라고 털어놨다.

전용준 캐스터는 게임 캐스터로서의 책임감도 강조했다. 그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게임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의 중립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라며 편파적이지 않고 균형 잡힌 중계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또한 전 캐스터는 “현재는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 중계를 시청하고 있다”라며 “다양한 인종·지역·종교·성별을 가진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만한 말을 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 왔다”라고 말했다. 48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게임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노력도 필수적이었다. 전 캐스터는 “평소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 ‘콜 오브 듀티’ 등 다양한 게임을 즐겨 하며 게임단 유튜브 채널 등을 지속적으로 챙겨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모두를 위한 e-스포츠가 되려면

한국의 e-스포츠 선수들은 세계 대회에서 상당히 우수한 성적을 거둬 왔다. 게임 회사 ‘블리자드’는 자사의 게임에 한국 서버를 신설하며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의 고향’이라는 설명을 붙이는가 하면, ‘레딧’ 등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게임 난이도에는 쉬움-보통-어려움-한국인이 있다”,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려면 장인어른과 스타크래프트를 해서 이겨야 한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선수들이 발군의 성적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전용준 캐스터는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자리 잡은 덕분”이라 설명했다. 축구, 농구 등 다른 스포츠에서 채택하고 있는 선수-매니저-코치-감독 구조를 따오고 기업 스폰서십에 기반해 스포츠단을 만드는 등 체계화된 관리 구조가 일찍이 게임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은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e-스포츠 초기에는 선수들이 자기관리에 실패해 슬럼프를 겪고 은퇴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라며 “최근에는 해외에서도 한국처럼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해 해외 선수들의 기량도 크게 상승하는 중”이라 말했다.

이처럼 전용준 캐스터와 e-스포츠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호응을 얻고 있는 지금도 게임에 대한 일각의 시각은 마냥 곱지만은 않다. 많은 부모는 게임 때문에 공부에 지장이 간다고 생각해, 자녀를 게임으로부터 떼어놓을 방법부터 고민한다. 이에 대해 전용준 캐스터는 “학부모들도 게임을 멀리하기보다는 이를 어느 정도 공부할 필요가 있다”라고 단언했다. 이미 게임이 학생들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으로 자리 잡은 만큼, 자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게임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은 팀을 이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중간에 ‘탈주’하면 우리 팀은 물론 상대 팀에게도 큰 피해를 끼치게 된다”라며 “게임을 하는 자녀에게 이를 당장 종료하라는 식으로 다그치기만 하면 감정의 골만 깊어질 뿐”이라 지적했다.

 

전용준 캐스터의 목표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게임 캐스터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는 “30대, 40대 시절에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을 받으면 ‘10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라 답했다”라면서도 “50살에 가까워진 지금은 10년 후에도 게임 캐스터를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전용준 캐스터의 꿈은 함께 일하는 게임 해설가, PD, 작가, 나아가 수많은 팬들에게 도움이 되는 데까지 게임 캐스터로 일하는 것이다. 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젊은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로부터 조언을 받고 싶다”라고 답한 그는 앞으로도 시대의 변화와 함께하며 많은 게임 팬들에게 우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진: 김가연 기자 ti_min_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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